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무명 끝 캐릭터 사업가로… 카카오톡 이모티콘 작가의 세계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2일 16시 0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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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모티콘 작가 유랑은 무명 기간이 길었다. 대학에서 산업디자인을 전공한 그는 “졸업 후 취업이 잘 되지 않아 이모티콘을 그렸다”고 했다. 2017년 카카오가 이모티콘 스튜디오를 만든 뒤 누구나 자신의 캐릭터를 제안해 이모티콘으로 출시하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유랑은 4년 간 쉼 없이 20여개의 이모티콘을 선보였지만 반응은 미지근했다. 월수입이 100만 원이 안 되는 달도 많았다.

유랑이 ‘스타작가’가 된 것은 2021년 4월 ‘망그러진 곰(망곰)’을 선보이면서부터다. 망곰은 출시 직후 10대, 20대 인기순위 상위권에 올랐다. 그는 “그림으로만 보면 기존 캐릭터들이 완성도가 높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삐뚤빼뚤 대충 그린 듯 한 외곽선을 가진 망곰의 ‘하찮음’이 유행에 잘 올라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달 초 경기 성남시 카카오 판교 아지트에서 이모티콘 작가 유랑이 자신의 대표적 ‘망그러진 곰’의 캐릭터 상품 중 하나인 쿠션을 들고 사진을 찍고 있다. 카카오 제공


이후 유랑이 내놓은 커플 버전, 직장인용 망곰 시리즈는 모두 흥행했다. 카카오가 발표한 2022년 이용자들의 선택을 받은 이모티콘 8종 중 하나로 꼽히기도 했다. 유랑은 지난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망곰을 주인공으로 한 만화 연재를 시작했고, 만화를 종이책으로 출판했다. 인형이나 사무용품 등 각종 캐릭터 상품도 출시해 백화점에서 팝업스토어를 열었다. 패션브랜드와 협업한 의류 상품까지 나왔다. 수입도 늘었다. 유랑은 “부모님이 원하는 여행지가 어디든 1년에 한두 번씩 흔쾌히 보내드릴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지난해 ‘카카오톡 이모티콘 이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모티콘’ 8종 중 하나인 망그러진 곰. 카카오 제공
지난해 ‘카카오톡 이모티콘 이용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이모티콘’ 8종 중 하나인 망그러진 곰. 카카오 제공


카카오톡 이모티콘 시장이 가파르게 성장하면서 유랑 같은 ‘스타작가’들이 탄생하고 있다. 지난해 20만 개의 이모티콘이 새롭게 출시됐다. 누적 매출 100억 원이 넘는 이모티콘도 있고, 본·부업으로 이모티콘을 만드는 작가는 1만 명까지 늘었다.

2일 카카오톡에 따르면 2011년 11월 처음 이모티콘을 선보인 뒤부터 지난해 말까지 출시된 누적 개별 감정표현 이모티콘은 50만 개로 집계됐다. 이 중 40%에 해당하는 20만 개가 지난해 출시됐다. 누적 매출 100억 원을 넘긴 ‘초대박’ 이모티콘이 11개, 매출 10억 원을 넘긴 ‘대박’ 이모티콘은 116개다. 라이언으로 대표되는 ‘카카오 프렌즈’ 시리즈를 빼고도 그렇다.

모바일 메신저 시장 점유율 98%를 차지하는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 이용자들은 작가들의 가장 든든한 후원자다. 월평균 3000만 명이 이모티콘을 쓰고, 하루 동안 오가는 이모티콘도 평균 6000만 건에 달한다. 돈을 주고 이모티콘을 구매한 경험이 있는 사람도 누적 2700만 명에 이른다.

카카오가 2017년 누구나 자유롭게 이모티콘을 자유롭게 제안할 수 있는 ‘이모티콘 스튜디오’를 출범시킨 뒤 이모티콘 제작에 나선 이들도 늘었다. 현재 한국에서 활동 중인 이모티콘 작가 1만 명 중 최연소 작가는 12세, 최고령 작가는 83세다.

이모티콘은 일반적인 캐릭터 시장과는 차별화된 시장이다. 이모티콘이 대화 중간 사용하며 대화를 돕는 매개체인 탓에 맥락에 잘 녹아드는 캐릭터가 성공한다.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리는 마블 스튜디오의 히어로나 일본 애니메이션 캐릭터가 카톡 이모티콘 시장에선 큰 인기를 누리지 못하는 이유다.

유행에 적응하지 못하면 인기를 유지하는 것이 쉽지 않다. 이모티콘 스튜디오가 처음 생겼을 때는 캐릭터의 특징이 눈에 띄는 ‘웰메이드’ 이모티콘이 인기를 누렸다. 이후 흰 색감과 둥글둥글한 덩어리 같은 입체감을 주는 이모티콘들이 큰 인기를 누렸고 2020년대 들어선 ‘망곰’ 같은 귀여움과 하찮음을 함께 느낄 수 있는 캐릭터들이 대세가 됐다.

이모티콘 한 세트(24가지 그림)가 어떤 감정으로 구성됐는지도 중요하다. 10~40대가 이모티콘으로 가장 많이 표현하는 감정은 ‘우는 것’인 반면, 50대부터는 행복, 날씨 등을 표현하는 감정을 많이 쓴다. 연령에 따라 같은 주로 사용하는 이모티콘이 달라지는 만큼 주요 타깃 연령대에 맞는 구성이 필요한 셈이다.

이모티콘을 무제한으로 이용할 수 있는 이모티콘 플러스가 2021년 출시된 뒤 이모티콘 시장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말까지 누적 1200만 명이 이모티콘 플러스를 경험하는 등 전체 시장이 커졌지만 정산 시스템이 달라지며 경쟁이 치열해졌다. 기존에는 2500원인 이모티콘을 소비자가 구매하면 작가들에게는 건당 700~750원 가량 분배되는 구조였다. 반면 이모티콘 플러스는 이용자들의 전체 사용량에서 점유율을 기준으로 정산되기 때문이다. 두터운 이모티콘 포트폴리오를 가진 스타작가들에겐 더 유리해진 측면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기존에는 신제품이 아닌 이모티콘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이 적었으나 이모티콘 플러스 이용자들은 부담 없이 사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홍석호 기자 wil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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