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싱Q|중년배우가 사는법] 윤정희 “남편과 입맞췄는데 NG만 36번…어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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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4월 26일 07시 00분


16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윤정희. 60∼70년대 스크린스타로 이름을 날린 그녀는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고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5월 13일 개봉하는 영화 ‘시’로 윤정희는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까지 밟는다.
16년 만에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윤정희. 60∼70년대 스크린스타로 이름을 날린 그녀는 40여 년이 흐른 지금도 여전히 고운 자태를 간직하고 있다. 5월 13일 개봉하는 영화 ‘시’로 윤정희는 칸 국제영화제 레드카펫까지 밟는다.
스크린에 중년배우시대가 열렸다.

어머니나 할머니 역할, 혹은 ‘사모님’이나 가사도우미 등으로 출연해 ‘생활연기자’라는 수식어가 붙었던 50대 이상의 중년 배우들이 조연이 아닌 당당한 주연으로 나서면서 ‘중년의 시대’를 열고 있다.

올해에만 나문희, 김수미 주연의 ‘육혈포강도단’과 김해숙 주연의 ‘친정엄마’가 개봉한 데 이어
이순재 주연의 ‘그대를 사랑합니다’도 현재 촬영이 한창이다. 5월13일 개봉하는 윤정희 주연의 ‘시’도 중년배우시대를 열어갈 작품이다.

윤정희를 통해 스크린의 중년시대를 들여다봤다.
16년만의 스크린 외출이라 떨렸나
오랜만에 연기연습까지 했건만
유독 그 신만 37번만에 OK 났죠
신성일 남궁원 등 男배우는 다 형제
문희 남정임? 라이벌이라기보단…


세월을 따라 배우의 얼굴에도 주름이 패었다. 하지만 그 세월의 흔적은 배우가 지닌 깊은 내면의 아름다움까지는 훼손하진 못했다. 보석은 세월이 흘러도 여전히 빛나는 보석이듯, 그녀의 아름다움도 전혀 빛이 바래지 않았다.

카페 2층의 마지막 계단을 오르며 옅은 한숨을 내뱉은 뒤 윤정희(66는 환한 웃음으로 인사했다. 정갈한 분홍빛 개량 한복을 차려입은 모습은 고왔고, 조금 느리게 이야기하는 말투는 우아했다.

이창동 감독의 새 영화 ‘시’(제작 파인하우스필름·유니코리아 문예투자) 주연인 원로 배우 윤정희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1994년 ‘만무방’ 이후 스크린에서 볼 수 없었던 그녀는 16년 만의 복귀작인 ‘시’를 통해 제63회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다.

-칸 영화제 레드카펫을 밟는 소감은.

“너무 기쁘다. 그러나 레드카펫에 대한 흥분보다는 이 나이에 좋은 감독과 좋은 작품을 한 것에 더 행복하다.”

-은퇴선언을 한 적이 없는데, 복귀에 16년이나 걸렸다.

“좋은 작품을 기다렸다. 드라마, 연극 제안이 있었지만, 나는 큰 화면의 연기가 좋았고, 한 컷 한 컷 정성들여 찍는 영화가 내 성격에 맞다. 특히 수동적이 아닌, 내 연기를 보러 극장으로 오는 능동적인 관객들과 만나고 싶었다. 결국 ‘시’ 같은 훌륭한 작품을 만났다. 앞으로 또 10년이 걸리더라도 ‘시’ 같은 영화를 기다리겠다. 아무리 영화가 하고 싶어도, 좋은 영화 아니면 출연하지 않겠다.”

-‘시’를 포함해 요즘 ‘육혈포강도단’ 등 중년 배우들이 주연을 맡은 영화가 늘고 있다.

“좋은 현상이다. 연기는 삶의 재연을 하는 것이다. 우리 인생이 20∼30대만 있는 게 아니다. 다양한 삶을 더 보여줄 수 있는 영화가 많이 나와야 한다.”

-여전히 친분이 있는 배우들이 많을 텐데.

“예전 동료들과 형제같이 지낸다. 신성일과는 아흔아홉 작품을 했으니 얼마나 친했겠나. 신영일 남궁원 등과도 친분이 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여자 배우들과는 친할 기회가 없었다. 당시엔 여성 투 톱 영화가 거의 없었다. 작품마다 매일 남자배우들과 촬영했다. 또 동년배 여자 탤런트와는 활동 무대가 다르다보니 친분 쌓을 계기가 없었다.”

-10여년 만에 연기하면서 촬영은 순조로웠나.

“예전부터 촬영을 앞두고 연습하는 걸 좋아하지 않았다. 감정 연기는 한두 번째에 잘 나왔고, 반복하면 오히려 다른 감정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시’ 촬영하면서 어떤 것은 한번에 OK 받기도 했고, 어떤 장면은 무려 37번이나 찍었다. 남 앞에서 연기연습 안하는데, 어떤 아주머니에게 통사정하는 장면이 있었다. 어려운 장면이라 미리 남편을 앞에 두고 연습까지 했지만, 결국 이틀간 37번이나 찍었다.”

-요즘 같이 해보고 싶은 후배 연기자나 감독이 있다면.

“이창동 감독과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하고 싶고, 오랫동안 영화제의 심사를 맡으면서 봐왔던 봉준호 김기덕 박찬욱 홍상수 허준호 등과는 아무 때고 해보고 싶다. 나는 어떤 상황이건 좋은 감독 좋은 영화이면 언제든지 (살고있는 파리에서)날아올 수 있다.”

○ “화려한 과거는 의미 없어…늘 미래를 꿈꾸며 산다.”

-과거 한창 때는 한 달에 40편을 찍기도 했다던데.

“맞다. 그땐 좋은 감독도 많았다. 김수용 감독과 스무 작품을 했는데, ‘안개’ ‘야행’ ‘화려한 외출’ 등은 굉장히 모던한 작품이다. 그분은 머리 속에 콘티가 있어서 빨리 찍을 수 있었다. 빨리 찍는 것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촬영 기간을 따지자면, 임권택 감독이 오히려 빨리 찍었다.”

-배우로서 인기절정일 때 파리유학을 갔다.

“영화가 싫어서가 아니라 나의 세계를 찾고 싶어서 유학을 갔다. 당시엔 외출하면 너무 많은 인파에 휩싸이고, 내 시간이 없었다. 공부가 하고 싶었다. 애초 배우를 5년하고 유학가려고 했는데, 결국 7년을 하고 떠났다. 그래도 유학하는 동안 한국으로 와서 영화도 자주 찍었다. 공부하면서 영화 촬영 하다보니 영화가 더 귀한 것이란 걸 알게 됐다. 그래서 더 열심히 하게 되더라. 결혼 후에도 좋은 작품을 골라 했는데, 보람 있었다.”

-프랑스에서 영화출연 제안은 없었나.

“있었다. 임신 3개월일 때 알란 케이라는 유명 감독이 폴 크루터의 작품을 영화화 하는데, 동양인 찾고 있더라. 하지만 내 머리를 금발로 바꾸고, 렌즈로 파란 눈을 하라고 요구해서 거절했다.”

-문희, 남정임과 스크린 트로이카로 불리었다. 연기자간의 라이벌의식은 없었나.

“남들은 라이벌이라 하지만, 우리끼리는 그런 것 없었다. 서로 작품이 너무 많았고, 또 홀로 앞서기보다, 셋 모두 ‘더 좋은 작품을 해야 한다’는 선의의 경쟁의식이 있었다.”

-화려했던 과거가 그립지 않나.

“과거는 전혀 생각지 않고, 늘 현재에 만족하고 산다. 내가 과거에 어떻게 했다는 건 소용없는 일이다. 시간낭비다. 현실을 중요시하면 미래가 좋다. 난 늘 미래를 꿈꾸고 산다. 난 무얼 하든 노력하는 노력파다. 남편이 가끔 불평을 한다. 일밖에 모른다고.”
실제로 윤정희는 한 대의 휴대전화를 남편과 공동으로 사용하며, 자가용도 없다. 현재 파리의 아파트도 1978년 입주한 후 지금까지 30년 넘게 살고 있다. 웬만한 가구도 남편이 직접 만들었다고 했다. 한국에서의 거주지도 1971년 입주했던 서울 여의도 시범아파트에 그대로 두고 있다.

“가끔 유럽에 캐슬(화려한 거대 별장) 하나쯤 갖고 있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는데, 좋은 친구들이 많아서 캐슬을 가진 친구가 있다. 거기 놀러 가면 된다. 갖고 있으면 오히려 불편하다. 나는 심플한 게 좋다.”

-그렇다면 어떤 미래를 꿈꾸나.

“지금의 생활이 세상 끝날 때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것이 꿈이다. 배우로서 좋은 작품 하는 것, 남편이 좋은 음악을 하는 것이 내가 희망하는 미래다.”

-‘시’가 배우 윤정희에게 어떤 의미로 남길 바라나.

“새로운 윤정희를 보여줬다는 의미에서 제 2의 데뷔작이다. 이창동 감독이 나를 변화시켰고, 제 2의 데뷔를 시킨 것이다. 영화를 떠나지 않고 좋은 작품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내가 복이 많은 것 같다.”
16년을 기다려 ‘시’같은 좋은 작품을 만났다

앞으로 또 10년이 걸리더라도 ‘시’같은 영화를 기다리겠다 아무리 영화가 하고 싶어도 좋은 영화가 아니면 출연않겠다 - from. 윤정희

■ 윤정희

윤정희는 1960년대 한국 영화 황금기를 대표하는 배우다. 1966년 1200대1의 경쟁률을 뚫고 신인 배우 오디션에 합격, 영화 ‘청춘극장’의 여주인공으로 화려하게 은막에 데뷔했다. 1960년대 문희, 남정임과 함께 ‘여배우 트로이카’ 시대를 연 그녀는 첫 영화부터 주연을 꿰차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이후 330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대종상, 백상예술대상 등 각종 영화상에서 24차례 여우주연상을 받았다. 그녀의 결혼은 영화와 같았다. 1972년 뮌헨올림픽 문화축전에 자신이 주연한 영화 ‘효녀 심청’(감독 신상옥)이 상영되면서 독일에 갔다가, 윤이상의 오페라 ‘심청’의 초연을 보기 위해 뮌헨에 온 피아니스트 백건우와 처음 만났다. 짧은 만남 후 긴 이별이었지만 윤정희가 유학을 떠난 파리의 한 식당에서 운명처럼 다시 만나 1976년 파리에서 결혼했다. 현재 슬하에 바이올리니스트 딸이 있다. 1994년 그녀에게 대종상 여우주연상을 안긴 ‘만무방’을 끝으로 긴 휴식기를 갖다 5월 13일 개봉하는 ‘시’로 복귀했다.

김원겸 기자 gyummy@donga.com
사진|양회성 기자|yoh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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