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사기피해 고통 여전… 특별법이 끝 아니길[기자의 눈/정순구]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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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순구·산업2부
정순구·산업2부
“보증금을 되찾겠다는 기대는 애초에 접었어요. 이 집에서 나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기업형 전세사기’를 저지른 것으로 경찰 수사에서 밝혀진 부동산 임대업체 ‘제임스네이션’의 피해자 A 씨. 지난달 정부로부터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은 직후 그는 ‘무기력함’을 호소했다. 4개월 전 기자와 처음 만났을 때와는 완전히 달라진 태도였다. 당시만 해도 A 씨는 정부가 피해 구제책을 내놓고, 전세사기 집주인도 처벌받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흔히 전세사기라고 하면 어리숙한 사람이 당하기 십상이라고 여기기 쉽다. 하지만 6개월에 걸쳐 만난 ‘제임스네이션’ 피해자 20여 명은 모두 “내가 전세사기를 당할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제임스네이션 일당은 공인중개사까지 직접 고용해 공인중개사무소를 차리는 등 조직적으로 사기를 저질렀다. 일반인이 이들의 사기 행각을 눈치채고 대비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누구든 겪을 수 있는 일이라는 의미다.

전세사기 문제는 올 초 본격적으로 불거지기 시작해 올해 5월 진통 끝에 ‘전세사기 특별법’이 통과됐다. 특별법이 통과된 지 석 달이 지난 지금 피해자들의 삶은 그리 변하지 않았다.

경찰 수사에서 제임스네이션 일당이 사들인 주택은 1093채로 확인됐지만 2017년 이후 제임스네이션 일당 명의로 경·공매에 나온 주택은 650채에 그친다. 그나마 그중 286채(44%)만 낙찰됐다. 700명이 넘는 세입자들은 전세사기의 고통에서 탈출 못 했다는 뜻이다.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받는 것부터 녹록지 않다. 지금까지 정부로부터 3508명이 전세사기 피해자로 인정됐지만, 그렇지 못한 이들도 379명 있다. 인정 요건이 까다로워 신청 자체를 못 한 피해자까지 고려하면 그 숫자는 더 늘 수밖에 없다.

피해자로 인정돼도 문제다. 제임스네이션이 사들인 주택 중에는 불법 건축물이 상당수다. 불법으로 집을 증축한 뒤 비슷한 다른 빌라보다 저렴한 전세보증금을 제시하는 것이 그들의 대표적인 영업 방식이었다. 오히려 더 큰 피해를 본 셈이지만, 불법 건축물에 거주하는 피해자들을 위한 지원책은 찾아보기 힘들다.

피해자들은 앞으로 긴 싸움을 해야 한다. 당장 시급한 문제부터 해결해야 한다. 사각지대를 해소하는 게 시작이다. 입주 전 사기를 당했거나 비주거용 주택에 거주하는 피해자 등을 특별법 지원 대상에 포함하고 지원 대상 피해자의 소득 기준을 완화하는 조치도 필요하다. 3개월 전 마련한 특별법을 끝으로 정부가 전세사기 피해자들을 잊으려는 것은 아니길 바란다.


정순구 산업2부 기자 soon9@donga.com
#전세사기피해 고통 여전#특별법이 끝 아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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