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2칼럼/정주현] 예스맨 프로젝트, 유쾌하고 발랄한 초대형 사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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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0년 3월 25일 15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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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 부조리와 글로벌 기업의 횡포를 꼬집는 \'예스맨\'.이들은 기업 대변인 등을 사칭해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거나 방송에 출연, \'깜짝 발표\'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사회 부조리와 글로벌 기업의 횡포를 꼬집는 \'예스맨\'.이들은 기업 대변인 등을 사칭해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하거나 방송에 출연, \'깜짝 발표\'로 세상을 놀라게 한다.

이 영화가 지난 해 DMZ 다큐멘터리 영화제에서 처음 한국에 공개됐을 때, 한 관객은 감독과의 대화를 하러 나온 커트 잉페어 감독에게 물었다.

'저렇게 하면 고소당하지 않나요?'

2004년 어느 날, 프랑스 파리. 말쑥하게 차려 입은 한 남자가 BBC 방송국의 해외 뉴스 제작 스튜디오로 걸어 들어간다. 카메라가 켜지고 사인이 들어오자 세계 굴지의 기업 다우 케미컬의 대변인이라고 밝힌 이 남자는 다음과 같은 폭탄선언을 한다.

"다우 케미컬은 1984년 인도 보팔에서 일어난 가스누출사고 피해자들에게 120억 달러(약 14조원)의 보상금을 지급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 소식은 곧 전 세계에 속보로 퍼져나가고 주가는 곤두박질친다.

▶ 세상의 부조리를 파헤치는 예스맨의 실체

보팔의 가스 누출 사고는 살충제 제조사 '유니온 카바이드'의 공장에서 유독 가스가 유출돼 보팔 주민 15만 명이 불구가 되고 그 가운데 2만2000명이 사망한 사건이다. 2001년 다국적 기업 '다우 케미컬'이 '유니온 카바이드'를 인수할 때까지 피해민은 소액의 보상금 외에 어떤 보상도 받지 못했다.

피해자들에 보상금을 지급한다는 발표는 '뻥'이었다. '다우 케미컬'의 대변인이라고 밝힌 남자는 이 회사와 전혀 관련이 없는 인물이었다. 단지 인터넷에 다우 케미컬과 비슷한 웹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이를 진짜와 혼동한 어리바리 언론에게서 인터뷰 요청이 들어오기만 기다렸을 뿐.

하지만 그 파급력은 어마어마했다. 이 소식은 만 하루가 지나기 전에 피해 지역인 인도 보팔까지 전해졌고 전 세계의 주식시장은 벌집을 쑤셔놓은 듯 들썩거렸다. 그리고 언론은 20여 년을 끌어온 다우의 사고 책임 공방과 이번 결정으로 인한 금전적 효과를 계산하는 데 열을 올렸다. 오보를 내보낸 BBC가 국제적으로 망신을 당했음은 물론이다.

엄청난 사고를 친 후 유유히 퇴장해 이 상황을 지켜보던 사건의 당사자 '예스맨'들은 뉴스를 보며 이렇게 말한다.

"사고에 대한 피해 보상은 당연한 일이고 사람들은 잘 되었다며 기뻐한다. 그런데 자본 시장은 이와 반대로 말한다."

'예스맨'은 유력한 조직 또는 유명 인사의 대변인을 사칭, 각종 국제회의에 참석해 그들이 하지 않은 일을 발표하는 일종의 시민단체다.

거짓말 같은 100% 리얼 다큐를 통해 이들의 아슬아슬한 '진실게임'이 전개된다. 관객은 이들의 아찔한 도전에 놀라기도, 통쾌해 하기도 한다.
거짓말 같은 100% 리얼 다큐를 통해 이들의 아슬아슬한 '진실게임'이 전개된다. 관객은 이들의 아찔한 도전에 놀라기도, 통쾌해 하기도 한다.


이들은 더불어 이렇게 꼬집는다.

"다우는 이 사고로 실추한 이미지를 손상하기 위해 어마어마한 광고비를 사용했다. 보팔에 보상해야 하는 금액보다 훨씬 큰 금액이었다. 그렇다면 다우는 왜 적은 돈을 들여 보상하기보다 많은 돈을 들여 광고를 하는 쪽을 택했을까. 그것은 피해자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했을 경우에는 돌아오는 경제적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이들의 다음 타깃은 세계 최대 정유업체인 엑손. 에너지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 이 거대 기업의 직원을 사칭한 이들은 한 에너지 관련 컨퍼런스에서 엑손 말단 직원의 동영상을 튼다. 그리고 말한다.

"지금 여러분들의 테이블 위에서 타고 있는 초는 이분의 고귀한 죽음으로 만들어진 것입니다."

기증한 직원의 시신으로 친환경(!) 초를 만들었다는 것이다. 몇은 사색이 되고, 몇은 급히 초를 끈다.

그들의 풍자 대상은 기업에게만 한정되지 않는다. 태풍 카트리나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뉴 올리언즈에서 재개발이란 명목으로 서민임대주택의 집을 허물어 버리는 미국주택도시개발청(HUD)도 예외가 되지 못했다. WTO와 같은 국제기구에도 일침을 놓았다.

명망 있는 경제학자나 대기업의 최고경영자들도 예스맨들과 인터뷰를 하다 보면 자신들이 만들어 낸 논리의 모순에 빠져 엉뚱한 대답을 하기 일쑤이다. 예를 들면 "지구온난화가 나쁜 것만은 아니잖아요. 따뜻한 날씨 얼마나 좋습니까" 라는 식의….

도저히 가능할 것 같지 않은 이 기상천외한 사기극에 다국적 기업과 관료들의 위선은 줄줄이 까발려진다.

▶ 100% 실제 상황, 코미디 같은 리얼 다큐

이토록 거침없는 예스맨들의 사기행각을 보고 있노라면 앞의 관객이 질문한 것처럼 '저러다 정말 큰일 나지'란 생각이 절로 든다. 이에 대한 대답으로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오히려 고소하는 기업이 있다면 환영할 일입니다. 그러면 언론의 관심을 더 받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실제로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예스맨들이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서 사칭을 한 것이 아니라 기업들이 예스맨들을 먼저 접촉한 것인데다가, 그들의 공격대상이 개인이 아닌 '잘못된 정책' 그 자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다국적 기업들의 횡포와 신자유주의의 폐해. 사람의 목숨보다 돈이 앞서는 왜곡된 시장논리. '예스맨 프로젝트'는 언뜻 이해가 잘 가지 않는, 그리고 우리 일상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거대 담론을 논하는 영화이다.

하지만 이 모든 이슈를 너무나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는 것이 이 영화의 가장 큰 장점이다. 실제로는 평범한 대학교수로 재직 중인 두 예스맨은, 스스로를 '초특급 울트라 정예 비밀요원'으로 부르며 세상의 부조리에 시원한 하이킥을 날려댄다.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마치 한편의 코미디를 보는 것처럼 즐겁고 유쾌하다. 너무 재미있어서 연출이 아닐까 싶을 정도지만 100% 실제 상황이다.
이들이 전하는 풍자와 해학은 종종 웃음을 유발한다. 심각한 주제의 다큐물이 코믹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이들이 전하는 풍자와 해학은 종종 웃음을 유발한다. 심각한 주제의 다큐물이 코믹하게 받아들여지는 이유다.


▶ 신자유주의와 다국적 기업의 폐해를 까발린다

또한 이런 이슈들을 논함에 있어 결코 권위주의적인 태도로 훈계하지 않는다. 예스맨들은 공감하기 어려운 자료나 통계를 들어 일방적으로 관객들을 가르치려 하기 보다는, 스스로 행동하며 같이 동참하기를 권유한다. 관객들의 이해를 돕기에 적절한 장치라면 우스꽝스러워 보이는 소품이나 황당한 발명품도 마다하지 않고, 무디어진 인식을 깨우기 위해서라면 다소 충격적인 설정도 서슴지 않는다. 오히려 이런 허술한 궤변에 쉽게 속아 넘어가는 세상이 더욱 충격적이다.

이들의 장난이 무조건 옳다고 할 수는 없다. 이런 장난이 얼마나 세상을 바꿀 수 있을 지, 오히려 그들의 장난으로 또 다른 피해자가 생겨나는 것은 아닌 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들이 말하는 사회적 약자와 기득권 세력의 경계 역시 상황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이편과 저편으로 나누기엔, 이미 세상은 너무 다면적이고 다층적이니까.

하지만 확실한 것은, 이들이 지금 자유경제 만능주의의 이면에서 소외된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기 위해 '행동'하고 있다는 점이고, 이 '행동'은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왜냐고? 그들은 말한다. "멍청한 짓을 비웃기만 하는 것은 더 멍청한 짓이니까."

이 영화는 베를린, 선댄스 등 세계 유수의 영화제에서 호평을 받았다. 특히 베를린에서는 관객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그 만큼 예스맨들의 활약에 공감하고 즐거워하는 관객들이 많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만일 그들이 지루한 조롱과 비판으로만 일관했다면 영화의 내용과 관계없이 관객들은 등을 돌렸을 것이다. 권위와 격식의 모든 옷을 벗고 웃음으로 희망을 이야기했기 때문에 관객들은 그들에게 박수를 보냈음이 틀림없다.

너무나 즐거운 그들의 모습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이들의 경쾌한 사기극을 보게 될 것이라는 예감을 하게 한다. 하지 말아야 하는 일을 하고 있는 기업이나 기구가 있다면,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정주현/ 영화진흥위원회 코디네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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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영상 = 다큐멘터리 `예스맨 프로젝트` 예고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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