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리아 디스카운트’ 정부 대책에 전문가들이 한숨쉰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6일 20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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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26일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을 내놓은 것은 고질적인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증시 저평가)를 해소하기 위해서다. 지난해 말 기준 한국 주식시장의 시가총액은 세계 13위, 상장기업 수는 세계 7위로 양적인 측면에서는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기업가치와 주주환원을 높이려는 노력 부족으로 만성적인 저평가에 시달리는 등 ‘덩치’에 상응하는 질적 성장이 뒷받침되지 않았다는 지적이 끊이질 않았다.

하지만 이날 정부가 발표한 주가 밸류업 대책은 기업 실적 제고나 규제 환경 개선 같은 근본적인 문제를 외면했다는 점에서 실효성에 의문이라는 지적도 받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폐지 추진, 주식 양도세 기준 완화 등 최근 총선을 앞두고 잇달아 발표된 또 하나의 증시 단기 부양책에 불과하다는 혹평도 나온다.

● 상장사 기업가치 제고 방안 자율 공시


정부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한국 증시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1.04배로 미국(3.64배), 영국(1.71배)뿐 아니라 일본(1.4배), 중국(1.5배)보다도 낮다. PBR이 낮다는 건 상장사들의 주가가 기업들이 보유한 자산 대비 저평가돼 있다는 의미다. 최근 10년간(2014~2023년) 한국 증시의 연평균 배당성향(배당금을 당기순이익으로 나눈 값)도 26%로 선진국(49.5%)은 물론 신흥국(39.6%)보다도 낮았다. 기업들이 번 돈을 주주에게 환원하는 데 인색했다는 얘기다.

이에 정부는 상장기업들이 스스로 중장기 관점에서 기업 가치를 높이기 위한 계획을 수립해 공시하도록 했다. 다만 기업들의 부담이 늘어날 것을 감안해 공시는 ‘의무’가 아닌 ‘자율’로 했다. 공시는 이르면 7월부터 매년 한 차례 회사 홈페이지나 한국거래소를 통해 이뤄진다. 금융위원회는 5월 중 공시 가이드라인을 확정할 방침이다.

기업 참여를 유도하기 위한 인센티브 방안도 내놨다. 매년 우수 기업을 표창하고, 수상 기업엔 △모범 납세자 선정 우대 △연구개발(R&D) 세액공제 사전심사 우대 △법인세 공제 등의 세정 지원 혜택을 주기로 했다. 다만 세제 지원과 관련된 구체적 방안은 아직 확정되지 않았다.

정부는 올해 9월 수익성이 높고 시장평가가 양호한 기업들로 구성된 지수도 개발한다. 연기금, 공제회 등 기관투자가들과 외국인들의 수급을 확보하기 위한 정책이다. 해당 지수를 추종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해 일반 개인들에게 투자 기회를 주는 방안도 추진된다.

● “근본 처방 無, 총선용 단기부양책”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세미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2.26. 뉴스1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6일 서울 영등포구 한국거래소 컨퍼런스홀에서 열린 ‘’한국 증시 도약을 위한 기업 밸류업 지원방안 세미나‘’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 2024.2.26. 뉴스1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번 대책에 근본적인 처방이 빠졌다는 점을 우려하고 있다. 기업이 혁신을 도모하고, 이를 통해 실적을 향상시킬 수 있는 생태계 조성 방안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원천적으로 기업 활동을 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져야 실질적인 밸류업이 가능할 것”이라며 “지금과 같이 법인세와 상속세 부담이 크다면 강소기업이 탄생하거나 유지되지 어렵다”고 지적했다.

일각에선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증시를 끌어올리기 위한 단기부양책에 불과하다고도 지적한다. 이창민 한양대 경영학부 교수는 “기업 지배구조 개선에 드라이브를 걸어야 고질적인 저평가가 해소될 수 있는데 이에 대한 대안이 빠졌다”며 “증시 단기 부양과 다름없는 정책을 내놓은 셈”이라고 꼬집었다. 이채원 라이프자산운용 의장도 “기업의 지배 주주와 일반 주주의 이해관계를 합치시키려면 상법의 조속한 개정이 필요하다”며 “특정 집단만을 위한 밸류업으로 남지 않으려면 상법 개정과 세제 개편 작업이 뒷받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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