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네리뷰]‘남자, 태어나다’ 특명 받은 섬 마을 세 청년

  • 입력 2002년 10월 3일 19시 55분


워낙 조폭 코미디 영화가 휩쓰는 때라 영화 ‘남자, 태어나다’의 제목만 들으면 또 한 편의 조폭 코미디가 아닌가, 오해하기 십상. 그러나 이 영화는 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순박한 코미디 영화다. 소위 ‘뜨는’ 스타도 없고 만듦새는 허술해도, 따뜻하고 정겹다.

지도에도 안나오는 작은 섬 마을. 99세를 맞는 최고령 할아버지의 마지막 소원은 “우리 마을에 대학생 하나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것. 그 마을에서 대학에 갈만한 사람이라고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놀고 있던 대성 (정준)과 만구 (홍경인), 해삼 (여현수)등 세 청년뿐이다.

마을 어른들은 공부도 못하고 특별한 재능이 없는 이 세 청년들을 어떻게 대학에 보낼까 고심하다 권투를 가르쳐 특기생으로 보내자고 결정한다. 별 볼 일 없는 권투선수였다가 읍내 오락실 주인이 된 왕코치 (이원종)가 특별 지도교사로 초빙되고, 세 청년은 자의반 타의반으로 권투 연습을 시작한다.

대학에 못가면 사람 취급도 못받던 학력 위주의 시대에 대한 풍자가 바탕에 깔려있지만 이는 그저 밑그림에 불과하다. 이 영화는 ‘꿈’에 대한 이야기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비주류에다 낙오자처럼 보이던 세 친구의 꿈을 자주 언급한다.

여대생을 짝사랑하는 대성, 대학 가요제에 나가보고 싶은 만구, 섬에서 벗어나 큰 세계로 가보는 것이 소원인 해삼. 세 사람 모두 얼떨결에 권투를 시작하게 됐지만, 이 우연한 기회를 각자의 꿈을 향한 발판으로 삼으려 애를 쓴다. 세 청년을 들볶으며 권투를 가르치던 왕코치의 진심도 “꿈을 잃으면 나처럼 산다. 그렇게는 되지 말라”는 것. 영화 전반에 흐르는 희망에 대한 순진한 믿음이 이 영화를 정겹게 느껴지게 만드는 대목이다.

80년대의 장발과 복고풍 의상, 국기 하강식, 힘없는 시골 깡패들의 에피소드 등 80년대에 대한 풍자가 소소한 웃음거리를 만들어내지만, ‘오버’가 지나치고 어설플 때가 잦다. 왕코치 역을 맡은 이원종을 비롯해 젊은 세 배우들의 안정적인 연기가 없었더라면, 볼품없는 범작으로 그칠 뻔 했다.

배우들의 권투 트레이닝은 전 세계 챔피언 홍수환 선수가 직접 했다. 연출은 ‘천사몽’으로 데뷔했던 박희준 감독이 맡았다. 12세이상 관람가. 11일 개봉.

김희경기자 susann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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