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젊은 경제, 동남아 스타트업에 주목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4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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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35세 인구 꾸준히 성장
콘텐츠, 여가 등 소비 시장도 확대
한국 아닌 현지 트렌드 읽고
정치 리스크 면밀히 검토해야

동남아시아가 전 세계 스타트업과 벤처 투자의 각축장이 되고 있다. 2022년 동남아 신규 벤처 투자 규모는 약 13조1000억 원으로 한국의 2배에 달했다. 특히 동남아 벤처 투자의 절반 이상이 초기 기업에 투자되고 있는데 이는 투자자들이 동남아 시장의 미래 성장성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지표이다. 하지만 동남아 시장에는 명과 암이 공존한다. 최근 동남아 시장이 주목받게 된 이유와 이 지역 내 스타트업 투자 전략을 소개한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023년 4월 1호(366호) 스페셜리포트를 요약, 소개한다.

● 젊은 인구가 이끄는 모바일 경제


동남아 주요 경제권인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태국, 말레이시아, 필리핀, 베트남 등 6개국의 인구 규모는 6억 명에 달하는데 특히 15∼35세 청장년층 인구가 증가하고 있다. 동남아 6개국의 청장년층 인구는 꾸준히 증가 곡선을 그리다가 2031년에 정점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15∼35세 인구가 각각 1992년, 1994년, 1998년부터 감소하기 시작한 한국, 일본, 중국과 대비되는 점이다.

여행, 콘텐츠 등 오락, 여가를 위한 소비가 증가하고 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동남아 6개 국가는 2020년부터 중산층 형성 조건인 1인당 국내총생산(GDP) 3000달러를 넘어섰다. 1인당 GDP가 여전히 2200달러대에 불과해 경제 발전에 제약이 있는 인도와의 차이점이다.

디지털 경제의 빠른 성장 역시 기업과 투자자들에게 기회를 제공한다. 2015년부터 본격적으로 2G 인터넷망과 저가 스마트폰이 보급되며 모바일 기반의 전자상거래, 음식 배달, 모빌리티 등 디지털 서비스가 보편화되기 시작했다. 동남아의 디지털 경제 규모는 2019년 1020억 달러에서 2022년 1940억 달러로 2배가량으로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앞으로도 연평균 20%의 고성장을 거듭하며 2025년경 3300억 달러 규모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된다.

글로벌 금융 허브인 싱가포르는 동남아 시장의 투자를 유입시키는 관문 역할을 수행한다. 동남아는 문화, 언어, 종교, 제도가 국가마다 상이하지만 싱가포르는 상법, 회계 기준 등이 글로벌 기준에 맞춰져 있어 해외 기업과 투자자들이 손쉽게 진출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동남아에서 해외 자본을 유치하고자 하는 스타트업들도 싱가포르에 지주사를 세우고 지역별로 자회사를 설립해 운영하는 방식을 채택한다.

● 정책 펀드, 회수 시장 미흡해


동남아 시장이 기회만을 제공하는 것은 아니다. 동남아에는 한국의 모태펀드와 같은 정책 펀드의 영향력이 약하다. 국가별로 정부 자금을 일부 위탁받아 운용하는 투자사가 있지만 시장에서의 영향력은 미미하다. 또한 싱가포르의 국부펀드인 GIC와 테마섹은 동남아 기반 벤처캐피털(VC)에도 활발하게 자금을 공급하고 있지만 철저하게 시장 논리에 따라 전 세계를 대상으로 투자를 진행한다. 벤처 투자에서 정부의 입김이 센 한국, 일본 또는 대만보다는 미국 실리콘밸리와 유사한 성격을 띠는 것이다. 즉, 호황기에는 자금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지만 불황기에는 각자의 상황에 따라 투자를 급격히 줄이거나 자금 회수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실제 벤처 투자의 혹한기가 본격화된 2022년, 국내 신규 벤처 투자는 전년 대비 11.9% 감소한 반면에 동남아는 31.6% 급감했다.

아직까지 기업공개(IPO), 인수합병(M&A) 등 회수 시장이 성장하지 못했다는 점도 큰 약점이다. 국내에선 코스닥 시장이 활성화되면서 시가총액이 500억 원만 넘어도 상장을 노려볼 수 있지만 동남아의 경우 기술 기업에 특화된 2차, 3차 거래소가 전무한 상황이다. 동남아 자본의 수도 역할을 하는 싱가포르의 거래소도 기술 기업이나 적자 고성장 기업의 상장에 상당히 인색한 편이다.

● 한국 아닌 현지 시선으로 접근해야


동남아 벤처 시장에서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한국의 트렌드는 과감히 잊어야 한다. 국내에서 동남아로 활동 반경을 넓히는 투자사라면 한국에서 인기가 높거나 익숙한 아이템에 더 끌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아이디어도 K팝, K드라마처럼 자연스럽게 국내에서 동남아로 전파될 것이라고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2014년 설립된 해피프레시는 태국과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에 걸쳐 장보기 서비스를 출시하며 투자자들의 주목을 받았고, 2021년에는 ‘동남아의 마켓컬리’라는 수식어가 붙으며 국내 투자 컨소시엄으로부터 700억 원에 가까운 자금을 유치했다. 하지만 실상은 기대와는 달랐다. 동남아에서 신선 식품 배달 서비스를 사용하는 고객은 대도시에서도 일부 젊은 부유층에 국한됐다. 기대한 수준의 빠른 성장을 달성하기에 잠재 시장의 규모가 작았던 것이다. 해피프레시는 2022년 9월 구조 조정에 돌입하고 지금은 채권단의 관리하에 일부 서비스만 명맥을 이어가고 있다. 현지인의 관점으로 고객과 시장을 바라보고 기회를 포착하는 능력을 갖추는 것이 동남아 벤처 시장에서 성공하기 위한 첫 단계다.

현지 당국의 움직임과 규제 역시 꾸준히 모니터링해야 한다. 베트남은 최근 공산당 내부 권력 다툼이 불거지면서 정치 리스크가 대두되고 있다. 말레이시아 또한 정치 환경이 불안해 국가 잠재력에 비해 경제 발전이 더딘 지역으로 인식된다. 인도네시아는 2014년 개혁 성향의 조코 위도도 대통령이 취임한 이후 정치가 안정화됐고 경제 성장도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하지만 그의 두 번째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현재도 유력한 주자가 보이지 않는 터라 향후 안정적인 성장세를 유지할 수 있을지 지켜볼 필요가 있다.


박제홍 아틀라스퍼시픽캐피탈 대표 jehong@atlas-pac.com
정리=이규열 기자 kylee@donga.com
#동남아시아#스타트업#벤처#모바일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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