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기자의 인증샷(2)] 이영미, “나가수에서 겨뤄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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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5일 16시 0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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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기자) 앨범 제목이 특이합니다. ‘러브 유니버스(Love Universe)’. ‘우주를 사랑하자’는 캠페인 송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그게 실은 굉장히 추상적인 거예요. 사랑에 빠진 순간, 우주의 상태를 표현한 거죠. 전 그렇게 느끼거든요. 사랑에 빠지면 이 세상에 그 사람과 나 만 존재하는 느낌. 다른 모든 것은 무채색이 되어 버리는 기분. 사랑으로만 가득 찬 순간의 우주의 상태.”

“(기자) 직접 지으신 건가요?”
“직접 지었어요. 음악창작단 ‘해적’ 대표 (송)용진이와 사전에 ‘유니버스로 가자’해놓고 통화를 하다 두 사람이 동시에 ‘러브 유니버스!’했던 거죠.”
“(기자) 그러니까 … ‘찌찌뽕’이로군요!”

이영미에게는 ‘카리스마의 여왕’이라는 ‘태그’가 24시간 따라 다닌다. 그녀의 팬클럽 이름 또한 ‘카리스마 여왕’이다. 팬들은 그녀를 ‘여왕님’이라고 부른다.

“모르겠어요. ‘카리스마’라는 게 뭔가 남을 휘어잡는 능력, 존재만으로도 무게감이 있는 … 그런 거잖아요. 제가 원한 것은 아니고, 사람들이 그렇게(카리스마가 있다고) 얘기를 하네요. 처음 나올 때부터.”

“그런데 사실 너무 듣기 싫었어요. ‘카리스마’ 덕에 이슈가 됐던 건 맞지만, 그로 인해 다채로운 역할을 맡지 못 했던 건 아닌가 싶기도 해요. 터프하고, 보이시하게 보이는 게 싫었어요. 저를 잘 아는 사람들은 제가 전혀 그렇지 않다는 걸 알죠.”

“저, 혈액형이 A형이에요. 완전한 A형이죠. 굉장히 내성적이고, 남이 무슨 생각하는지 생각을 무척 많이 하는 스타일입니다.”

“(기자) 한 번 삐치면 오래 가시나 봐요.”
“삐치면 오래 가는 게 아니라, 아예 안 봐요.”
“(기자) 그건 좀 심하지 않습니까.”
“평생 몇 명 없습니다. 한두 명 있을까 말까. 그런데 있다가도 청산하고 풀어버려요. 그 쪽이 내가 편하니까. 최근에 한 명 풀었어요.”


#5.
이영미의 첫 정규 앨범 ‘러브 유니버스’는 음악창작단 ‘해적’ 레이블에서 나왔다. 이 회사의 대표는 뮤지컬 배우 겸 록커인 송용진이다. 이영미와는 ‘누나, 동생’하는 각별한 사이이다.

“(송용진) 우리 둘은 뮤지컬 ‘그리스’에서 처음 만났어요. 2003년도인가 … 그때 ‘그리스’가 대박이 났죠.”

송용진은 1999년에 뮤지컬에 데뷔했다. 자유분방한 록 밴드 멤버 생활을 하던 그에게 ‘조직의 쓴맛’이 살아 있는 공연계는 적응하기 어려운 세계였다.

어느 점심시간, 사방에서 후배들이 선배에게 “맛있게 드십시오”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송용진의 입에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침에 인사하고, 밥 먹을 때 인사하고 … 뭔 인사를 이렇게 많이 해”하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그러자 앞에서 묵묵히 밥을 먹고 있던 여배우가 “그러게”하고 맞장구를 쳤다.

그것이 두 사람의 첫 만남이었다.

“(송용진) 누나도 가수 출신이잖아요. 얘기를 나누다 보니 출신성분도 비슷하고, 전형적인 배우들 사이에서 음악하다 온 사람들이 갖는 동질감이 느껴지더라고요.”

“(이영미) 배우들의 단체생활이 너무 어렵더라고요. 처음에 1년 정도 앙상블을 하면서 ‘내 길이 아닌가보다’ 싶었어요. 나가서 방황을 하다 다시 들어왔을 때 용진이를 만난 거죠. 여하튼 매일 보는데 왜 30명을 볼 때마다 또 인사를 해야 하는지 이해를 못했어요. 선배들에게 밉상이었죠, 뭐.”
#6.
이번 앨범이 나오게 된 이야기.

“(송용진) 가끔씩 ‘누나 앨범 안 내?’하고 물으면 ‘낼 거야’, ‘어디서 좀 하다가 진행이 안 되네’하더라고요. 그러다 제가 녹음스튜디오를 차렸는데, 누나네 집이 걸어서 10분쯤 걸렸죠. 새벽에 둘이서 한강시민공원에 나가서 캔 맥주를 하나씩 마셨어요. 그리고 말했죠. ‘누나, 나 회사 만들 건데, 와서 앨범 내라’.”

다음날 두 사람은 스튜디오에서 만나 피아노 한 대 놓고 노래를 했다. 모두 이영미의 자작곡들이었다.

“(송용진) 누나는 안에서 노래를 하고, 나는 유리창 밖에 있는데 노래를 듣다 울었어요. 그게 이번 타이틀곡 ‘폴른’이에요. 그때 결심했죠. ‘이 여자는 이렇게(이런 분위기로) 앨범을 만들어야겠다.’, ‘이 여자의 노래가 30대 남자인 내 가슴을 이렇게 울리는데 여자들은 오죽할까.’”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그 이후에 이영미가 쓰는 곡들을 유심히 보니 이전의 감성적인 분위기와는 달리 ‘지극히 여전사스러운’ 노래들이 아닌가. ‘술 먹고 전화하지 마’라는 가사가 나오는 ‘연하남’이란 곡도 그 중 하나였다.

“(이영미) 처음에 용진이가 들었던 곡들은 제가 사랑의 폐인이 됐을 때 쓴 곡이 많아요. 오래된 것은 5년이나 묵은 곡이죠.”

“(송용진) 설득을 했죠. 전 동생이기 전에 ‘사장’이자 ‘프로듀서’니까. ‘여전사’의 이미지로 앨범을 만들고 싶지 않다고 설득을 했어요. 그리고 누나가 동의를 해주었죠.”

“(이영미) 용진이가 설득을 진짜 잘 하거든요. 전 잘 당하고. 집에 오면서 가끔 허탈할 때가 있었어요.”

‘러브 유니버스’에 담긴 12곡은 이영미의 표현에 따르면 ‘안전빵 순위’에 있던 곡들이다. 누가 들어도 무난한, 튀거나 실험적인 곡이 배제되었다는 뜻이다.

“‘흔적’이 가장 최근에 쓴 곡이에요. 나머지는 다 3년도 더 된 곡들이죠, 하하! 사실 집에 쌓인 곡들이 되게 많아요. 사실 정서적으로는 최근 쓴 곡들이 더 가깝잖아요. 그런데 이번 수록곡들은 이번에 안 쓰면 더 방치될 수밖에 없을 것 같았어요.”

“이 친구(송용진)는 ‘앨범 한 번 내고 말 거냐’, ‘욕심을 왜 그렇게 부리냐’라고 했어요. 그런데 전 그렇게 ‘잘’ 살아오지 못해서. 이번에 내고 더 못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최대한 ‘엑기스’를 넣고 싶잖아요.”
#7.
이쯤에서 준비해 간 질문 하나를 꺼냈다.
요즘 장안의 화제가 되고 있는 MBC 예능프로그램 ‘나는 가수다(이하 나가수)’. 뮤지컬 팬들 사이에서는 일찌감치 ‘뮤지컬 배우 중에서는 이영미, 차지연이 나가면 통할 것’이란 말이 나돌았다.
이영미도 ‘나가수’를 시청했을 것이다. 보면서 ‘나도 한 번 …’이란 생각은 들지 않았을까.

“최근 콘서트를 하고 나서였는지 나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무대에 서 있는 사람들이 너무 부러웠어요. ‘나는 왜 아직 아닐까’ 하는 식의 여러 감정이 올라왔죠.”

“음악은 주관적인 것이라 생각해요. ‘저 사람들보다 잘 할 수 있다’,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다’라는 건 아니고요. 그냥 ‘저 자리에 내가 끼지 못 한다’라는 사실에 울화가 치밀더라고요. 무대에 선 가수들, 너무 멋있죠. 그런 무대에서 대등하게 겨뤄볼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8.
이제 슬슬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막판에는 송용진의 말이 많아졌다. 할 말이 많은 듯 보였다.

“(송용진) 정규앨범은 방송 말고 ‘라이브’로 가자고 했어요. 그래서 타이틀곡도 대중적인 것 말고, 우리가 처음에 좋아했던 곡(폴른!!)으로 했죠. 이영미라는 사람이 뮤지컬배우로는 경력이 길지만 가수로는 1년도 안 된 거잖아요. 방송에서 짧게 뭔가를 하려고 하지 말고, 길게 보자고 했어요. 그러자면 가수 이영미로서의 음악적 활동이 필요하거든요. ‘계속 후원할 테니, 계속 하라’고 했죠.”

“(송용진) 저는 지금까지 한 번도 밴드생활을 쉰 적이 없고, 라이브를 안 한 적이 없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뮤지션이 아닌 배우로만 인정받는 경향이 있죠. 누나도 똑같은 딜레마를 갖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송용진에게도 아픈 기억이 있다.
지난해 이영미의 싱글앨범이 나왔을 때, 송용진은 직접 CD를 싸들고 방송국을 돌았다. PD와 작가를 만나 CD를 건네고 방송에 틀어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반응은 냉담했다.

“(송용진) 그 분들은 제가 누군지도 모르죠. 관심도 없고. 아마 앨범 돌리러 온 가수 매니저쯤으로 생각했을 거예요. CD를 들고 가서 ‘이영미란 뮤지컬 배우가 앨범을 냈다’, ‘싱어송라이터인데 진짜 노래 잘 한다’고 하니 대뜸 ‘뮤지컬이나 하지 앨범은 왜 냈어’라더군요. 그것도 반말로 … ㅎㅎ”

물론 결과는 좋지 않았다.

#8.
이영미는 올 한 해 동안 뮤지컬 배우와 가수로서의 활동을 병행한다. 현재 ‘헤드윅’에서 ‘이츠학’을 연기하고 있고, 하반기 대작 ‘조로’에도 캐스팅됐다.

이영미의 노래를 뒷받침할 밴드도 구성됐다. 클럽을 비롯해 어디든 ‘쉼없는 라이브’가 목표이다.
이번 앨범은 꾸준한 라이브로 ‘뮤지션 이영미’가 인정받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모토를 따로 정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꾸준하게, 오래하자’ 쯤으로 보면 될 것 같다.
#9.
이 인터뷰가 있은 지 얼마 후, 기자는 이영미가 출연하는 뮤지컬 ‘헤드윅’을 보았다.
인터뷰 기사를 좀 더 충실하게 쓰고 싶어서 … 는 거짓말이고, 이영미의 팬들이 하도 ‘이영미의 이츠학은 전설이다’라며 관람을 강요하다시피 하는 바람에 공연장을 찾게 됐다.

결론은, 팬들의 얘기는 조금도 과장된 것이 아니었다!

세상에 앨범보다 라이브가 못한 가수는 많아도, 그 반대는 지극히 드문 법. ‘진짜 이영미’는 박제된 앨범 속이 아니라, 무대 위에 있었다.
조정석 ‘헤드윅’도 무척 잘 했지만(그는 이미 ‘헤드윅’의 경험이 있다) 이영미의 ‘이츠학’은 과연 ‘전설’이라 해도 부족함이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는 조근조근 부르는 대목에서조차 KT&G 상상아트홀의 지붕을 뚫고 나갈 만큼 강렬했다.
관객은 그녀의 노래가 끝날 때마다 박수를 치는 것조차 잊었다. 공연장 꽤나 출입하는 기자도 두 번이나 박수 칠 타이밍을 놓쳤을 정도였다.

고백한다.
이날 공연 후 기자는 뮤지컬 배우이자 가수인 이영미의 열렬한 팬이 되었다.
아니, ‘팬’이 아닌 ‘신도’가 되어 버렸다.
신이여, 여왕을 구하소서.(God Save The Queen)!!

양형모 기자(트위터 @ranbi361)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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