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형모의 음담패설] “장르는 없다” 우리 노래를 찾자

  • 입력 2008년 11월 11일 08시 13분


“우리다우면서도 세계로 나갈 수 있는 노래가 없어요.”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이자 가야금의 명인 황병기 씨는 한탄을 하고 있었다.

“음악의 근원은 노래지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노래의 90%가 사랑노래입니다. 그 사랑노래 중에서도 90%는 ‘불륜’이에요. 현존하는 백제 최고(最古)의 가요가 정읍사라고 합니다. 그런데 정읍사는 장사를 나간 남편에 대한 아내의 사랑고백이에요. 이게 건전가요 중의 건전가요인 거라.”

올해 다섯 번째를 맞은 한국가요제는 국내 음악인들의 애타는 고민 속에서 만들어졌다.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인 노래를 만들어보자는 취지이다.

국립극장이 주최를 하고 르노삼성자동차가 후원을 해오고 있다.

4일 국립극장에서 최종결선에 오른 14개 팀이 마지막 경합을 벌였다.

장르불문, 나이불문. ‘한국적=국악’이란 공식도 불문이다.

이번 출전팀의 면면만 봐도 소울, 발라드, 록, 랩, 퓨전, 국악이 총출동해 대중음악의 박람회를 방불케 했다.

이날 대회에서 대상 트로피와 함께 상금 1000만원을 ‘수령’한 출전자는 ‘나랏말싸미’를 부른 최윤영 씨였다.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타악군의 리듬이 ‘절반’을 먹고 들어가는 신나는 곡이다.

국악경연대회 민요와 시조부 입상자 출신답게 ‘가갸거겨 나냐느뉴’로 뽑아 올리는 시원한 구음이 리듬의 허리 위에 착 달라붙어 시종일관 귀를 잡아당겼다.

대상으로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최윤영 씨는 “지금 임신 7개월이다.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고 섰는데 …”하며 감격의 눈물을 쏟았다. 이날의 ‘나랏말싸미’는 엄마와 뱃속의 아기가 함께 부른 이중창이었던가.

개인적으로 대상후보로 꼽았던 From Korea팀의 ‘신(新) 가시리’는 가수 이용 씨의 아들로 ‘회환’을 부른 이욱 씨와 함께 동상을 받았다.

2위인 금상은 ‘노래 헤이’를 들고 나온 새세노팀.

한국예술종합학교 판소리전공자들을 주축으로 라인업을 짠 만큼 노래, 편곡, 연주에서 빈틈이 보이지 않았다.

‘노래헤이∼ 헤이헤이야!’하는 반복구가 은근한 중독성이 있다.

이 밖에도 ‘이대로 ∼ 마음아 놀아라’하는 가사가 인상적인 양양의 ‘풍악’, 올 여름 서울시립오페라단이 무대에 올린 ‘돈조반니’에서 주역을 맡았던 바리톤 홍성화 씨가 보컬로 등장한 뮤직큐브의 ‘천년지애’, 세일러문을 연상케 하는 세 명의 교복 여성보컬 비날레라가 부른 ‘사랑을 부르다’, 홍대클럽 출신 연경&JKING의 ‘모두 한번 외쳐보자 대한민국’, 현역 뮤지컬 배우 박소향이 열창한 ‘그대에게 가는 길’ 등 출전작들은 예년에 비해 한결 실력이 업그레이드되었다는 평을 들었다.

국립극장 신선희 극장장은 “많은 공연과 대회를 해봤지만 ‘다섯 번째’는 의미가 각별하다. 앞으로 다섯 회가 거듭된다면 한국가요제는 대한민국의 대표가요제로 자리 잡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고 말했다.

좋은 대회는 좋은 참가자가 찾고, 좋은 노래는 관객이 먼저 찾아 듣는다. 한국가요제의 성공 역시 이 평범한 진리로부터 자유롭지는 못할 것이다.

돌아오는 셔틀버스 안에서 ‘이대로라면 굳이 다섯 번이나 갈 것도 없지 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양형모 기자 ranb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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