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LED서 유전체 분석까지… 첨단 산업 경쟁력 ‘슈퍼컴’에 달렸다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6월 13일 03시 00분


코멘트

유기물 활용한 고성능 소재 연구, 분자 단위 복잡한 연산 반복해야
수만 개 달하는 유전자 변이 계산, 오류 보정 통한 질병 관련성 규명
美 1초당 100경회 연산 슈퍼컴 공개, 산업-학술 활용도 높아 경쟁 치열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연구진이 슈퍼컴퓨터  ‘누리온’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KISTI 제공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 연구진이 슈퍼컴퓨터 ‘누리온’의 성능을 테스트하고 있다. KISTI 제공
차세대 디스플레이인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는 전기를 가하면 스스로 빛을 내는 유기물질로 만든다. 특정한 색깔을 내는 발광층과 전자가 이동하는 수송층의 유기분자가 빛을 내는 최적의 조건을 찾는 설계가 디스플레이 성능을 좌우한다. 하지만 유기 물질의 합성 과정에서 어떤 조건이 OLED의 성능을 높이는지 규명하기는 쉽지 않다. 유기 물질의 특성이 일관성 있게 유지되는지 확인하기도 어렵다.

자금력이 충분한 대기업들은 고성능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이런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 하지만 영세한 중소기업이 고성능 시뮬레이션 시스템을 보유하는 것은 비용 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삼성디스플레이와 한국과학기술정보연구원(KISTI)은 최근 OLED 소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의 이런 어려움을 해결할 시뮬레이션 플랫폼 ‘싱크-OLED’를 공개했다.

이달 중순까지 국내에서 성능이 가장 좋은 슈퍼컴퓨터 5호기 ‘누리온’과 연동 작업을 마치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간다. 정민중 KISTI 슈퍼컴퓨팅응용센터장은 “2010년대 이후 슈퍼컴퓨터를 중소기업 지원에 활용하고 있지만 주력 산업인 소재·부품·장비(소부장) 분야에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모델로 슈퍼컴퓨터를 활용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 첨단 바이오 의료까지 쓰임새 넓히는 슈퍼컴
싱크-OLED는 KISTI 슈퍼컴퓨팅응용센터와 고성능컴퓨터(HPC)융합플랫폼연구단이 2020년부터 삼성디스플레이와 공동연구를 통해 개발했다. 새롭게 개발하려는 OLED 소재가 지니는 기본 물성뿐 아니라 OLED 성능과 밀접하게 연관되는 복합물성을 단 몇 번의 클릭만으로 간단하게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한다.

김한슬 KISTI 선임연구원은 “통상 소재의 물성을 정밀하게 시뮬레이션하려면 분자 단위의 움직임과 관련된 고도의 계산을 반복 수행해야 하기 때문에 막대한 연산량이 요구돼 슈퍼컴퓨터 활용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정 센터장은 “현재 삼성디스플레이 협력 중소기업 3곳이 싱크-OLED 활용을 준비 중이며 연말까지 10곳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소부장 산업뿐만 아니라 첨단 바이오의료 산업 연구개발에도 슈퍼컴퓨터 활용이 본격화하고 있다. 유전체 분석으로 질병과의 연관성을 찾으려는 연구가 활발해지면서 빅데이터가 쌓이고 있지만 옥석을 가리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KISTI 연구진은 유전체 데이터 오류를 보정하는 슈퍼컴퓨팅 소프트웨어 ‘전장 유전체 연관분석(GWSA)’을 올해 3월 개발하고 실제로는 질병과의 연관성이 낮지만 연관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된 유전자 변이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국제학술지 ‘지노믹스와 인포매틱스’에 발표된 이번 연구는 한국인 7523명과 영국인 4242명을 대상으로 한 유전체 분석 데이터에서 보고된 8만4295개의 유전자 변이를 GWSA로 계산해 도출한 결과다. 권오경 KISTI 책임연구원은 “유의미한 유전자 변이 발견은 농축산 분야와 첨단 바이오의료 분야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슈퍼컴퓨터의 분석으로 데이터 오류 보정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 1초에 100경 회 연산 ‘엑사플롭스’ 슈퍼컴도 등장
미국 에너지부 오크리지국립연구소가 구축한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 ‘프런티어’.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제공
미국 에너지부 오크리지국립연구소가 구축한 세계 최고 성능의 슈퍼컴퓨터 ‘프런티어’. 오크리지국립연구소 제공
과학자들의 기초연구에 주로 활용됐던 슈퍼컴퓨터가 산업 경쟁력을 좌우할 수 있는 존재감을 드러내기 시작하면서 과학기술 선도국들의 슈퍼컴퓨터 성능 경쟁도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달 30일(현지 시간) 공개된 전 세계 ‘슈퍼컴퓨터 톱 500’ 순위에서 1위에 오른 미국 오크리지국립연구소의 슈퍼컴퓨터 ‘프런티어’가 실측 성능 1.1EF(엑사플롭스·1EF는 1초에 100경 회 연산)의 성능을 공개했다. 엑사플롭스 성능은 기존 페타플롭스의 1000배에 달하는 성능으로 프런티어가 처음으로 엑사플롭스급 슈퍼컴퓨터 반열에 오른 것이다.

영국 과학 일간지 뉴사이언티스트는 7일(현지 시간) “슈퍼컴퓨터는 현재 광범위한 분야에서 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소재, 물질, 핵물리, 약물 효과 등 첨단 산업에 필요한 시뮬레이션을 실행하고 인공지능(AI) 모델을 훈련하는 데 필수적인 자원이 되고 있다”며 “강력한 슈퍼컴퓨터를 보유하면 산업계와 학계의 경쟁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전 세계에서 슈퍼컴퓨터 투자 경쟁이 일어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김민수 동아사이언스 기자 reborn@donga.com
#oled#슈퍼컴#누리온#디스플레이#엑사플롭스#프런티어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