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만 년을 결정하는 20일[기고/김소영]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2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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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전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재검토위원장)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전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재검토위원장)
연말이 되면 모든 청구서가 날아든다. 한 해 내내 매달린 일들과 여러 관계를 매듭짓는 시간인 만큼 12월의 하루는 평소보다 두세 배 더 분주하다. 올해 유난히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국회 역시 11일부터 임시국회를 열어 예산안을 비롯해 각종 법안을 처리하기로 했다.

우리 국회가 처리하는 법안은 지속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올 6월 발표한 주요 입법시스템 비교 보고서에 따르면, 우리 국회는 16대(2000∼2004년)에서 20대(2016∼2020년) 국회에 5회기 만에 법안 수가 10배 늘었다. 이는 같은 기간 거의 변화가 없는 다른 주요국에 비해 놀랄 만한 증가세다. 20대 국회에 발의된 법안은 약 2만4000건인데 이는 인구나 경제가 우리보다 큰 미국(약 1만5000건) 일본(약 150건) 독일(약 800건) 등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다. 내년 총선까지 몇 달 안 남은 21대 국회에 현재까지 발의된 법안은 약 2만5000건이다.

이 수많은 법안 중 정말 올해 꼭 마무리해야 하는 게 있다면 단연코 고준위방폐물 관리 특별법안이다. 원자력 찬반 입장을 떠나 우리 국민의 90% 이상이 고준위 방폐물 처분시설 확보가 시급하다고 인식하고 있다(한국에너지정보문화재단 국민인식조사, 2023년 11월). 정부 및 환경단체 역시 지난 40년간 아홉 차례의 고준위 방폐물 관리시설 부지 선정 실패 경험을 통해 이번 법제화를 놓치면 역사에 열 번째 실기(失機)로 기록될 것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다행히 고준위 방폐물 관리에 관해 현재 발의된 세 법안(김성환, 김영식, 이인선 의원안)이 그간 10여 차례 산중위 법안소위 협의를 통해 다양한 쟁점을 해소하고 이제 9분 능선을 넘었다. 마지막 남은 핵심 쟁점은 관리부지 내 저장시설 용량인데, 정부와 여당은 원전 운영허가 기간(연장 가능) 중, 야당은 설계수명 기간(연장 불가) 중 발생예측량으로 설정하자는 입장이다. 이 쟁점은 원전 확대냐 축소냐에 직결된 것이라 양측이 타협하기 쉽지 않지만, 중간저장시설 목표 시점 명기처럼 그간 타협이 어려웠던 쟁점도 극복한 만큼, 남은 기간 타협안을 마련할 수 있으리라 본다.

사실 원전이 생산하는 전기를 우리 모두가 매일 쓰지만, 원전 가동의 필연적 부산물인 사용후핵연료와 고준위 방폐물 처분의 청구서는 미래에 날아들기 때문에 평상적인 관심을 쏟기가 어렵다. 하지만 임시저장 사용후핵연료가 차곡차곡 쌓이는 원전 지역 주민들에게는 일상생활과 직결된 이슈로, 부산시의회는 최근 고준위특별법 제정 촉구 결의안을 채택하기도 했다.

원전이 탄소 배출이 없는 에너지원이긴 하나 사용후핵연료의 방사선 수치가 자연 상태로 돌아가려면 10만 년이 걸린다. 세계 최초로 핀란드가 짓고 있는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분장은 핵연료봉을 10만 년 봉인한다는 계획이다. 어쩌면 올해 남은 20일이 원자력으로 경제 발전의 값싼 전기를 얻었던 우리에게 10만 년을 결정짓는 시간일지 모른다.

김소영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전 사용후핵연료관리정책재검토위원장)
#고준위방폐물 관리#원자력#사용후핵연료#김소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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