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창업가, 투자 이끌어내려면 겸손보다 실적 자랑해야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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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캘리포니아大 등 공동연구…투자자 의견에 적극 동의하되
과장된 칭찬은 오히려 불리…상호 신뢰 부르는 행동 필요

손정의 소프트뱅크그룹 회장은 2000년, 당시 갓 알리바바를 창업한 마윈 회장을 만나 대화를 나눈 지 단 10분 만에 2000만 달러라는 거액의 투자를 결정했다. 손 회장의 직관적이면서도 과감한 투자 방식을 보여주는 유명한 이야기다. 손 회장 같은 사례는 벤처캐피털 등의 투자자들이 객관적인 정보에 근거한 이성적인 판단으로만 투자 결정을 내리지 않음을 보여준다. 투자자들이 투자 결정을 할 때 창업가의 교육 수준이나 과거 실적, 성장 가능성 같은 객관적인 정보를 우선시할 것 같지만 실제 현실에서는 창업가와의 궁합이나 즉흥적 감정 같은 비이성적인 측면이 더 중요하게 개입하곤 한다. 그렇다면 창업가가 투자자와 만난 자리에서 그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어떻게 말하는 게 유리할까?

미국의 드폴대, 베일러대, 캘리포니아주립대의 공동 연구진은 창업가가 투자자와 대화할 때 사용하는 수사 방식을 크게 네 가지로 분류해 그 효과를 비교했다. 첫째, 투자자의 의견에 과장된 칭찬을 하면서 아첨하는 방식이다. 둘째, 창업가가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면서 투자자가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음을 강조해 투자자의 가치를 높여주는 전략이다. 셋째는 투자자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조 의견을 표시하는 전략, 마지막은 창업가가 자신의 기존 성과를 홍보함으로써 자신이 우월한 사람임을 보여주는 전략이다.

연구 결과, 먼저 창업가가 투자자 앞에서 아첨을 하거나 자기 비하를 통해 투자자들을 기쁘게 하려는 수사학적 전략은 투자 자금 확보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창업가가 투자자의 의견에 동조하거나 자신의 업적을 강조할 때 투자 자금 확보에 긍정적 영향을 미쳤다. 특히 이런 긍정적 효과는 창업가의 카리스마가 높은 것으로 평가되거나, 이 기업의 기존 실적이 좋을 경우에 더욱 뚜렷하게 나타났다.

이는 창업가가 투자자 앞에서 말할 때 자신의 업적을 적극 홍보함과 동시에 기업과 제품 및 서비스에 대한 자신감을 보여주는 것이 투자금 확보에 도움이 된다는 교훈을 준다. 또 투자자에게 아첨하기보다는 그의 의견에 적극적으로 동의하는 게 투자자의 신뢰를 확보하는 데 유리함을 시사한다.

물론 한국과 미국은 문화적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미국의 창업 환경을 바탕으로 한 이번 연구 결과가 한국 상황과는 맞지 않을 수 있다. 특히 한국은 ‘벼는 익을수록 고개를 숙인다’는 격언을 실천하듯 자기 업적을 피력하는 것을 꺼리는 문화적 특징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업가와 투자자가 상호 작용할 때 신뢰감을 확보하는 것은 문화적 차이와 상관없이 매우 중요하다. 한국의 창업가들도 본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투자자들에게 신뢰감을 확보하기 위한 효과적인 수사학적 전략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


이종균 제임스메디슨대 경영학과 조교수 lee3ck@jmu.edu
정리=배미정 기자 soya1116@donga.com
#dbr#창업#투자#실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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