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정은령]스크린쿼터 사수가 ‘집단이기’인가

  • 입력 2006년 1월 23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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웬만한 국민도 이제 ‘스크린쿼터’라는 말을 안다. 국내 극장에서의 한국영화 의무상영일수를 규정한 이 말이 유명해진 것은 수년 동안이나 내로라하는 한국 스타들이 거리시위까지 벌이며 ‘사수(死守)’를 외쳤기 때문이다.

이 스크린쿼터를 두고 20일 권태신 재정경제부 제2차관이 한 조찬포럼에서 “스크린쿼터에도 집단 이기주의가 있다”고 영화계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미국 측은 그동안 “한국이 미국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으려면 스크린쿼터부터 축소해야 한다”고 줄기차게 요구해 왔다. 경제 부처 고위 관료의 스크린쿼터 관련 발언이 단순히 ‘개인 의견’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다.

김 차관의 발언은 내달 중순부터 시작될 미국과의 FTA 협상을 앞두고 ‘스크린쿼터 축소’를 기정사실화하기 위한 ‘길 닦기’로 볼 수밖에 없다. 같은 날 다른 경제 관료는 “스크린쿼터를 73일(종전 146일의 절반)로 줄이는 것은 2000년 한미투자협정이 공전되기 직전에 이미 양국이 접근했던 방안”이라고 말해 이런 사실을 확인해 주기도 했다.

▶본보 21일자 6면 보도

사정이 이런데도 주무부처인 문화관광부는 “스크린쿼터 문제에 관해 FTA와 연계하지 않는다는 종전 입장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곧 우리에게 ‘공’이 넘어오지 않겠느냐”고 말하는 등 부인하는 톤은 과거와 달리 사뭇 약해졌다.

스크린쿼터 문제는 더는 정부 부처끼리 ‘반대’와 ‘수용’이라는 식으로 핑퐁게임을 벌일 수 없는 사안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신년연설에서 밝힌 대로 한국 경제를 위해 ‘대문을 막고 쪽문만 여는’ 어려운 결단을 이미 내렸다면 그 타당성을 국민에게 설명해야 할 때다.

그러나 그 설명이라는 것이 “국익을 무시하는 이기주의자들”이라며 한쪽을 비난하는 방식이 돼서는 안 된다. 스크린쿼터 축소가 왜 불가피한지, 그 대안은 무엇인지를 먼저 설득하는 것이 순리다.

한국영화의 성장을 이끌어 온 것은 몇몇 스타가 아니다. 좋은 영화라면 보고 또 보며 한국영화에 날개를 달아 준 1000만 관객이 한국영화의 성장 동력이다. 정부는 국민에게 먼저 설명할 의무가 있다.

정은령 문화부 ryu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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