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에 전 부치기 겁나네”… 식용유-녹두값 1년새 36% 올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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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료값 상승에 ‘설차림 다이어트’

전통 시장에서 구입한 4인 가족용 5만 원어치 전(오른쪽). 동태전, 꼬치전, 동그랑땡, 버섯전 등 명절에 즐겨 먹는 전의 주재료 가격이 오르면서 같은 금액으로 전년에 살 수 있었던 양과 비교하면 30% 이상 줄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전통 시장에서 구입한 4인 가족용 5만 원어치 전(오른쪽). 동태전, 꼬치전, 동그랑땡, 버섯전 등 명절에 즐겨 먹는 전의 주재료 가격이 오르면서 같은 금액으로 전년에 살 수 있었던 양과 비교하면 30% 이상 줄었다.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녹두전, 동태전, 동그랑땡에 들어가는 재료값이 전부 올랐어요. 마진을 남기려면 가격을 더 올려야 하는데 명절 손님들 잃을까 이도 저도 못하고 있습니다.”(공덕시장 상인 관계자)

16일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 전집들 벽 곳곳에 ‘재료값이 올라 매장 내 식사 가격을 올렸다’는 안내문이 붙어 있었다. 메뉴판의 전 가격은 기존 1만 원에서 1만3000∼1만5000원 등으로 고쳐져 있었다. 일부 가게는 기존 가격에 테이프를 붙이고 오른 가격을 써놓았다.

‘전 골목’으로 유명한 이곳에서 명절 직전은 대목으로 꼽히지만 올해 상인들 표정은 마냥 밝지만은 않았다. 밀가루부터 계란까지 재료 가격이 급등하며 많이 팔아도 이전보다 남는 게 줄었기 때문이다. 인근에서 30년 가까이 전 가게를 했다는 상인 A 씨는 “가게를 유지하려면 판매 가격을 30% 올려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른 상인 B 씨는 “시장 전집들이 명절만 일단 버티고 가격을 올리든지 다른 직종으로 바꾸겠다고들 한다”고 말했다.

설 명절이 눈앞에 다가왔지만 고물가로 서민들의 설 상차림 부담이 심해지고 있다. 특히 명절 음식의 대명사로 여겨지는 전(煎) 가격이 가파르게 오르면서 ‘차례상 다이어트’에 나서는 가정도 늘었다. 최근 식품 가격이 전반적으로 치솟는 가운데 전에 들어가는 필수 재료의 상승세가 유독 도드라져서다.
● ‘금전’된 전값에 설 차례상 직격탄

17일 한국물가정보에 따르면 대형마트 기준 밀가루 가격(2.5kg)은 지난해 대비 18.0% 올랐다. 식용유(1.8L)도 6590원에서 9480원으로 36.4% 올랐다. 전의 겉에 씌우는 계란(특란 30개 기준) 역시 평년 대비 18.31% 뛰었다.

명절용 전에 많이 사용되는 다른 재료의 가격 역시 큰 폭으로 상승했다. 농산물유통정보시스템(KAMIS)에 따르면 녹두전의 주재료인 국내산 녹두 가격은 500g당 1만495원으로 평년(7709원) 대비 36.1% 상승했다. 깻잎전, 굴전의 재료인 깻잎(100g)과 굴(1kg)도 각각 2895원과 2만6348원으로 27.2%, 37.4% 올랐다. 동태전에 쓰이는 명태값도 많이 올랐다. 관세청에 따르면 5일 기준 냉동 명태 가격은 전년 동기 대비 29.2% 올랐다.

‘금전(金煎)’이 된 제사상 물가에 놀란 소비자들은 명절에도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다. 경기 고양시에 거주하는 주부 류모 씨(47)는 제사상에 올릴 전 가짓수를 기존 5가지(동그랑땡 녹두전 동태전 굴전 맛살전)에서 굴전과 맛살전을 제외하고 3가지로 줄이기로 결정했다. 류 씨는 “내키진 않았지만 물가 압박이 워낙 심해 어쩔 수 없다”고 했다. 서울 성동구에 사는 직장인 유모 씨(29)도 “명절 상차림을 간소화하는 김에 전 종류는 줄이거나 생략하자고 가족들에게 제안할 것”이라고 말했다.
● 불안한 국제정세 여파로 러시아산 명태값 등 폭등
설을 앞두고 ‘금전 현상’이 나타난 건 불안정한 국제 정세로 인한 원재료 가격 상승이 연초부터 식품 물가에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으로 외국산 의존도가 높은 재료들을 중심으로 가격 상승세가 가팔라졌다. 한 대형마트 관계자는 “밀가루 등 곡물가뿐 아니라 러시아산 의존도가 큰 명태와 식용유 수급에도 타격이 컸다”고 말했다. 실제 러시아산 명태는 국내 소비의 80%가량을 차지한다. 식용유 중 하나인 해바라기유도 상당 부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수입한다. 양국의 해바라기유 수출은 전 세계 수출의 70%가량을 차지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인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으로 중국산 물량이 줄어든 것도 전 가격 상승을 부채질했다. 마포구 인근 전집 주인은 “전집에서 많이 쓰는 중국산 녹두의 가격도 20%가량 올랐다”고 설명했다.

노동 강도가 센 해산물 업계의 인력난도 재료값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굴 껍데기를 까는 작업인 박신(剝身) 인력이 줄어들며 2020년 3만1181t에 달하던 굴 생산량은 지난해 10월 기준 1만7525t까지 떨어졌다.
● 올 차례상 채소류·가공식품도 금값
다만 올해 설 차례상에 드는 전체 비용은 공급이 늘어난 사과, 배 등 과일류 가격이 10% 안팎으로 떨어지며 전년 대비 소폭 상승하는 데 그칠 것으로 보인다. 17일 KAMIS(전통시장 기준)에 따르면 올해 설 차례상 비용은 27만4431원으로 전년보다 3.3% 올랐다. 하지만 도라지(16.1%) 고사리(5.8% ) 약과(13.7%) 등 나물류와 가공식품 값은 많이 뛰었다. 고양시에 거주하는 주부 이모 씨(58)는 “이달 초만 해도 해도 4팩에 1만1000원이던 나물 반찬이 이번 주 1만3000원까지 올랐다”며 “과일값은 덜하다지만 설 상차림에 필수인 재료값이 대부분 뛰어 걱정”이라고 말했다.


정서영 기자 cero@donga.com
#설차림 다이어트#식용유#녹두값#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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