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상풍력, ‘고금리 강풍’에 휘청… 최대 업체도 “美사업 철수” [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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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주에서 완공까지 7 8년 걸려
올 들어서만 사업비용 40% 급증
바텐폴도 英 풍력단지 개발 중단… “투입된 6600억원 손실 감수 낫다”
업계-환경단체 “지원 늘려달라”

해상풍력 발전 시장이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대형 해상풍력 개발 프로젝트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최초의 해상풍력 발전 단지인 로드아일랜드주 해안의 풍력 터빈. 로드아일랜드=AP 뉴시스
해상풍력 발전 시장이 금리 인상의 직격탄을 맞으면서 대형 해상풍력 개발 프로젝트가 줄줄이 취소되고 있다. 사진은 미국 최초의 해상풍력 발전 단지인 로드아일랜드주 해안의 풍력 터빈. 로드아일랜드=AP 뉴시스
탄소중립 바람을 타고 성장했던 해상풍력 발전 시장이 역풍을 맞았다. 수익성이 악화하면서 미국과 영국에서 대형 해상풍력 개발 프로젝트가 줄줄이 중단됐다. 친환경 에너지로의 전환이 고금리·고물가라는 암초에 걸려 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 해상풍력 프로젝트 줄취소
세계 최대 해상풍력 개발업체 외르스테드(오스테드)가 1일 미국 뉴저지주 해안에서 진행 중인 2개의 대형 해상풍력 프로젝트에서 철수한다고 발표했다. 이로 인한 손상차손 284억 덴마크 크로네(약 5조3000억 원)를 실적에 반영한다는 소식에 이날 오스테드 주가는 26% 급락했다. 오스테드의 마드스 니페르 최고경영자(CEO)는 “매우 어려운 결정이었다”면서 프로젝트를 계속 추진하기엔 “상황이 장부에 기록된 것보다 더 나빴다”고 설명했다.

올해 들어 대형 프로젝트에서 발을 뺀 건 오스테드만이 아니다. 경쟁사 바텐팔리(바텐폴)는 7월 영국 북해의 풍력발전 단지 개발을 중단했다. 계속 진행하기보다는 그동안 투입된 55억 스웨덴 크로나(약 6600억 원) 손실을 감수하는 게 낫다고 봤다. 안나 보리 바텐폴 CEO는 “이 프로젝트를 계속하는 건 전혀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이 여파로 LS전선이 바텐폴과 맺었던 2400억 원 규모의 초고압 케이블 공급 계약도 해지됐다.

이베르드롤라는 8월 미국 매사추세츠 해상풍력 프로젝트 계약 철회를 발표하고, 위약금 4800만 달러를 냈다. 입찰 시점인 2021년과 달리 지금은 수익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 인플레이션 강풍에 휘청
해상풍력 프로젝트 좌초를 불러온 요인은 고금리·고물가이다. 해상풍력은 수주에서 완공까지 7∼8년이 걸리고 사업비도 수조 원대에 달한다. 초기 투자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보통 부채 비율이 80%에 이른다. 금리 상승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게다가 각종 비용이 무섭게 뛰었다. 원자재 가격 상승으로 풍력 터빈 값은 2년 동안 약 40% 올랐다. 타워, 하부구조물, 전력케이블 가격도 인상되고, 인건비도 급등했다. 바텐폴에 따르면 올해 들어서만 해상풍력 사업 비용은 40% 급등했다.

공급망 병목현상도 발목을 잡았다. 니페르 CEO는 “장비와 설치용 선박 확보의 심각한 지연에 직면했다”고 프로젝트 중단 이유를 설명했다. 오스테드는 바다에서 공사할 해상풍력 전용 설치 선박을 미국 조선소에 주문했지만 제작 지연으로 어려움을 겪었다.

공급망 차질은 해상풍력 업계가 자초한 면도 있다. 그동안 풍력터빈 제작사들이 경쟁적으로 터빈 블레이드 크기를 키운 탓에 최신형 블레이드 길이(107m)는 축구장 가로 길이(105m)보다 길어졌다. 그만큼 타워와 하부구조물까지 크고 무거워졌다. 이를 감당할 선박과 항구, 크레인이 모두 부족하다. 컨설팅업체 우드 매켄지에 따르면 전 세계 해상풍력 설치선 중 절반은 최신 터빈 모델을 실을 수 없다. 이제 터빈 크기를 그만 늘려야 한다는 얘기가 업계에서 나오는 이유다.

● 업계는 ‘지원 늘려 달라’ 요구
국제재생에너지기구(IRENA)에 따르면 탄소중립을 위해서는 2020년 35GW인 전 세계 해상풍력 누적 설치 용량이 2050년엔 1000GW까지 늘어나야 한다. 최근 수익성 악화로 해상풍력 시장이 직격탄을 맞으면서 이 목표와는 점점 멀어지는 상황이다.

업계와 환경단체는 해상풍력에 대한 지원을 더 늘려 달라고 요청한다. 미국에선 해상풍력 개발사들이 비용 상승분을 반영해 전력 공급 단가를 기존 계약분보다 최대 66% 올려 재협상하자고 나섰다. 또 전체 제품의 20%를 미국산으로 채워야만 세액공제를 해주는 까다로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요건을 완화해 달라고 요구한다.

영국에서도 해상풍력 전력 가격을 대폭 높여 달라는 업계 요구가 이어진다. 9월 영국 정부는 해상풍력 프로젝트 입찰을 진행했지만, 너무 싼 전력 단가 때문에 지원한 기업이 없었다.

유럽연합(EU)은 최근 경제 상황을 반영한 풍력산업 지원책을 지난달 발표했다. 계약 입찰 시 인플레이션을 반영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하지만 해상풍력 회의론자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비판의 목소리를 높인다.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은 소셜미디어에 “그 괴물은 막대한 정부 보조금을 필요로 했고 결국 효과가 없었다”는 글을 올리며 오스테드의 프로젝트 취소를 반겼다. 미국 공화당 측은 주로 유럽 기업에 보조금이 집중되는 해상풍력 프로젝트에 대해 부정적이다.

글로벌 해상풍력 시장에 잇달아 악재가 터져 나오면서 국내 풍력 부품 제조사 역시 주가가 급락했다. 실적이 나쁘진 않지만 향후 전망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주영 이베스트증권 애널리스트는 “연이은 해상풍력 이슈로 풍력발전 시장에 대한 우려가 많은 상황”이라면서도 “각국 정부 주도의 투자가 늘고 있어서 글로벌 풍력발전 시장은 내년에도 성장세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상풍력 발전
육지가 아닌 바다에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해 전기를 생산하는 것. 육상풍력 발전보다 소음 민원이 적은 데다 바람이 강하고 안정적이라는 게 장점이다.


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해상풍력#딥다이브#탄소중립#역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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