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리스’ 첫회 3명중 1명 “지상파로 안봤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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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09년 11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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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보는 ‘다매체 시청’ 시대



보험회사에 다니는 김미은 씨(27·여)는 KBS2 드라마 ‘아이리스’의 팬이다. 지금까지 한 회도 빼놓지 않고 봤다.

김 씨가 이 드라마를 본 것은 TV를 통해서가 아니다. 그는 개인 간(P2P) 파일공유 사이트에서 회당 700원을 내고 드라마를 다운받아 MP3플레이어로 옮긴 뒤 퇴근 후 헬스장 트레드밀(러닝머신) 위를 달리면서 봤다. 그는 “직장인이라 본방송 시간인 오후 10시대에 맞춰 TV 켜기가 힘들다. 방송일자보다 조금 늦더라도 내가 편한 시간에 내려받아서 본다”고 말했다.

TV 프로그램을 지상파로만 보던 시대는 지났다. 이제 하나의 프로그램은 지상파를 비롯해 케이블, 디지털멀티미디어방송(DMB), 인터넷TV(IPTV), 방송사 홈페이지, P2P 사이트 등 최소 5, 6개 통로로 유통된다. 특히 활동성이 크고 뉴미디어에 익숙한 젊은 세대일수록 지상파 이외의 경로로 프로그램을 보는 ‘다매체 시청족(族)’이 많다.

현재 지상파와 케이블의 시청률은 조사기관이 발표하지만 그 외의 매체를 통한 시청자 수는 대외적으로 공개되지 않는다. 아이리스 첫 회의 유통 경로별 시청자 수를 각 업체에 의뢰해 국내 다매체 시청 현황을 들여다봤다.

○ 3명 중 1명 이상, 지상파 이외의 매체로 시청

TNS미디어코리아에 따르면 지난달 14일 KBS2에서 방송한 아이리스 첫 회의 개인 시청률은 10.706%다. 이를 전국 시청자 수로 환산하면 약 484만400명이 지상파를 통해 첫 회를 본 것으로 추정된다. 같은 방식으로 집계한 17일 재방송 시청자 수는 약 100만1000명. 모두 584만1400여 명이 지상파로 첫 회를 본 셈이다.

지상파 이외의 매체로 이 프로그램을 접한 시청자는 몇 명일까.

케이블채널 OCN은 17∼22일 첫 회를 8번 방송했다. 이 기간 시청자 수는 약 97만6100명으로 추산된다. 케이블 채널 KBS드라마는 24, 25일 첫 회를 3번 방송했고 예상 시청자 수는 49만4200여 명. 지상파 DMB로 본 사람은 약 3만8500명이다.

아이리스는 지상파 방송이 나가면 30분이나 1시간 뒤 웹하드 및 P2P 사이트에 해당 방송분이 올라와 유료로 볼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온라인 유통사인 씨네21i와 계약을 한 사이트는 94곳. 씨네21i에 따르면 첫 회의 합법 다운로드 건수는 약 25만 건에 이른다. IPTV 3사를 통해 집계한 주문형비디오(VOD)의 첫 회 다시보기 수는 약 57만5600건이다.

KBS 홈페이지에서도 방송 다음 날부터 화질에 따라 무료 및 유료로 드라마를 다시 볼 수 있다. KBS는 아이리스 첫 회의 유료 다시보기 수는 매출과 연결되는 ‘대외비’이고, 무료 다시보기는 아직 집계되지 않아 수치를 공개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KBS 측은 “회당 평균 무료 다시보기 시청 수가 62만8200여 건이었던 ‘아가씨를 부탁해’보다 ‘아이리스’가 훨씬 많을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350만여 명이 1회 방송분 케이블 - P2P - DMB 등으로 봐
지상파 본·재방은 584만명 시청… “드라마 마케팅 다변화”


‘아이리스’의 무료 다시보기 이용 수를 ‘아가씨를 부탁해’와 비슷한 선으로 가정하더라도 지상파를 제외한 5개 통로를 통한 시청자 수는 296만2600여 명에 이른다. 이 수치에는 KBS 홈페이지 유료 다시보기 및 다운로드, 집계가 어려운 P2P 불법 다운로드, 위성 DMB는 제외됐다.

통상 P2P 불법 다운로드가 합법 다운로드(25만 건)보다 많다는 점을 감안하면, 지상파 이외의 매체로 아이리스 첫 회를 본 시청자는 350만여 명으로 추산되며 이는 지상파(584만1400명)의 절반을 크게 웃돈다. 아이리스 시청자 3명 중 적어도 1명은 지상파 이외의 매체로 방송을 본 셈이다.

○ 프로그램 마케팅 방식도 바뀌어

다매체 시청족의 급증은 프로그램의 마케팅 방식도 바꾸고 있다. 시청시간이 고정된 지상파와 달리 비(非)지상파를 통한 시청은 시간이 지날수록 계속 늘어난다.

아이리스 공동 제작사인 에이치플러스의 조현길 대표는 “제작비 수급을 위해서는 여러 매체로 프로그램을 노출해야 어느 정도 수익이 나온다”고 말했다. 아이리스는 KBS와 편성 논의가 오갈 시점에 케이블 채널 OCN과 먼저 계약을 마쳤고, 현재 일본 지상파로 수출 계약도 마쳤다.

올해 초 방영해 10, 20대 사이에 큰 인기를 누린 KBS2 ‘꽃보다 남자’는 이색 마케팅을 시도했다. 제작사인 그룹에이트는 젊은층이 자주 찾는 웹사이트인 다음과 싸이월드에 10분 단위로 편집된 무료 동영상을 올렸고, 동영상에 붙은 광고로 수익을 올렸다. 그룹에이트의 전규아 차장은 “이 드라마는 주 타깃층이 뉴미디어에 익숙한 10대였다. 그만큼 P2P 다운로드, 모바일 다시보기와 같은 방식으로 올린 수익이 다른 프로그램 평균치의 7∼10배 정도 된다”고 말했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권호영 박사는 “올해 초 미국에서 발표한 연령대별 영상 콘텐츠 이용 현황을 보면 인터넷을 통한 프로그램 시청은 18∼24세가 제일 많았고, 휴대용 기기로 보는 것은 12∼17세가 가장 많았다. TV 시청은 나이가 많을수록 늘어나는 추세를 보였다”고 말했다. 권 박사는 “방송 콘텐츠의 2차 유통시장이 형성된 지 오래됐지만 대부분 콘텐츠를 저가(低價)에 유통하고 있다. 바람직한 수익 모델로 자리 잡으려면 제값을 받고 판매할 수 있는 시장이 형성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지연 기자 chanc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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