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세대에 ‘기술 수치심’을 준다? 애증의 기기, 프린터[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5일 08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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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적 수치심(Tech Shame)’이란 말을 들어 보셨나요? 단어 그대로 기술 사용법을 잘 몰라서 수치심마저 느낀다는 건데요. 최근 미국에서는 직장 생활을 시작한 Z세대(1995년~2012년생)가 의외로 기술적 수치심을 느낀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Z세대? 태어나면서부터 디지털 문화를 경험했다는 ‘디지털 네이티브(digital native)’ 세대가 왜? 이런 의문이 생기는데요. 좀더 깊이 들여다 보면 단순히 Z세대의 특징으로 보긴 어렵기도 합니다. 오히려 세대 공통의 이슈랄까요. 그래서 오늘은 좀 색다르지만 익숙한 주제를 딥다이브 해보겠습니다. 바로 ‘프린터’입니다.

인쇄, 복사, 팩스, 스캔까지 다 되는 사무용 복합기는 사무실에서 가장 복잡하고 번거로운 기기로 꼽힌다. 게티이미지
인쇄, 복사, 팩스, 스캔까지 다 되는 사무용 복합기는 사무실에서 가장 복잡하고 번거로운 기기로 꼽힌다. 게티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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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세대엔 너무 복잡한 사무기기
IT 전공자인 22세 에리카 록은 사이버 보안회사에 인턴으로 취직했습니다. 상사는 그에게 사무실에서 몇가지 서류를 인쇄한 뒤 서명하라는 업무를 지시했는데요. 자신감 있게 프린트를 시작한 그는 이내 당황했습니다. 인쇄가 되지 않았거든요. 프린터의 터치스크린 화면을 두드려 보고, 잉크를 찾아보고, 전원이 연결됐는지를 점검하며 부산을 떨던 끝에 마침내 문제를 발견했습니다. 용지가 없었던 거죠. 그는 워싱턴포스트에 “그걸 알아내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렸는지 당황스럽다”고 말했습니다.

25세 뉴요커인 아레트 베밀러는 평생을 온라인에서 보냈습니다. 하지만 홍보담당자로 취업한 뒤 사무실에서 시도한 첫번째 복사 작업은 큰 어려움을 안겨 줬죠. 그는 가디언에 “계속 빈 페이지로 나왔고, 그게 작동하려면 기계에 종이를 거꾸로 넣어야 한다는 걸 깨닫는데 한참 걸렸다”면서 “스캐너와 복사기는 너무 복잡하다”고 말했습니다. 결국 그는 복사실의 베테랑인 나이든 직원들과 친해지는 식으로 살길을 찾았습니다.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22세 데미안 앤드류스는 얼마전 몇가지 서류를 팩스로 보내달라는 직장동료 요청을 받았지만 다른 사람을 찾아보라며 거부했습니다. 그는 뉴욕포스트에 이렇게 말했습니다. “웹사이트가 필요하다면 제가 직접 전체 웹사이트를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서 세 개를 팩스로 보내라고 하면 구글에 검색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여전히 팩스를 보내고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도대체 왜 안 되는 거야? Z세대에겐 너무나 복잡한 사무 기기. 게티이미지
도대체 왜 안 되는 거야? Z세대에겐 너무나 복잡한 사무 기기. 게티이미지
어떻게 보셨나요? 최근 한두달 사이에 미국과 영국 언론에서 다룬 Z세대 관련 기사에 나온 사례들입니다. 한마디로 직장생활을 시작한 Z세대가 프린터∙스캐너∙팩스∙복사기 같은 고전적인 사무 기술과 씨름하고 있다는 겁니다. 뚱뚱한 데스크탑 PC와 모니터(어디에 전원 버튼이 있는지 찾기 어려움), 그리고 유선전화(외부 전화를 하려면 ‘9’를 눌러야만 함) 역시 이들에게 스트레스를 안겨주는 요인이죠.

이에 대한 나름의 원인 분석도 나옵니다. Z세대가 익숙한 스마트폰이나 태블릿PC는 사용법이 매우 직관적입니다. 손가락으로 누르거나 옆으로 넘기면 바로 다 작동하죠. 설명서 따위는 필요 없습니다. 그런 IT 기기만 다루던 Z세대 입장에선 사무실 곳곳에 놓인 거대한 사무용 복합기는 엄청나게 복잡하고 알 수 없는 구형 기계인 겁니다. 일일이 구글에서 사용법을 검색해보지 않으면 도저히 사용법을 알 길이 없죠. 마치 고대 유물을 접한 듯한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문제는 직장에선 Z세대가 기술 면에서 아주 능숙할 거라고 기대한다는 겁니다. 일종의 과대평가인데요. 그리고 본인들도 그걸 알고 있죠. 그래서 나온 말이 ‘기술적 수치심(tech shame)’입니다. 기대치가 높다는 걸 알기 때문에 그걸 제대로 해내지 못했을 때 부끄러움을 심하게 느끼는 거죠.

지난해 말 휴렛 팩커드(HP) 설문조사 결과가 바로 이런 특징이 잘 보여줬는데요. 전 세계 사무직 근로자 1만명을 설문조사한 결과, 젊은 직원 중 20%는 “기술 문제에 직면했을 때 동료들에게 판단을 받는다고 느낀다”고 응답했습니다. 이에 비해 기성세대 직원은 25명 중 1명(4%)만이 같은 상황에서 그런 식으로 느낍니다. Z세대가 기술에 대한 스트레스가 더 심한 겁니다.

그럼 해결방법은? 일단은 기성세대가 이를 이해하고 Z세대가 당당하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겠고요(‘젊은 애가 이런 것도 못하냐’고 놀리는 것 금지). 근본적으로는 번거롭고 구시대적인 사무기술과의 이별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습니다. 2023년이면 스캐너, 팩스, 복사기, 프린터 없이 일할 수 있는 시대잖아요? 아닌가요?

집집마다 프린터가 들어왔다
급할 때만 뜨는 것 같은 프린터 에러 메시지. 게티이미지
급할 때만 뜨는 것 같은 프린터 에러 메시지. 게티이미지
네, 아마도 아직은 아닌가 봅니다. 프린터와 관련한 통계를 찾다가 의외의 사실을 알아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하이브리드 근무(일주일 3일 출근, 2일 재택)이 일반화되면서 놀랍게도 기업의 인쇄비용은 오히려 증가했다고 합니다. 엡손이 지난해 2월 발표한 기업 IT 관리자 설문조사 결과인데요. 무려 응답자의 89%가 “지난 12-18개월 동안 기업의 인쇄 비용이 증가했다”고 답했습니다. 평균 14%가 늘었다는데요.

원격근무가 늘었는데 왜 인쇄 비용이 더 들어갈까요. 이유는 간단합니다. 직원들이 재택근무를 위해 집에 프린터를 새로 들여놨기 때문입니다. 기업들은 직원들의 프린터 구입비용을 지원해주거나 아예 프린터를 배송해줬고요. 잉크나 토너 같은 소모품 비용도 대줬다고 합니다.

집에 프린터가 있으면 일이 더 잘 될까요? 핀란드 제지회사 스토라엔소의 지난해 설문조사(유럽 직장인 3400명 대상)에 따르면 재택근무자의 78%는 ‘프린터가 업무 생산성을 높여준다’고 믿는다고 합니다. 응답자의 76%가 집에 프린터를 둘 정도로 이제 프린터가 홈오피스의 일부가 됐다는데요. 이 회사 조나단 베이크웰 부사장은 “가정용 프린터는 한때 사람들의 집에서 별난 것이었지만 지금은 전자레인지만큼 어디에나 있다”고 표현합니다.

그 결과 기업들은 인쇄비용 관리가 골칫거리라는데요. 예컨대 직원들이 회사가 지원한 가정용 프린터로 업무와 관련 없는 것까지 인쇄하면 소모품 비용 부담이 커질 수 있으니까요. 이를 모니터링하는 솔루션까지 필요해지는 겁니다.

원격근무로 프린터에서 해방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집집마다 프린터가 자리잡게 될 줄이야. 프린터의 끈질긴 생명력이 놀라운데요. 달리 말해 프린터가 앞으로도 많은 근로자들을 꽤 오랫동안 괴롭힐 수 있다는 뜻입니다. ‘iOS’에만 익숙한 Z세대 또는 알파세대 얘기냐고요? 아니요. 우리 모두요.

프린터와의 행복한 공생 방법은
1999년 개봉된 미국 영화 ‘오피스 스페이스’에서 가장 유명한 장면은 주인공들이 사무실 프린터를 훔쳐 들고 나와서 들판에서 때려 부수는 장면이다. 유튜브 화면 캡처
쿼라(미국판 지식인)나 레딧(미국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Printer Suck’을 검색하면 얼마나 많은 글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왜 이렇게 프린터는 형편없나’는 많은 직장인들이 오래 전부터 가진 의문이었습니다.

오죽하면 프린터가 1999년 개봉된 미국의 유명 블랙코미디 영화 ‘오피스 스페이스(Office Space)’에서도 중요 소품으로 등장했을 정도입니다. 잦은 고장으로 짜증을 불러 일으켰던 사무실 프린터를 주인공들이 야구 방망이로 때려 부수는 장면이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이죠.

한낱 사무기기를 사람들이 그토록 미워할 수 있다는 게 신기할 정도로 프린터에 대한 부정적인 감정의 표현들이 넘칩니다. 주요 불만 사항을 모아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잉크와 토너가 엄청나게 비싼데, 그나마 긴급한 순간엔 바닥나곤 한다.

-무선 또는 유선 네트워크가 제대로 연결이 안 되는데 그 이유를 알 수 없다.

-컴퓨터 운영체제를 업데이트할 때마다 드라이버가 사라진다.

-용지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거나 자꾸 걸린다.

-비밀스러운 인터페이스 때문에 고객센터에 가지 않는 한 문제 해결이 불가능하다.

흐릿한 인쇄상태도 프린터 이용자들의 큰 불만사항. 토너를 흔들어주면 선명하게 나오려나? 게티이미지
흐릿한 인쇄상태도 프린터 이용자들의 큰 불만사항. 토너를 흔들어주면 선명하게 나오려나? 게티이미지
이런 이유로 많은 사람들은 프린터가 덩치 크고 돈은 많이 드는데 일은 못하고 수명도 짧은 형편없는 기계라고 생각하는데요. 냉정하게 봐도 프린터는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후집니다. 각 제조업체가 서로 다른 독점적인 드라이버를 제공하고 있는데요. 서로 다른 조건에서 작동하는 방식에 일관성이 없죠. 게다가 요즘 같은 자동업데이트 시대에 걸핏하면 드라이버가 오래돼 사용할 수 없게 되거나, 사라져버리기 일쑤이고요.

그럼에도 필요하니까 계속 사는 거겠죠. 실제 지난해 휴렛 팩커드가 미국과 캐나다 근로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는 다소 충격적이었는데요. 재택근무 중 사무실에서 가장 그리웠던 게 무엇이냐는 질문에 1위를 차지한 게 바로 프린터였습니다(57%가 선택, 복수응답). 동료와의 해피아워(스탠딩 파티)나 무료 점심식사를 제치고 가장 많은 선택을 받았다고 합니다.

기왕 프린터를 쓸 거라면 불평하기보다는 관리를 잘 하는 게 먼저라는 조언도 있습니다. 싸구려 모조품 잉크 카트리지를 쓰지 않고, 질이 좋은 용지를 쓰고, 잉크가 마르지 않도록 주기적으로 청소(퍼지 Purge)를 해주라는 겁니다. 사무실 복합기라면 렌털업체를 통해 관리를 받는 게 가장 심플한 답이고요. 한마디로 돈을 들인 만큼 얻는 게 있는 법입니다.

2010년대 초반, 한국 대기업들이 너도나도 ‘종이 없는 사무실(Paperless Office)’을 구축하겠다고 나섰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직원들에게 태블릿PC를 지급하며 종이 없이 회의하는 게 유행이었는데요. 종이 없는 사무실이란 말이 언제부터 나왔는지 아시나요? 무려 48년 전인 1975년 블룸버그 비즈니스 위크가 쓴 ‘미래의 사무실’ 기사에 나왔습니다.

기사에서 조지 페이크 제록스 팔로알토연구소(PARC) 소장은 “1995년 책상 위엔 키보드가 있는 TV디스플레이 단말기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는데요. 그는 “화면에 있는 내 파일에서 문서를 불러올 수 있고, 메일이나 메시지도 받을 수 있다”면서 “그 세상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하드 카피(인쇄된 종이)를 원할지 모르겠다”고 내다봤습니다(참고로 제록스 팔로알토 연구소는 그래픽이용자인터페이스(GUI)와 이더넷, 레이저 프린팅을 개발). 다른 건 다 정확히 들어 맞았는데 마지막 예언만 빗나갔죠.

오히려 PC와 저렴한 프린터가 사무실에 도입되면서 직원당 문서 수는 폭발적으로 증가했고 종이 사용은 급증했습니다.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까지 도입된 지금도 ‘종이 없는 사무실’은 도달할 수 없는 비현실적 꿈으로 여겨지는데요. 종이에 대한 애착은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그렇다면 프린터와의 씨름도 계속해야 하는 걸까요. 어쩌면 20년 뒤에도 ‘요즘 신입사원들은 프린터 쓰기를 어려워한다’는 게 뉴스거리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By.딥다이브

‘누구도 원하지 않지만 모두가 원하는 프린터’. 지난 2월 이런 제목의 월스트리트저널 기사를 읽으며 프린터에 대한 사람들의 뜨거운 관심이 놀라웠는데요. 이번에 Z세대 관련 보도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놀랐습니다. 이토록 중요한 주제인데 왜 그동안 기사 쓸 생각을 못했을까요. 프린터와 관련한 주요 내용을 요약해 드리자면

-직장생활을 시작한 Z세대들이 고전적인 사무용 기기들과 씨름하고 있습니다. 직관적인 iOS에 익숙한 이들에게 프린터, 스캐너, 복사기, 팩스는 너무나 복잡해서 ‘기술적 수치심’마저 느끼게 합니다.

-PC는 물론 클라우드 컴퓨팅 서비스까지 보편화됐지만 기업의 인쇄 비용은 오히려 늘어가고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하면서 직원들이 집집마다 프린터를 들여놨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프린터가 있어야 일이 잘 된다고 많은 근로자들은 생각합니다.

-동시에 프린터는 돈 많이 들고 고장 잘 나는 골칫거리 기기로 여겨집니다. 형편없는 기계라며 프린터에 화를 내는 사람들도 많은데요. 하지만 1995년이면 올 거라던 ‘종이 없는 사무실’ 시대는 영영 오지 않을 분위기. 프린터와 평화롭게 공생하는 방법을 찾아야겠습니다.

*이 기사는 14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온라인 기사 버전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구독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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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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