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석민의 영화속 IT세상]'카사블랑카'에 휴대전화 있었다면

  • 입력 2002년 10월 20일 17시 16분


홍석민의 ‘영화속 현재, 현실속 미래’①-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 살갑다

두 사내가 대폿집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인다. 이야기 주제는 영화.

“그런데 ‘카사블랑카’시절에 휴대전화가 있었다면 영화의 결론이 달라지지 않았을까?” (‘카사블랑카’는 1942년작)

“험프리 보가트가 안개 낀 비행장에서 옛 애인을 떠나보내는 마지막 장면 말이야?”

“그래. 이륙하는 비행기를 보면서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전화를 한다고 상상해봐. 사랑한다고, 보내는 건 진심이 아니라고 말이야. 어떠냐? 그런데 비행기에서 휴대전화가 터지나?”

“허걱.”

그러고 보니 언제부턴가 휴대전화는 영화의 단골 소품이다. 휴대전화 문자 메시지가 화면에 오버랩되는 건 보통이고 휴대전화가 제목이자 소재인 공포영화(‘폰’)까지 등장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극적인 걸로 따지면 역시 공중전화지.

80년대 후반 서울 미아리 대지극장에서 단체관람으로 보았던 ‘영웅본색2’를 떠올린다.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저우룬파(周潤發)가 보여주는 용감 무쌍한 싸움이 아니다. 총상을 입은 아걸(장궈룽·張國榮 분)이 죽어가면서 공중전화로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출산 소식을 듣는 장면이다.

‘초록물고기’나 ‘게임의 법칙’도 주인공의 죽음과 공중전화 신(Scene)이 연결된다. 많은 영화에서 설레는 사랑 고백은 비가 오는 가운데 공중전화를 통해서 이뤄졌다. 말하자면 공간적으로 떨어져 있는 ‘그대’에게 꼭 해야할 말이 있다면 전화기가 있는 곳까지 가야했던 것이다. 그나마 상대방이 없으면 연결은 이뤄지지 않는다.

하지만 무선 커뮤니케이션 세상에선 원하면 언제나 연결이 되고 사람들은 늘 ‘대기중’이다. 테크놀러지의 큰 흐름은 선을 없애는 방향이다. 그러나 물리적인 선은 없어지지만 실제로는 더 옭아매는 건 아닌지. 3000만대가 넘는 휴대전화가 보급된 우리의 하늘, 그 촘촘한 전파 그물을 떠올려 보라. 도시를 떠나기 위해 산에 오르면서도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는 세상이다. 하지만 주말 부부의 사랑이 더욱 애틋하고 군에 보낸 애인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절절한 법. 단절이 있어야 이어짐은 더욱 빛난다. 시인은 그래서 이렇게 노래했을까. 진정 ‘휴대폰 안 터지는 곳이라면 그 어디나 살갑다’고.(황동규의 ‘탁족’ 중에서)

IT 칼럼니스트

redstone@kgsm.kaist.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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