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매값, 전셋값보다 더 떨어지자 ‘갭투자’ 다시 고개… “역전세 뇌관”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6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지방 저가아파트 위주로 거래 늘어
전세가율 높은 광양-포항 대표적
취득세 감면 기다리는 투자자들도
“무자본 갭투자, LTV로 규제해야”

12일 서울 아파트 단지의 모습. 2023.06.12. 뉴시스
12일 서울 아파트 단지의 모습. 2023.06.12. 뉴시스
서울 구로구에 사는 김모 씨(36)는 올해 3월 충남 천안시 A아파트 단지 28평형(전용면적 69㎡)을 1억5700만 원에 사들인 뒤 곧바로 세입자를 구했다. 전세 보증금은 1억8000만 원. 매매가보다도 2300만 원 비싸 자신의 돈은 한 푼 들이지 않았을뿐더러, 오히려 전세 계약 현장에서 이 돈을 더 받았다. 인근 공인중개업소는 “매매값과 전셋값 차이가 줄어든 데다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완화 방안도 추진돼 한동안 뜸했던 갭투자 문의가 오고 있다”며 “매매값과 전셋값 차이가 500만 원 안팎인 매물이 나오면 바로 알려 달라며 연락처를 남기는 사람들도 꽤 있다”고 전했다.

전세를 끼고 아파트를 매수하는 ‘갭투자’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최근 매매가가 전세가보다 더 많이 떨어지며 이른바 ‘갭’(매매가와 전세가 차이)이 줄어든 저가 아파트 위주로 자신의 돈은 거의 들이지 않는 ‘무(無)자본 갭투자’ 거래가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예전처럼 회복할 가능성이 높지 않은 상황에서 무리한 투자가 또 다른 전세사기나 역전세 뇌관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2일 부동산 업계에 따르면 지방과 수도권의 저가 아파트를 중심으로 무자본 갭투자 문의가 늘어나고 있다. 주로 전세가율(매매가 대비 전세가 비율)이 높은 지역과 단지가 주요 투자 대상이 되고 있다. 올해 5월 기준 아파트 전세가율이 80%를 넘거나 이에 육박하는 전남 광양시(87.0%), 경북 포항시(86.2%), 충남 서산시(78.6%), 경남 창원시(77.9%) 등이다.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대상이 되지 않는 공시가격 1억 원 미만 아파트도 주요 타깃이다. 주로 2021년부터 지난해 상반기(1∼6월)까지 규제를 피해 갭투자자들이 몰렸던 단지다. 전세의 경우 실수요를 반영해 소폭 떨어지는 데 그친 반면 매매가는 투자 수요가 붙어 급등한 만큼 하락 폭도 컸다. 그만큼 ‘갭’이 줄어든 셈이다.

온라인 투자모임을 운영 중인 김모 씨(40)는 “2021년경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2배가량 올라 1억5000만 원이 됐던 아파트가 최근 1억 원까지로 내려 전세가와 큰 차이가 없어졌다”며 “갭투자에 관심을 갖는 사람들이 조금씩 늘고 있다”고 했다.

‘원정 투자’도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올해 3월 경남 창원시 B단지 17평형(전용 39㎡)은 1억3000만 원에 매매 계약이 체결된 직후 1억3500만 원에 전세계약이 이뤄졌다. 이 집은 부산 해운대구에 사는 30대 2명이 공동명의로 매수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시가격 1억 원 미만 대단지 인근에서 영업 중인 경기 안성시의 한 공인중개업소는 “갭투자자들끼리 단톡방으로 집값을 공유하면서 투자하자고 연락을 돌리고 있다”며 “최근 서울에서 투자자들이 찾아와 ‘전세 잘 맞춰줄 수 있냐’며 찔러보기도 했다”고 전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시장의 반등 분위기와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완화 법안 통과 등이 맞물리면 ‘무자본 갭투자’가 다시 급격히 늘어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현재 국회에는 조정대상지역 내 주택 취득 시 적용하는 중과세율을 2주택까지 폐지하고, 3주택 이상 및 법인의 중과세율을 절반으로 인하하는 법안이 올라가 있다. 김형석 김&정 세무회계사무소 대표세무사는 “다주택자 취득세 중과 완화 방안의 국회 통과를 기다리는 투자자가 많다”며 “취득세가 줄어들면 투자하겠다는 다주택자들이 꽤 있다”고 했다.

무자본 갭투자를 지금이라도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지방 저가 단지들이 시장 침체 때 매매가가 크게 떨어지는 경우가 많아 세입자가 전세금을 떼이는 등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전세금은 엄연한 부채라 주택담보인정비율(LTV)로 규제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며 “향후 주택 경기 전망이 긍정적이지 않기 때문에 무자본 갭투자를 정부가 미리 관리해야 한다”고 했다.


최동수 기자 firefly@donga.com
송진호 기자 jino@donga.com
#매매값#전셋값#갭투자#역전세 뇌관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