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요금을 정치권에서 결정하는 나라[기자의 눈/김형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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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민·경제부
김형민·경제부
“(전기요금은) 최종적으로 (여)당에서 판단할 부분이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현지 시간으로 이달 11일 미국 뉴욕에서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추 부총리는 계속 연기되는 올해 2분기(4∼6월) 전기요금 결정 권한이 여당에 있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가 강조해 온 원가주의 요금 원칙이 실종된 모습이다.

2분기 전기·가스요금을 결정하기 위해 여당과 정부가 네 차례 당정협의를 거쳤지만, 지난해 32조 원 적자를 보인 한국전력공사의 방만 경영에 대한 질타가 많았다. 지난겨울 난방비 폭탄으로 지지율 폭락을 경험한 대통령실과 여당이 한전에 비난의 화살을 돌리는 셈이다.

현행법상 전기요금은 한전이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에게 전기요금 조정을 신청하고, 산업부 장관이 기재부 장관과 협의한 뒤 전기위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전기를 쓰지 않는 가구가 거의 없다는 점에서 전기요금은 ‘준조세’의 성격을 띠므로 물가 당국인 기재부와 협의를 거쳐야 한다. 그 과정에서 정치권이 개입할 여지는 없다. 하지만 한국에서만 유독 전기·가스요금 결정 과정에서 정치권의 입김이 과도하게 작용한다. 여당이 비토를 놓으면 요금을 올릴 수 없다.

과거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 정책에 따른 전력 비용 상승을 덮기 위해 전기요금 인상을 억눌렀다. 윤석열 정부는 이런 문제점을 지적하며 전기요금 결정권한을 전기위원회에 넘기고 전기요금에 원가주의를 적용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내년 4월 총선을 앞둔 상황에서 문 정부와 같은 행보를 보이고 있다.

일찌감치 미국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은 독립적인 기구에서 전기요금을 결정했다. 미국은 공익사업위원회(PUC), 영국은 가스전력시장위원회, 독일은 연방통신청(BNeTzA)에서 결정한다.

전기요금 결정이 미뤄지면 50조 원이 넘는 돈을 투입해 구축해야 하는 한전의 전력망 구축 사업은 불가능해진다. 당장 전력구매 비용을 마련해야 하는 한전이 또 회사채를 발행해 회사채 시장에 혼란을 일으킬 수도 있다. 한전이 올해 4월 중순까지 발행한 사채 순발행 규모는 7조2000억 원으로 발행 가능한 규모의 4분의 1 수준이다.

전기요금 인상은 불가피하다. 원가주의에 따라 전기요금을 결정하되 전기요금 인상으로 생계가 힘들어진 소상공인과 저소득계층에 대해선 정부와 한전이 핀셋 지원을 해야 한다. 전기요금 결정을 더는 미뤄서는 안 된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전기요금#전기요금 인상#가스요금#정치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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