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수화 인터넷 방송 ‘제주자치정보방송국’의 꿈

  • 입력 2007년 3월 23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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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아인들이 주축이 된 제주자치정보방송국 직원들. 이들은 장애인과 정상인이 소통하는 그날을 위해 뛰고 있다. 농아인인 채지혜 PD, 장행신 수화교실 진행자, 김주연 카메라 기자(앞줄 왼쪽에서 두번째부터)가 나란히 서 있다. 사진 제공 제주자치정보방송국
농아인들이 주축이 된 제주자치정보방송국 직원들. 이들은 장애인과 정상인이 소통하는 그날을 위해 뛰고 있다. 농아인인 채지혜 PD, 장행신 수화교실 진행자, 김주연 카메라 기자(앞줄 왼쪽에서 두번째부터)가 나란히 서 있다. 사진 제공 제주자치정보방송국
“소리없는 방송, 국경없는 감동”

인터넷 주소창에 http://deafwel.cafe24.com을 치면 제3의 세계가 펼쳐진다. 이곳엔 글이나 소리가 없다. 오로지 몸짓과 동영상만 있을 뿐이다. 하지만 농아인에겐 제1 세계인 국내 최초의 농아 전용 인터넷 방송이다. 농아인들이 직접 뉴스와 시사정보 프로그램을 가공해 수화(手話)로 전달한다.

장행신(49·여) 씨는 이 인터넷 방송의 ‘수화 교실’ 진행자다. 그는 제주농아복지관의 평범한 ‘식당 아줌마’였다. 지난해 6월 방송국이 문을 연 뒤 수화교실 선생님으로 변신한 그는 쾌거, 탈당, 입당, 편법 등 수화 사전에 없는 단어를 가르친다. 농아인들이 TV 수화 뉴스에 자주 등장하는 단어들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마치 인기인이 된 것 같기도 하고…. 자랑스럽죠.”

장 씨는 메신저 인터뷰에서 ‘선생님이 된 뒤 달라진 게 뭐냐’는 질문에 이같이 말했다.

농아학교 교사가 꿈이었던 장 씨의 소원을 비슷하게나마 이루게 해 준 사람은 제주농아복지관 안규환(41) 관장이다. 2급 지체장애인인 안 관장은 2004년부터 2년간 보건복지부 재활의료팀장을 지냈다. 고향인 제주도에서 일하는 게 어떠냐는 복지관 측의 제안을 받은 그는 지난해 5월 첫 출근을 했다. 직원 20명 가운데 3명뿐인 농아인은 식당일, 청소일 등 허드렛일만 하고 있었다.

안 관장은 “장애인은 세상의 조연이 아닌 주연”이라고 취임 일성을 터뜨렸다. 이후 복지관 직원은 매달 수화활용인증시험을 치르게 됐다. 청소 일을 하던 김정숙(45·여) 씨는 이 시험의 출제위원이자 평가위원이 됐다.

그는 농아인을 위한 인터넷 방송국도 세우기로 했다. 제주도농아복지관과 방송콘텐츠 제작회사인 이미지팩토리가 함께 출자해 제주자치정보방송국이 태어났다. 이 방송의 제작자(PD), 기자, 진행자는 모두 농아인이다.

안 관장은 이 방송에서 문자와 소리를 아예 없애자고 제안했다. 문자를 일반인이 외국어 자막 읽듯이 해독해야 하는 농아인에게 거부감을 주지 않기 위해서다. 농아인들은 동영상을 통해 수화로 ‘방송을 잘 봤다’는 댓글을 남긴다.

“수화는 문자보다 뛰어난 점이 있지요. 삶의 관계를 표현하는 ‘관계 언어’이기에 문자에서 찾기 힘든 감수성이 있거든요.” 안 관장의 말이다.

이미지팩토리 김경섭 실장은 “농아인은 저보다 훨씬 섬세하고 뛰어난 면이 있어 아름다운 영상을 만들어낸다”면서 “앞으로 농아인을 더 활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이 방송국 식구들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농아인을 위한 방송국을 만들고 있다.

다음 달 27일부터 5월 4일까지 제주도에서 열리는 제2회 아시아태평양 농아볼링선수권대회의 중계권을 따내 인터넷으로 세계에 방영한다. 일본 중국 인도 쿠웨이트 몽골 등 11개국 선수 100명이 참가하는 큰 대회다.

또 내년 4월 쿠웨이트에서 열리는 제21회 농아아시아경기대회의 중계 및 이벤트 영상 제작권과 배포권도 따냈다. 앞으로 인터넷과 TV가 연결되는 인터넷TV(IP TV)를 통해 방송할 계획도 세우고 있다. 이들은 농아인과 농아인, 농아인과 일반인이 소통하는 날을 꿈꾸고 있다.

하임숙 기자 arteme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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