빚내서 주식 투자 20조… G2發 금융불안 속 과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8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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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시 ‘빚투’ 빨간불]
작년 16조서 4조 급증 연중 최대
美 긴축-中 부동산위기 이중악재
가계빚 관리 골든타임 놓칠 우려

최근 주식시장이 연일 하락하는 와중에도 ‘빚투’(빚내서 투자) 규모가 연일 연중 최대치를 갈아치우고 있다. 이차전지 등 테마주 열풍 속에 은행권에서 자금이 빠져나가 증시와 부동산으로 대거 이동하고 있다. 미국의 긴축 장기화와 중국의 부동산 위기 등 ‘이중 악재’가 국내 금융시장을 짓누르는 상황에서 빚투와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아 대출)이 계속 기승을 부리는 것이다. 이대로라면 사상 최대로 불어난 가계부채 관리의 골든타임을 놓쳐 버릴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20일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17일 기준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20조5573억 원으로 올 들어 최대치를 기록했다. 이달 들어서만 8190억 원 늘었고, 지난해 말(16조5186억 원)보다는 4조387억 원 급증했다. 신용거래융자는 투자자가 주식을 사기 위해 기존 주식이나 현금을 담보로 증권사에서 돈을 빌리는 빚투의 일종이다.

시장별로는 유가증권시장(10조6472억 원)과 코스닥시장(9조9100억 원) 잔액이 지난달 말보다 각각 5880억 원, 2310억 원 늘었다. 특히 유가증권시장에서 신용거래융자 잔액은 14일 이후 3거래일 연속 연중 최고치를 쓰고 있다.

은행권에선 언제든 찾아 쓸 수 있는 파킹통장(요구불예금)에서 돈이 빠져나가는 ‘머니무브’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금융권에 따르면 7월 말 기준 5대 시중은행(KB국민, 신한, 우리, 하나, NH농협)의 요구불예금 잔액은 600조4492억 원으로 한 달 새 23조4239억 원이 줄었다. 같은 기간 증시 대기자금 성격인 투자자예탁금은 4조1424억 원 늘었다. 최근 불어닥친 이차전지 열풍을 타고 은행 예치금이 증권사 투자자예탁금 등 증시로 이동한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발 위기 등으로 국내 증시가 약세장을 보이는 상황에서 빚투와 함께 증시 대기 자금이 늘고 있는 건 이례적인 현상이다. 코스피는 18일 2,504.50으로 마감해 일주일 새 86.76포인트(3.35%) 급락했다. 같은 기간 코스닥지수도 3.82% 떨어졌다. 이달 초 1280원 수준이었던 원-달러 환율은 17일 장중 1340원대까지 치솟기도 했다. 석병훈 이화여대 경제학과 교수는 “글로벌 경제의 불확실성이 높은 상황에서 무리한 빚투를 방치하면 손실이 투자자 개인에게 그치지 않고 국내 경제 전반으로 확대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美中 리스크-고금리에도 ‘영끌-빚투’ 행렬… 가계빚 위기 ‘뇌관’


빚내서 주식투자 20조 연중최대
이차전지 등 테마주 투자 과열
은행권 가계대출잔액 사상최대치
주가 급락땐 경제전반 타격 우려

직장인 이모 씨(36)는 최근 초전도체 테마주가 연일 상한가로 치솟는 것을 보고 마이너스통장 자금 3000만 원으로 관련 4개 종목을 샀다. 하지만 국제 학술지 네이처가 국내 연구진이 개발했다고 주장하는 ‘LK-99’에 대해 상온·상압 초전도체가 아니라고 발표하자 이 씨의 보유 종목은 급락하기 시작했다. 이 씨는 “당장 손실 폭이 커 팔기도 어려운데 마통 이자만 한 달에 20만 원 가까이 돼 막막한 상황”이라고 토로했다.

국내 주식시장의 약세에도 ‘빚투’(빚내서 투자) 열기가 사그라들지 않는 건 테마주 열풍이 아직도 거세기 때문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긴축 기조가 지속되는 가운데 중국발 경기 침체 우려까지 커지고 있지만 이차전지와 초전도체 등이 주도하는 장세에 올라타지 않으면 ‘나만 낙오될지 모른다’는 포모(FOMO·fear of missing out) 현상이 증시 부나방들을 부추기고 있다.

● 이차전지 테마주에 빚투 쏠림
국내 증시에서 빚투는 이차전지주에 집중되는 모습이다. 20일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7일 기준 전체 시장의 신용거래융자 잔액 상위 10개 종목 가운데 절반인 5개가 이차전지 관련주로 나타났다. 유가증권시장 상장사인 포스코홀딩스의 신용융자 잔액이 7470억 원으로 가장 많았고, 함께 이차전지 테마주로 분류되는 포스코퓨처엠(4040억 원)이 2위였다. 에코프로비엠(3120억 원·4위), 엘앤에프(2910억 원·5위), 에코프로(2290억 원·7위) 등 이차전지 관련주 5개 종목의 잔액을 합치면 코스피 신용융자 잔액의 18%에 달한다.

금융투자 업계에서는 뜨거워진 빚투 열기가 증시 불안을 부추길 수 있다고 우려한다. 이효섭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신용거래 규모가 지나치게 커지면 증시 변동성이 높아졌을 때 반대매매가 쏟아져 주가 하락의 원인이 될 수 있다”며 “개별 종목의 변동성이 높아진 시기인 만큼 빚투에 각별히 주의해야 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실제 빚투가 급증하면서 반대매매도 덩달아 늘어나는 추세를 보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지난달 말 기준 위탁매매 미수금 중 반대매매 금액은 743억 원으로 5월 말(476억 원), 6월 말(468억 원) 대비 크게 늘어났다.

최근 은행권 가계대출 잔액이 넉 달 연속 늘며 사상 최대치로 증가한 상황에서 테마주에 편승한 개인의 빚투 행렬이 경제 전반의 위험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가 하락 시 대출을 받아 투자한 개인의 손실이 커지고, 이것이 가계 소비 위축으로 이어져 내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는 얘기다. 특히 고금리 환경에서 개인의 빚이 늘어나게 되면 이는 나중에 감당할 수 없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우려가 크다. 이정희 중앙대 경제학부 교수는 “미국의 긴축 기조, 중국의 부동산 위기 등 한국을 둘러싼 대외 환경이 좋지 않다”며 “과도한 기대를 바탕으로 한 빚투는 가계는 물론이고 경제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는 요인”이라고 우려했다.

● 중국발 악재에 내년 1%대 전망도
중국발 부동산 위기는 이미 중화권 증시에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17일 기준 국내에서 운용 중인 설정액 10억 원 이상 펀드 가운데 중국·홍콩 펀드 설정액은 한 달 새 4448억 원 급감했다. 이 기간 중국·홍콩 펀드 수익률은 ―2.68%로, 이익을 낸 베트남(6.23%), 인도(5.46%), 러시아(5.27%) 등과는 대조적이었다.

정용택 IBK투자증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국내 증시가 회복세를 보이려면 중국 경제의 긍정적인 시그널이나 미 연준의 긴축 완화 시그널이 나와야 하는데 그러긴 쉽지 않아 보인다”며 “한국은행이 이번 주에 발표할 내년 성장률 전망치가 올해에 이어 2년 연속으로 1%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정부가 적극적으로 가계부채 관리에 나설 필요가 있다”며 “개인들이 위험한 투자에 대한 경각심을 갖도록 금융당국이 관련 정보를 지속적으로 제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설희 기자 facthee@donga.com
강우석 기자 wsk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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