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지영 감독 “힘들었던 고문 촬영…찍는 것이 내겐 고문”

  • Array
  • 입력 2012년 11월 21일 07시 00분


‘남영동 1985’를 연출하며 더없는 고통에 시달렸다는 정지영 감독. 아픈 현실을 고발하며 또 다시 관객을 만나게 됐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남영동 1985’를 연출하며 더없는 고통에 시달렸다는 정지영 감독. 아픈 현실을 고발하며 또 다시 관객을 만나게 됐다. 김종원 기자 won@donga.com 트위터 @beanjjun
영화 ‘남영동1985’의 두 사나이…이경영·정지영 감독 스토리

고통스러운 영화를 만든 감독과 배우는 한동안 극심한 후유증을 겪었다. 22일 개봉하는 ‘남영동1985’를 함께 한 정지영 감독과 이경영. 영화는 고 김근태 민주통합당 상임고문이 1980년대 겪은 참담한 고문의 아픈 기억을 그렸다. 쉽지 않았던 촬영을 잇는 동안 “마치 집단최면에 걸린 것 같았다”고 돌이킨 감독과 배우를 만났다.

■ 영화 ‘부러진 화살’ 1년만에 새 작품, 정지영 감독

고 김근태 고문 수기 읽다 ‘필’ 꽂혀
영화 다 찍고 나서도 한동안 힘들어
30년전 고통스럽게 얻어낸 민주주의
보는 사람 함께 아파하길 바랍니다


“고통스러운 이야기라고요? 보는 사람 모두 아파하길 바랍니다.”

정지영 감독(66)은 힘주어 말했다. 영화 ‘남영동 1985’(이하 남영동)가 관객에게 아픔으로 다가가기를 누구보다 바란다고. 민주주의 열망이 강하던 1980년대 권력의 탄압과 잔인한 고문을 스크린에 옮긴 정 감독은 “30년 전 일이지만 바로 지금 아이들과 함께 봐야 할 이야기”라고도 했다.

올해 초 사법 권력을 비판한 ‘부러진 화살’로 반향을 일으킨 그가 1년도 지나지 않아 새로운 영화를 내놓았다. ‘부러진 화살’이 400만 명에 가까운 관객을 모을 때 정 감독의 머리 속을 채운 생각은 “‘남영동’을 만들 수 있겠구나”였다.

“김근태 고문의 수기를 읽다 소위 ‘필’이 꽂혔다. 시나리오를 쓰면서 관객들이 함께 아파할 수 있을까, 구경만 하지는 않을까 고민이 깊었다.”

‘남영동’은 사실 들여다 보기 쉽지 않은 영화다. 고문의 기록을 날짜별로 상세히 묘사한다. 인간이 인간을 얼마나 잔인하게 망가트릴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 정 감독 역시 “찍는 내내, 찍고 나서도 몇 달 동안 힘들었다”고 돌이켰다. 처음엔 힘든 이유를 찾지 못했다.

“촬영을 중간쯤 하고 나니…. 아, 내가 고문을 하기도, 당하기도 하는구나. 고통스럽게 얻어낸 민주주의가 훼손될 때 ‘나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분위기가. 누군가 대신 싸워 주겠지…. 습관화되고 길들여졌다.”

‘부러진 화살’로 14년 만에 영화계로 돌아온 정지영 감독은 긴 공백 만큼 하고 싶은 작품도, 공개할 영화도 많다. 다음 영화는 12월6일 개봉하는 ‘영화판’. 정지영 감독과 배우 윤진서가 영화계 인사들을 찾아다니면서 충무로의 다양한 문제를 묻고 답을 들은 다큐멘터리다.

“아무도 찾지 않는 감독과 모호한 나이의 여배우가 영화를 못 하는 상황에 안타까워하며 떠난 여정이다. 대기업의 영화 진출이 과연 영화계에 좋은 건지 묻는 식이다. 질문 안에 영화계를 바라보는 내 시선도 담겼겠지.”

또 다른 작품 구상도 끝냈다. “아름답고 슬픈 이야기”라는 짧은 설명이다. 한국전쟁 직전이 배경인 남녀의 사랑 이야기로 역시 실화가 바탕이다. “분단의 아픔을 담겠다”는 그는 “1년 동안 쉬고 내후년쯤 시작할 생각”이라면서도 “쉬다 보면 만들고 싶은 욕심이 다시 꿈틀대겠지?”라고 되물었다.

이해리 기자 gofl1024@donga.com 트위터@madeinharry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