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이진영/방송위의 낯뜨거운 말싸움

  • 입력 2004년 7월 2일 18시 1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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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듯한 학술용어를 동원해 논의 자체를 원천 봉쇄하려는 의도입니다.”(박준영 상임위원)

“그렇게 빈정대지 마세요.”(이효성 부위원장)

“내가 무능해서인지 (심의관련 사항을) 보고받지 않으면 모릅니다.”(양휘부 상임위원)

“무능한 사람이 상임위원을 하고 있습니까.”(유숙렬 비상임위원)

편파 시비를 낳은 탄핵방송에 대한 최종 심의가 열린 1일 오후 서울 양천구 목동 방송위원회 대회의실. 전날에 이어 이날 회의도 탄핵방송의 편파 여부는 뒷전이고 “방송위가 이 문제를 심의하느냐 못하느냐”에서 맴돌았다. 시간이 흐르면서 막말 섞인 고성과 함께 ‘진흙탕 논전’이 벌어졌다.

방송위의 의뢰를 받아 두 달 넘게 탄핵방송을 분석한 끝에 불공정했다고 결론을 내린 한국언론학회 보고서를 둘러싼 말싸움도 마찬가지였다.

“연구자들이 적합하지 않은 기준으로 분석해 웃지 못할 결과가 나왔습니다.”(이 부위원장)

“부위원장께서 언론학회에 분석을 의뢰하자고 적극 나서 놓고선….”(양 상임위원)

“내가 언제 그랬어요?”(이 부위원장)

방송위가 개별 프로그램이 아닌 탄핵방송 전반에 대한 포괄적 심의는 할 수 없다며 각하 결정을 주장하던 한 위원은 심의 경과를 보고하던 방송위 사무처 직원에게 “안건이 되지도 않는데 왜 이런 일을 만들었어? 사무처에 문제가 많은데 얘기 좀 해볼까”라며 협박조로 다그치기도 했다.

특히 조용환 비상임위원이 탄핵방송 전반에 관한 심의는 방송위의 소관사항이 아니라고 주장하자 이 부위원장은 방송위의 전문성과 권위를 스스로 부정하는 말로 조 위원을 편들고 나섰다. 이 부위원장은 “이제 보니 심의할 필요도 없는 것을 갖고 소동을 벌였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는 한 마디로 탄핵방송의 편파 논란으로 인한 사회적 고민을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렸다.

결국 방송위는 이틀간 10여 시간 회의 끝에 “탄핵방송을 심의하지 않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탄핵방송 전반에 관한 심의를 하겠다고 나섰다가 3개월반이 지나 황급히 발을 빼는 순간이었다. 왜 그랬을까. 한 위원은 “방송위의 권위가 곤두박질쳤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했다. 어떻게 책임을 질까.

이진영 문화부기자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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