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주년 특집] X세대 로망 ‘015B’ 장호일 “파란만장과 절치부심의 10년”

  • 입력 2006년 11월 10일 14시 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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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X세대 로망 ‘015B’ 고공비행 그시절… ‘원조 왕자병’ 장호일의 ‘자화자찬’

공중전화 앞 ‘동전 두 개 뿐’을 외치던 1집 ‘텅빈 거리에서’부터 ‘이젠 안녕’, ‘너에게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 ‘아주 오래된 연인들’,‘신 인류의 사랑’, ‘단발머리’, ‘슬픈 인연’ 등 6집에 이르기까지 신개념 객원가수 체제로 매 앨범마다 히트곡을 토해내듯 발표한 그들. 심장을 파고드는 직설적 가사와 실험적 사운드로 X세대의 감수성을 뒤흔들며 객원가수 윤종신, 이장우, 김태우, 김돈규 등을 스타급 가수로 올려놓기도 했다.

장호일은 015B 1집부터 차곡차곡 소장해왔던 X세대 기자의 “정말 대단했던 그 때를 마음껏 자랑해주시죠”라는 요청에 “정말 제대로 척을 해도 되겠느냐”며 ‘원조 왕자병’이라는 별명에 걸맞게 경쾌한 어조로 너스레를 떨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겁이 없었죠. 잘난 맛도 셌구요. 방송이나 언론의 힘으로 스타가 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더 기고만장했던 것 같아요. 음악을 하면서 제작사 눈치를 볼 필요도, 거리낌도 없었다는 것이 015B만의 스타일을 만들 수 있었던 토대였습니다. 좋게 말하면 트렌디하다고 할 수 있지만 도도하고 거만하고 재수없는(?) 스타일이 015B만의 메리트가 되었죠.”

모두 연주자 출신인 장호일-정석원-조형곤이 ‘싱어를 부려먹자’는 ‘한풀이’적인 발상으로 시작한 객원가수 체제와 뽕망치 효과음 등의 다각적 연주 시도는 당시 신선한 충격을 던지며 팬들을 끌어 모았다.

“윤종신, 이장우 등 노래를 빛내 준 훌륭한 객원가수들을 만난 것은 운이 좋다고 할 수 밖에 없어요. 해보고 싶은 게 너무 많았던 혈기 왕성한 시기에 낙원상가를 뒤져서 묵은 악기를 찾아내던 기쁨은 아직도 생생해요.”

★ “서울대 출신 그룹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도”

그룹 015B의 장호일 정석원 두 형제는 나란히 서울대 신문학과와 컴퓨터공학과를 졸업한 수재. 거기에 객원가수로 활동한 유희열까지 서울대 음대 출신으로 ‘015B=엘리트 그룹’이라는 부러움과 시기를 동시에 받았다.

요즘이야 탤런트 김태희(의류학과)를 위시해 ‘패닉’의 이적(사회학과), ‘UN’의 김정훈(치의예과), VJ 김형규(치의예과), 배우 감우성(미대), 정진영(국문과), 안재환(미대), 가수 이안(국악과), 개그맨 서경석(불문과) 등 서울대 출신들이 연예계 각 곳에 포진하고 있지만 당시에는 흔치 않은 ‘엘리트 딴따라’(?)였던 그들이다.

“서울대 출신 그룹요? 우연일 뿐이었는데 오해를 많이 샀죠. 원래 비사교적이고 내성적인 성격일 뿐인데 학벌을 알게되면 ‘싸가지가 없다’는 선입견을 가지시더라구요. 처음에는 힘들고 싫었는데 나중에는 굳이 나쁠 것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됐어요. 똑같은 말을 해도 ‘저 친구는 서울대 출신이야’라며 무게가 실리는 것을 알아버렸죠. 지금요? 연예계 생활 10여년이 넘었는데 아직도 비사교적이에요.”(웃음)

부모님께서 ‘방목형 교육철학’을 가지고 계신 덕분에 두 형제 모두 음악을 할 수 있었다는 장호일은 동생보다 졸업 학점이 훨씬 좋았다고 자랑(?)했다.

“전 B+로 졸업했고 석원이는 막판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정말 힘들게 턱걸이 졸업했죠. 특히 신문학과는 학년이 올라가도 학점 관리가 유리한 반면, 공대는 꾸준히 공부하지 않으면 따라잡기 힘들더라구요.”

공교롭게도 새 객원 싱어로 수혈한 '젊은 피' 버벌진트(본명 김진태 26) 또한 서울대 경제학과 재학생.

015B 내에도 ‘학연’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냐는 농담 섞인 질문에 모든 멤버가 손사래를 친다.

베니건스 CM송인 ‘노세송’을 듣고 잠재력을 느낀 장호일이 작곡가이자 노래를 직접 부른 케이준을 찾아냈고, 케이준의 소개로 힙합쪽에서 인정 받고 있던 버벌진트를 징검다리로 소개 받은 것.

버벌진트는 “저희 부모님 또한 ‘방목주의’입니다. 학생의 본분으로 성실했다는 것은 대학 들어오면서 입증했으니 하고 싶은 일을 하되 최선을 다하라고 말씀 하셨죠”라며 내년에 복학해 남은 학기를 마칠 예정이라고 말했다.

★ 거품처럼 사라진 전성기와 뼈아픈 파경

1996년 6집을 낸 뒤 사실상 해체에 들어간 015B. 동생 정석원과 동료 조형곤은 외국 유학길에 올랐고, 장호일은 방송 MC, DJ, 뮤지컬 음악감독, 드라마 OST 감독, 공연기획 등을 오가며 연예와 음악활동을 이어왔지만 예전의 전성기는 돌아오지 않았다.

더욱이 지난 2004년 10월. 결혼 20개월만에 11살 연하 신부와 성격차이로 파경을 맞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팬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했다.

장호일은 당시를 떠올리는 조심스러운 질문에 “힘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격려로 힘을 낼 수 있었다. ‘남는 것은 사람밖에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절감한 시간이었다.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진다고 사람이 더 강해진 것 같다”며 밝게 웃었다.

'새로운 사랑'에 대한 질문에 장호일은“한동안은 그럴 생각이 없다”고 잘라 말하며 “일이 먼저고 음악과 회사를 키워야 한다는 생각뿐”이라며 사업가로서의 포부를 밝혔다.

★ 지난 10년, ‘파란만장’과 ‘절치부심’의 세월

장호일은 지난 10년을 한 마디로 정의해 달라는 요청에 ‘파란만장’과 ‘절치부심’ 두 단어를 떠올렸다.

“지난 10년은 ‘절치부심’과 ‘파란만장’의 시간이었죠. 원래 예능쪽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리 만만한 삶이 아니에요. 그 모든 것을 희생하면서도 행복하니까요. 지난 10년 동안 음악뿐 아니라 서세원씨 영화에서 연기까지 했었죠.(웃음) 역시 송충이는 솔잎을 먹어야 한다고 전 음악이 제일 좋더라구요. 지금도 MC나 DJ 요청이 오는데 시간이 너무 아까워 못하고 있어요. 그 시간에 회사를 위해 열심히 뛰고 싶거든요.”

★ 용기로 시작한 새로운 10년… ‘015B 계보’는 계속된다. 쭉~

한 음반사가 추진한 10주년 기념 헌정음반 계획이 제 풀에 꺾이면서 스페셜 음반으로 선회, 이어 7집 신보 발매 결심으로 굳혀진 015B의 복귀.

7집 ‘럭키세븐’은 예전의 ‘감수성’에 힙합과 R&B, 일렉트로닉을 입혀 ‘향수’와 ‘진보’ 두 마리 토끼를 추구했다. ‘개국공신’ 유희열을 비롯해 가수 박정현, ‘다이나믹 듀오’, ‘버벌진트’ 같은 래퍼들, 재능 있는 신인 케이준, 신보경, 조유진 등을 객원가수로 내세워 ‘공일오비 스쿼드’를 이뤘다.

“단번에 복귀를 생각했다면 포기했겠지만 단계를 밟다 보니 자연스러웠어요. 90년대처럼 밀리언셀러를 꿈꿀 수는 없지만 같이 음악하는 즐거움을 만끽하고 있죠. 단지 매출 규모가 달라져 음악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게 음반시장의 현실입니다. 재능있는 가수들이 자꾸 예능이나 연기로 빠지는게 아쉽습니다.”

마지막에는 팬들에게 희망을 주는 메세지를 덧붙였다.

“015B는 프로듀서 팀이니까 레이블(lable)처럼 계보를 연결하고 싶어요. 솔리드와 바이브를 발굴했던 것처럼 ‘015B’ 뮤지션 출신들을 쌓아 하나의 레이블을 만들고 싶어요. 계획대로 된다면 앞으로 10년 20년 후에도 진화하는 ‘015B’를 보실 수 있을겁니다.”

★ 동아닷컴에 한마디

“우리나라는 견제와 발란스에 대해서 인정을 안하는 분위기가 있어요. 가요계에 댄스와 발라드가 공존하듯이 보수 언론도 있어야 하고 진보 언론도 있어야 서로 견제가 되는 것이겠죠. 동아닷컴도 리딩 미디어로서 꾸준한 길을 걸으면서 흔들림없이 변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이유나 스포츠동아 기자 lyn@donga.com

사진=임진환 스포츠동아 기자 tomj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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