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박성희 교수의 TV읽기:미흡한 자성 씁쓸한 '5·18특집'

  • 입력 2001년 5월 23일 18시 54분


MBC <미디어비평-5·18 특집>
MBC의 <미디어 비평>은 시작부터 생득적(生得的)인 한계를 안고 출발한 프로그램이었다. 우선 비평하겠다고 나선 당사자가 바로 미디어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비판의 주체와 대상이 동일시된 상황에서 엄밀한 객관성과 공정성을 보장받기는 힘들다. 그런 경우 비평이란, 스스로 반성문을 쓰거나 동족 언론을 비판하는 수준에 머무르기 십상이다.

<미디어 비평>이 출범한 시점 역시 정부와 신문업계가, 또 신문과 방송이 입장 차이를 보이던 미묘한 시점이었다. 시류에 발 맞춘 순발력 있는 기획이었지만, 그만큼 오해의 소지도 없지 않았다.

비평이란 기사와 달라서, 시류와도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제 빛을 발한다. 그런 한계에도 불구하고 <미디어 비평>에 관심과 갈채가 모아진 이유는, 건전한 비판의 목소리가 미디어 전체에 신선한 자극이 되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다.

뼈아픈 자기 비판을 통해 앞으로 더 나은 방송이 나온다면, 반성문을 쓴다고 해서 탓할 것이 없다. 또 제 식구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애정 넘치는 질책이라면, 아무리 아픈 고언(苦言)이라도 동족 언론들은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지난 토요일(19일) 밤 MBC <미디어 비평-5·18 특집>은 이도 저도 아닌 입장에서 생득적 한계 를 드러내는데 그치고 말았다. 무엇보다도 80년 언론의 자화상은 <미디어 비평>이라는 그릇 안에 예쁘게 담아 내기에 너무 버겁고 심대한 사안이었다.

MBC는 "당시 언론이 무엇을 했던지를 밝히려고 한다"면서 곧바로 중앙일보 5월 21일자, 서울신문과 조선일보 25일자, 이런 순으로 옮아갔다. 그리고는 "저희 제작진은 당시 MBC 뉴스 화면을 보여드리고 싶었읍니다마는 안타깝게도 당시의 방송자료가 보관돼 있지 않아서 이 시간에 보여드리지 못함을 너무나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했다.

내가 그 날 <미디어 비평>을 시청한 이유는, 당시 화면이 보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그에 대한 그들의 자성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서였다. 자료가 남아있지 않다면, 그 자료가 폐기된 경위를 시청자들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었어야 했다.

그리고 욕심을 부리자면 당시 뉴스를 제작한 사람들의 증언을 모아서 재구성 할 수도 있었다. 불과 20년 전 일이다. 당시 일선기자들이 아직도 방송사에 간부로 남아있을 시간의 터울이다.

MBC는 "모든 언론은…"을 주어로 이야기를 풀어가며, 뒤에 토를 달 듯 "물론 방송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라고 했다. 이 말은 신문이 주범이고 방송이 종범 이라는 메타메시지를 담고 있다.

그러나 당시를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방송의 역할이 그렇게 부수적이거나 미미하지 않았다는데 동의할 것이다.

MBC는 "저희들도 부끄러울 따름입니다"라고 했지만, 나는 80년 당시 MBC의 보도 행태에 돌팔매를 할 생각이 없다. 왜냐하면 그때는, 국민 모두가 기본권을 유보 당한 계엄령하의 시민이었고, 언론이나 시청자나 모두가 다 같은 피해자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20년이 지난 오늘, 비평하는 주체로 자리 바꿈을 해 당시의 상황에서 자신들을 점잖게 유리시키려는 시도는 또 다른 역사의 왜곡을 보는 것 같아 기분이 씁쓸하다.

<이화여대 교수·언론홍보영상학부>shpark1@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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