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근 했지만 수당은 없다” SW업체는 64%가 포괄임금 적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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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부, 내달 오남용 근절 대책 발표
법적 근거 없으나 법원 판례로 형성… 통상 근로시간 정산 어려울 때 시행
일부기업, 초과수당 미지급 수단으로 근로시간제 개편 시 오남용 우려 커져
상반기 기획근로감독 실시-사례 적발… 고용장관 “전례 없는 강력 조치 시행”

13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뒷줄 가운데)이 정보기술(IT) 업계 근로자들을 만나 포괄임금제 오남용
 관련 현장 실태를 듣는 간담회가 열렸다. 고용부는 부처 홈페이지 내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서 관련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13일 서울 중구 서울고용노동청에서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뒷줄 가운데)이 정보기술(IT) 업계 근로자들을 만나 포괄임금제 오남용 관련 현장 실태를 듣는 간담회가 열렸다. 고용부는 부처 홈페이지 내 ‘온라인 노사 부조리 신고센터’에서 관련 민원을 접수하고 있다. 고용노동부 제공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이 원칙인 사무직인데 월 마감 연장근무가 잦고 연장근로 수당은 못 받고 있다. 회사는 포괄임금이라 그렇다고 한다.”

“연장근로시간을 한 달 33시간으로 정해 놓고 (통상임금의) 1.5배인 연장근로 수당도 안 준다. 출퇴근 기록도 안 하고 있어서 매일 1시간씩 ‘무료 노동’을 하는 셈이다.”

정부가 2일부터 운영한 온라인 포괄임금 신고센터에 들어온 익명 제보들이다. 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13일 서울 중구 서울지방고용노동청에서 네이버, 넥슨, 웹젠 등 정보기술(IT)기업 노동조합 지회장과 근로자들을 만나 포괄임금제와 관련한 현장의 목소리를 듣고 오남용 신고 사례들을 공개했다. 대부분 사업체가 근로계약에서 정한 것 이상의 일을 시킨다거나 수당을 제대로 주지 않는다는 내용이었다. 초과근로 수당을 주지 않으려고 회사가 출퇴근 기록을 조작하고 있다는 제보도 있었다.
●전체 10곳 중 3곳 시행… ‘공짜 야근’ 양산
포괄임금제란 포괄 임금 계약과 고정OT(Over Time·초과근무) 계약을 합쳐 부르는 것으로 근로기준법에 정해진 제도가 아니라 법원 판례에 의해 형성된 뒤 관행적으로 시행되는 임금 지급 계약 방식이다. 실제 근로시간을 따지지 않고 매월 연장, 야간, 휴일에 대한 수당을 일정한 금액으로 정해서 주거나(고정OT) 그 금액을 애초 기본임금에 합쳐 지급하는(포괄임금) 방식을 일컫는다.

원칙적으로 근로자는 ‘실제 일한 시간만큼’ 기본임금과 법정수당을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근로시간이 애매하거나 불규칙해 정확히 산정하기 어렵거나, 근로시간대가 통상적인 경우와 다른 특수한 직종이 늘면서 포괄임금제가 확산됐다. 야간 경비직, 생산라인 근로자, 외부 영업직, IT 업계 종사자 등이 대표적이다.

문제는 불가피한 경우가 아닌데도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이를 악용하는 사례가 빈번하다는 점이다. 13일 행사에서 넥슨 노조 지회장은 “근로시간 측정이 손쉬운 사무직 직원에게도 포괄임금제를 시행하거나, 포괄임금을 이유로 근로시간 자체를 측정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포괄임금을 지급한다면서 기본임금만 지급하거나 고정수당 이상의 일을 시키는 경우도 많다. 추가 수당 없이 초과근로를 시키는 일명 ‘공짜 노동’ ‘공짜 야근’이다. 2021년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에 따르면 소프트웨어산업 근로자 임금 산정방식의 63.5%가 포괄임금 계약 방식으로 나타났다. 2020년 고용부는 2522개 업체를 조사한 결과 749개(29.7%)가 포괄임금제를 적용하고 있었다고 밝혔다.

정부가 주 52시간(기본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 현 근로시간 기준을 ‘기본근로 40시간+연장근로 주 평균 12시간’으로 개편한다고 밝히면서 포괄임금제도 개선해야 한다는 지적이 커지고 있다.

1년 중 특정한 월, 분기(3개월), 반기(6개월)에 연장근로를 몰아서 하더라도 ‘주 평균 12시간’을 넘지 않으면 문제가 없게끔 되면서 포괄임금제 적용 사업체 내의 ‘공짜 야근’ 우려가 더 커졌기 때문이다.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IT 위원회는 지난해 정부 12월 개편안이 나온 직후 “포괄임금제 철폐 없는 개편안 추진은 크런치 모드(게임 출시 직전의 단기간 고강도 업무)의 전 산업 확대”라고 비판했다.
●“올해를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 원년으로”
고용부는 상반기(1∼6월)에 첫 포괄임금 기획근로감독을 실시하는 등 오남용 사례 적발 및 관리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이 장관은 13일 “올해를 포괄임금 오남용 근절의 원년으로 삼고 전례 없는 강력한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전국 사업체 수만 186만5536곳(2020년 기준)에 이르는 만큼 관리·감독에는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임금체불 기업에 대한 관리·감독을 강화함과 동시에 “기업 스스로 포괄임금제에서 근로시간에 상응하는 임금·수당 지급체계로 전환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지원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최근 근로시간을 기록, 관리하는 시스템이 여럿 개발되고 있다. 직원들이 해당 서비스를 통해 출퇴근 시간을 입력하면 주휴수당, 연장수당 등을 반영해 각 직원의 급여를 계산하고 지급까지 해준다. 사업주는 임금 및 수당 지급 기준만 정해서 미리 입력하면 된다. 노무관리시스템 ‘뉴플로이’의 김진용 대표는 “수당, 공제 조건 등 급여정책은 각 회사에 맞춰 100% 최적화가 가능하다. 주휴수당, 식대, 연장수당 등 기준을 미리 정하기만 하면 모든 급여 업무를 자동화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부는 다음 달 포괄임금과 관련한 ‘편법적 임금지급 관행 근절대책’도 발표할 예정이다. 정부 관계자는 “직업과 직장의 임금 지급체계가 변화하는데 경직된 근로시간 제도가 이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포괄임금이라는 변칙적인 제도가 운영됐다. 각 기업이 사정에 맞게 근로시간을 유연하게 운영할 수 있도록 개혁을 꾸준히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미지 기자 image@donga.com
#포괄임금제#오남용 근절 대책#공짜 야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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