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절제가 예술이네, 김성균… 판타지 어디갔나, 한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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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8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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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속 캐릭터의 창의성 뛰어난 배우, 빈곤한 배우

“욕 보래이.”

지난달 끝난 SBS 드라마 ‘추적자 THE CHASER’에서 이 네 글자 대사만으로 시청자들을 들었다 놨다 했던 주인공이 ‘서 회장’ 역할을 맡은 연기자 박근형(72)이다. 전북 정읍이 고향이면서도 경상도 사투리를 경상도 사람보다 훨씬 더 ‘경상도적’으로 구사한 그는 자기 방이라는 폐쇄된 공간에서 거의 매번 똑같은 자세와 표정과 눈빛으로 대사를 툭툭 던지는데 매번 다르게 다가온다. 최근 국내 개봉한 영화에서 이처럼 매우 창의적인 연기를 보여준 배우와 그 반대였던 배우들을 꼽아본다.

먼저 창의적인 경우. 단연 ‘이웃사람’(22일 개봉)에서 연쇄살인마를 연기한 김성균을 꼽을 만하다. 그는 ‘범죄와의 전쟁: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 이어 이번에도 발군의 연기를 보인다. ‘끝내주는 걸 보여주고 싶은’ 배우의 본능적 욕망을 절제한 채 스크린 구석 어딘가로 신경증적으로 숨어 들려는 연기를 통해 일상적이어서 더욱 입체적인 질감을 뽑아낸다. 연기는 뭔가를 더하는 ‘플러스의 기술’이 아니라 끊임없이 덜어내는 ‘마이너스의 예술’임을 입증하며.

영화 ‘내 아내의 모든 것’(5월 개봉)에서 카사노바 ‘성기’를 연기한 류승룡은 그 이름부터 행동까지 유치하기 짝이 없지만 이상하게도 무게감과 진정성을 잃지 않는 놀라운 연기력을 보여준다. 뭐랄까. 관객을 설득하기 전에 자기 스스로를 먼저 충분히 설득해야만 한다는 신조를 가진 배우 같다. ‘최종병기 활’에서도 그러했듯 그는 대부분 ‘비현실적’ 캐릭터를 연기하지만 그것은 ‘현실에 있지 않기에 허황된 존재’가 아니라 ‘현실엔 없지만 꼭 있어야만 할 것 같은 존재’에 대한 갈망을 불러일으킨다.

‘케빈에 대하여’(26일 개봉)라는 놀랍도록 건조하고 섬뜩한 영화에서 악마 같은 아이를 잉태하는 어머니의 원죄를 연기해낸 여배우 틸다 스윈턴의 존재감도 경탄할 만하다. 그의 연기는 안개처럼 찝찝하고 딱히 모양을 잡아내기 어렵지만 늘 짙게 숙명처럼 깔려 있다. 이 영화에서 그는 시종 표정을 저주한다. 아, 진공 혹은 무중력 상태에 있는 듯한 모호하고 불안한 표정.

반면 아널드 슈워제네거 주연의 영화를 리메이크한 ‘토탈 리콜’(15일 개봉)에서 주연을 맡은 콜린 파렐의 연기는 민망할 만큼 해석력과 상상력의 빈곤을 드러낸다. 그는 캐릭터보다는 자기 자신에게 훨씬 관심이 많은 배우 같다. 미래세계 인간이 품는 존재적 회의를 드러내기는커녕 똥마려운 개처럼 이리저리 휘젓고 다닐 뿐이다. 주체할 줄 모르는 ‘끼’를 앞으로 관리하지 못한다면 만날 똑같은 연기만 하고 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배우의 덕목은 절제. 하지만 살인하는 늑대개를 다룬 스릴러 ‘하울링’(2월 개봉)에 출연한 여배우 이나영은 이 절제라는 가치를 잘못 해석한다. 이 영화에서 그의 연기와 표정은 ‘절제’라기보다는 ‘무위(無爲)’, 즉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가깝다. 자신의 내면을 파고들어 고통의 끝장을 보려고 하는 절실함과 몰입이 필요하다.

마찬가지로 영화 ‘건축학개론’에 출연한 여배우 한가인도 이 영화의 흥행으로 ‘업’ 될 게 아니라 연기자로서의 자신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때다. 이 영화에서도 그렇고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서도 그렇고, 그녀는 ‘서연’ 혹은 ‘연우’로 보이는 게 아니라 오직 ‘한가인’으로만 보인다. 배우로서의 판타지가 옅어지면서 ‘생활인’으로 보이기 시작할 때가 여배우에게는 위기의 순간이 아닌가.

이승재 기자 sjda@donga.com
#이승재 기자의 무비홀릭#배우#창의적 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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