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만의 귀환, 더 세련된 놈들이 온다

  • 입력 2009년 5월 12일 02시 57분


시리즈 3편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변하지 않았다. 4편의 주인공 존 코너는 2편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했던 터미네이터 T-800과 적으로 재회한다. 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시리즈 3편의 싸움에도 불구하고 미래는 변하지 않았다. 4편의 주인공 존 코너는 2편에서 아널드 슈워제네거가 연기했던 터미네이터 T-800과 적으로 재회한다. 사진 제공 롯데엔터테인먼트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6년 만에 돌아온 네 번째 ‘터미네이터’ 영화.

팬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25년 전 1편을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은 시리즈 3편부터 손을 뗐다.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졸작이었던 3편을 남기고 정계로 떠났다. 캐머런과 슈워제네거 없이 이 20세기 흥행작을 되살리겠다고 나선 이는 ‘미녀 삼총사’ 등 겨우 네 편의 장편영화를 연출한 맥 지 감독이다.

하지만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21일 개봉)은 영어 부제처럼 스스로를 ‘구원(Salvation)’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주인공은 1편부터 예견됐던 인간저항군 지도자 존 코너(크리스천 베일)다. 슈퍼컴퓨터 ‘스카이넷’이 핵무기로 인류 대부분을 말살한 2018년 지구. 영화는 저항군의 절망적인 싸움과 함께 1편에 나왔던 터미네이터 ‘T-800’의 탄생 과정을 그렸다. 클라이맥스는 1편에서 과거로 왔던 아버지 카일(안톤 옐친)과 코너의 만남이다.

이야기는 익숙하다. 관건은 볼거리. 아카데미 시각효과상을 받은 2편은 ‘저 장면에 특수효과를 썼겠구나’ 생각하며 볼 수 있었다. 이에 비해 4편의 특수 효과는 스크린에 자연스럽게 숨어들었다. 컴퓨터그래픽으로 다시 불러낸 슈워제네거의 젊은 모습은 1편부터 참여한 특수효과감독 스탠 윈스턴이 이뤄낸 정점이다. 엔딩 크레디트는 지난해 제작 중 사망한 그에게 이 영화를 바쳤다.

중반부에 여전사 블레어(문 블러드굿)가 등장한 뒤부터 이야기는 위태위태한 난파의 고비를 맞는다. 위기를 넘기게 하는 것은 배우의 매력이다. 주연 베일은 영화 속 대사 그대로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기계와 전쟁을 벌여 온” 영웅답게 품위 있는 액션 연기를 보여줬다. 새 ‘배트맨’ 시리즈 이후 블록버스터 히어로로 입지를 굳힌 그는 배트맨의 흔적을 완전히 걷어내고 새로운 미래 영웅의 모습을 보여줬다. 사이보그 마커스를 연기한 샘 워싱턴은 옛 시리즈와 새 시리즈를 연결하는 매력적인 징검다리가 됐다.

감독이 심어놓은 전편들에 대한 오마주도 풍성하다. 초반 코너와 구형 터미네이터의 육박전은 1편 말미 새라 코너와 반 토막 난 터미네이터가 벌였던 사투에서 가져왔다. 2편 자동차 추격 때 오토바이를 타고 날아올랐던 슈워제네거를 연상시키는 장면도 있다. 명대사 “돌아올게(I'll be back)”도 빠지지 않았다.

시리즈 전작뿐 아니라 다른 영화를 닮은 요소도 많다. 스카이넷은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이후 ‘아이 로봇’ 등에서 봤던 슈퍼컴퓨터와 크게 다르지 않다. 정체성을 고민하는 마커스는 ‘블레이드 러너’에서 익숙해진 캐릭터다. 새 ‘터미네이터’가 건넨 텍스트는 ‘블레이드 러너’만큼 풍성하진 못해도 ‘미녀 삼총사’만큼 얄팍하지도 않다. 막판 반전도 예상 가능한 내용이지만 어색한 봉합은 아니다. 음악감독 대니 앨프먼은 익숙한 “두둥 둥 두 두둥!” 테마를 딱 두 번 썼다. 코너와 T-800이 재회하는 후반부 장면. 이 주제음악은 힘껏 기를 끌어 모아 터뜨린 한 방의 주먹처럼 관객의 심장을 때린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b>|주목! 이 장면|

“당신이 언제나 나를 지켜줬다”

새 ‘터미네이터’ 시리즈 첫 편의 백미는 1편에서 과거로 와 죽었던 카일과 그 아들 코너의 재회다. 코너는 영화 막판 T-800과의 격전 도중 자기보다 나이 어린 아버지를 찾아내 오랫동안 품어온 애정을 짧은 한마디에 담아 고백한다. “당신이 언제나 나를 지켜줬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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