오사키 오키나와영화제 위원장 “비극의 땅을 웃음의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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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7일 09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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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사키 히로시 오키나와영화제 실행위원장. 사진제공|요시모토엔터테인먼트
오사키 히로시 오키나와영화제 실행위원장. 사진제공|요시모토엔터테인먼트
“오키나와는 비극의 땅이었습니다. 앞으로 이 곳에 오는 누구나 웃기를 바랍니다.”

올해로 5회째를 맞은 오키나와영화제 오사키 히로시(60) 실행위원장이 오키나와를 영화 축제의 지역으로 택한 이유는 분명하다. 웃음을 담은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다. 이런 뜻으로 오키나와영화제는 ‘웃음’과 ‘평화’ 부문으로 나눠 영화를 상영한다.

물론 “태평양전쟁(1940년대 초) 탓에 일본에서 유일하게 전쟁의 장소가 된 곳”이라는 이유도 있다. “연합군의 지배에서 벗어나 일본으로 복귀할 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 후 본토에서도 차별받는 일이 많았다”고 짚은 그는 “일본인들이 도쿄 신주쿠에서 웃으며 놀 수 있는 건 오키나와의 희생으로 가능한 일”이라고 했다.

오키나와영화제가 한창인 26일 오전 트로피컬 비치의 한 호텔에서 오사키 히로시 실행위원장을 만났다. 그는 일본 최대 규모의 연예기획사 가운데 한 곳인 요시모토엔터테인먼트의 대표로 이번 영화제를 주관하고 있다.

“영화와 영화인만을 위한 영화제와 다른 개성을 갖길 바란다”는 오사키 실행위원장은 “오키나와에 남은 옛 미군 주둔지에 엔터테인먼트 타운을 세우는 것도 장기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또한 “한국은 해외를 향한 (콘텐츠)경쟁력이 있다”며 “배우고 싶다”는 뜻도 드러냈다.

다음은 오사키 실행위원장과 나눈 일문일답.

-올해로 5회째다. 준비하고 진행해오면서 겪는 어려움은 없나.

“나 이하 모든 직원(요시모토엔터테인먼트)들이 영화제를 해본 적이 없다. 처음엔 ‘매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중요했다. 이젠 오키나와현에서도 ‘우리의 축제’라고 인식한다. 계속 영화제를 여는 것 자체가 우리의 목표다. 마치 살아있는 걸 느끼는 마음처럼.”

오사키 실행위원장은 제작을 맡은 영화 ‘대일본인’으로 2007년 프랑스 칸국제영화제와 부산국제영화제를 차례로 방문하면서 영화제를 구체적으로 구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만난 김동호 부산국제영화제 명예집행위원장과 교류하며 지금까지 각별한 인연을 쌓고 있다. 김 위원장은 2008년과 2009년 오키나와영화제 심사위원장을 맡았다.

-영화제 초창기에는 부산국제영화제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고 있다.

“김동호 위원장을 존경한다. 몇 번 만남을 반복하면서 그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를 더 신뢰하게 됐다. 김 위원장이 오키나와에 도착한 모습을 보면 ‘아! 영화제가 시작됐구나’ 알게 된다. 올해는 제주도에서도 담당자들이 방문해 우리에게 영화제 개최를 물었다. 나의 의견을 묻기에 ‘부산영화제도 있는데 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했지만 그래도 꼭 해야 한다더라. 하하! 5월쯤 제주도에 가서 더 의견을 나눌 생각이다. 일본에는 ‘섬 문학’이란 장르가 따로 있다. 그 정도로, 섬은 만나고 이별하는 특별한 장소다. 사연도 많고.”

30일까지 열리는 오키나와영화제 주요 상영관인 기노완시 컨벤션센터 앞 트로피칼 해변에서 매일 열리는 ‘비치스테이지’ 공연. 일본 최대 연예기획사 요시모토엔터테인먼트 소속 개그맨들의 매일 무대에 올라 공연을 꾸민다. 오키나와(일본)|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30일까지 열리는 오키나와영화제 주요 상영관인 기노완시 컨벤션센터 앞 트로피칼 해변에서 매일 열리는 ‘비치스테이지’ 공연. 일본 최대 연예기획사 요시모토엔터테인먼트 소속 개그맨들의 매일 무대에 올라 공연을 꾸민다. 오키나와(일본)|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오키나와영화제는 코미디 영화제를 표방하고 있다.

“솔직히 영화인의 눈으로 엄격하게 보면 영화제가 아니다. 요시모토엔터테인먼트에 소속된 2000여 명의 코미디언들이 만드는 축제로 보는 시선도 많다. 우리도 기존 영화제 분위기에 꼭 맞춰져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새로운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 오키나와에는 미군 부대의 공터로 남은 땅이 많다. 그 곳에 콘텐츠 제작사와 스튜디오, 아카데미 등을 만들 생각이다.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타운처럼. 오키나와 어느 지역을 가도 누구나 웃는 동네를 만들고 싶다.”

-요시모토엔터테인먼트는 일본에서 방송 중인 70여 편의 예능 프로그램을 제작하고 있다. 한국 코미디에도 주목하고 있나.

“코미디는 그 나라와 그곳 사람, 생각하는 방법, 습관 속에서 나온다. 한국은 지금까지 250여 번 방문했다. 초기에는 김미화 씨가 눈썹을 검게 칠하고 나오는 코미디(‘쓰리랑 부부’)가 인기였다. 그 모습이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모든 사람에게 사랑받을 만한 친근함이 있었다. 요즘 일본에선 한국의 넌버벌 퍼포먼스 공연도 자주 열린다. 그런 공연을 한·일 공동으로 만든다면, 물론 서로 자주 싸우겠지만(웃음) 재미있는 코미디 작품을 완성할 수 있지 않을까.”

-가요, 드라마 장르와 달리 코미디로 일본에 진출하는 한국 개그맨은 적은 편인데.

“일본은 콘텐츠를 자국시장 안에서 모두 소화할 수 있다. 시장이 크다. 한국은 일본과 비교해 시장규모가 작은 게 사실이다. 그렇다보니 필연적으로 밖(해외)으로 나가려는 자세를 취했고, 지금 이렇게 멋진 상태(한류)가 됐다. 오히려 한국인들이 해외에서도 통하는 코미디를 발견한다면 내가 먼저 배우고 싶다. 예를 들어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같은 경우, 일본인들은 세심한 웃음을 잘 잡아낸다. 하지만 그게 세계에서 통용되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니다’라고 말하겠다. 그건 마치 (오랜 경영방식을 고집하다 경영난에 빠진)소니, 파나소닉의 경우와도 같다.”

-요시모토엔터테인먼트는 올해 창립 101주년을 맞았다. 이 분야에서 장수할 수 있던 비결이 있나.

“어떤 사람이든, 상품이든, 그게 회사이든. 시대의 공기를 흡수하는 게 중요하다. 그렇게 하다보면 바꾸지 말아야 할 것과 바꿔야 할 게 보인다. 남겨야 할 것을 지키기 위해서도 계속 변화해야 한다. 일본에는 약 3000개의 연예기획사가 있고 100여 개의 영화제가 있다. 요시모토와 오키나와영화제는 그들과 겹치지 않으려고 늘 노력한다.”

오키나와(일본)|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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