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조 물린 해외부동산, 韓금융권 비상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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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상업부동산 위기]
글로벌 상업부동산 줄줄이 가격 폭락
美 올해 만기 대출 1236조 위험 신호
韓 금융사도 투자 손실 우려 커져… 4대 금융지주 위험노출액 16조원

미국 오피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상업부동산 부실에 따른 은행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오피스 밀집 지역인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전경.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미국 오피스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상업부동산 부실에 따른 은행 손실 우려가 커지고 있다. 사진은 오피스 밀집 지역인 뉴욕 맨해튼 미드타운 전경. 뉴욕=김현수 특파원 kimhs@donga.com
국내 A시중은행의 해외 대체 투자 담당자는 미국 상업용 부동산의 가격 폭락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미국의 심장부인 뉴욕 맨해튼 지역에 가장 안전하다는 선(先)순위 대출을 했지만, 자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높아졌다. 해외 부동산의 선순위 대출에 손실 가능성이 있다는 건 자산 가격이 60% 이상 폭락했다는 뜻이다. A은행은 이 대출을 비롯한 미국 내 부동산 투자 자산이 1조 원에 달한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 위기가 확산하면서 국내 금융계에도 후폭풍이 일고 있다. 관련 자산에 수십조 원을 투자한 국내 금융사들의 대규모 손실 가능성이 불거지고 있고,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에 가입한 개인투자자들도 손실이 눈덩이처럼 커지면서 ‘제2의 주가연계증권(ELS) 사태’가 우려되고 있다.

12일(현지 시간) 미국 모기지은행협회(MBA)에 따르면 미국 상업용 및 다가구주택 부동산 대출 잔액(4조7000억 달러)의 20%에 가까운 9290억 달러(약 1236조 원)의 만기가 연내 돌아온다. 일각에선 미 상업용 부동산 가격이 올해 최대 15% 추가 하락하며 부실이 더 커질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억만장자 투자자 배리 스턴리히트 스타우드캐피털 최고경영자(CEO)도 최근 “앞으로 상업용 부동산 시장에서 1조 달러 이상의 손실이 발생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부실 여파는 국내 금융사까지 미치고 있다. 지난해 6월 말 기준 국내 금융사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투자 규모는 55조8000억 원에 달하는데 이 중 25%인 14조 원이 올해 만기가 돌아온다. 시중은행들이 물려 있는 액수도 상당하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 4대 금융지주의 해외 상업용 부동산 익스포저(위험노출액)는 16조5000억 원에 달한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는 역대 최대인 9조 원가량의 대손충당금을 쌓았지만 최근 해외 부동산 대출 손실이 예상되면서 올해 더 많은 충당금을 쌓아야 할 것으로 예상된다. 안동현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해외 부동산 자산에 대한 옥석 가리기가 필요하다”며 “투자 기관들끼리 조율해서 부실 자산을 신속하게 정리하고, 우량 자산은 추가 투자하는 등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외부동산 펀드’ 개인투자자 ‘제2 ELS’ 우려도


해외 상업부동산 위기 비상
올 만기 4365억 중 4104억 개인투자
獨 빌딩 투자펀드는 수익률 ―82%

해외 부동산 가치가 폭락하면서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에 투자한 개인투자자들의 손실도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트리아논 빌딩에 투자한 ‘이지스글로벌부동산투자신탁229호’의 펀드 설정 이후 누적 수익률은 13일 기준 ―81.89%에 달한다. 미국 뉴욕과 벨기에 브뤼셀 빌딩에 투자한 ‘한국투자뉴욕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1호’(―30.91%)와 ‘한국투자벨기에코어오피스부동산투자신탁2호’(―15.96%) 등도 손실을 보고 있다.

하나대체투자자산운용이 공모펀드로 투자한 일본 삿포로 호텔이나 미국 항공우주국(NASA) 본사 건물 등도 부동산 가격이 떨어지면서 손실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은 공모펀드로 인수한 미국 텍사스주 댈러스 오피스 빌딩을 지난해 10월 매입가 대비 20%가량 낮은 금액에 매각하기도 했다.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는 총 4365억 원으로 이 중 4104억 원을 개인들이 투자했다. 투자자 수만 1만 명을 넘어선다. 만일 만기 연장이 불발될 경우 대규모 손실이 예상된다. 일각에서는 해외 부동산 공모펀드가 ‘제2의 홍콩발 ELS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해외 상업용 부동산 부실 문제는 전 세계 금융사들의 숨통을 죄고 있다. 미국 상업용 부동산에 자금을 댄 미 지역은행 뉴욕커뮤니티뱅코프(NYCB)는 지난해 4분기(10∼12월)에만 2억6000만 달러(약 3500억 원)에 달하는 손실에 직면했다. 독일 도이체방크는 지난해 4분기 글로벌 부동산 투자 관련 손실충당금을 전년 대비 4.7배로 높였다. 일본의 중소은행인 아오조라은행도 상업용 부동산 대출 관련 충당금 때문에 15년 만에 처음 적자를 기록했다.

상업용 부동산 가격 하락 추세로 글로벌 금융사들의 부실 위기는 더욱 확산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데이터 분석회사 그린스트리트는 “상업용 부동산의 평가 가치가 여전히 너무 높다”며 “상업용 부동산 가치가 올해 최대 15% 추가 하락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동훈 기자 dhlee@donga.com
신아형 기자 abro@donga.com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글로벌 상업부동산#가격 폭락#비상#금융권#손실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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