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단지, 다른 공시가…그 비밀은 여기 있었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24일 14시 4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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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택 공시가격에 대한 논란이 식을 줄 모르고 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시세 상승률을 훌쩍 뛰어넘는 수준으로 공시가격 상승률이 산정된 탓이다. 특히 아파트의 경우 같은 단지, 같은 동, 같은 층수에 있는데도 공시가격이 서로 다른 곳이 나오면서 ‘깜깜이 산정’이라는 불만마저 터져 나오고 있다. 제주도와 서울 서초구 등 일부 지방자치단체와 일부 지역 아파트단지들은 공시가격 철회 요구와 함께 자체적인 검증 작업을 펼치겠다는 움직임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들쑥날쑥한 것처럼 보이는 공시가격 산정 과정의 비밀이 드러났다. 같은 동 아파트라도 층에 따라 가격이 최대 10% 차이가 나도록 설계돼 있었다. 같은 단지라도 향과 조망권, 소음, 지하철역과의 거리 등 위치별 특성에 따라 최대 22% 정도 격차를 두게 돼 있었다. 공시가격은 이런 변수들을 반영한 값(‘총격차율’)에다 개별 단지의 면적별 대표 아파트값(‘기초가격’)을 곱한 값으로 정해졌다.

문제는 이런 공시가격 산정과정에서 대상 주택에 대한 철저한 현장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다. 이에 따라 다음달 29일로 예정된 공동주택 공시가격 산정자료 공개까지 논란이 이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 층, 향, 조망, 소음 등에 따라 가격차
국토교통부는 이런 내용을 담은 자료집 ‘2020년도 공동주택가격 조사·산정 업무요령’을 최근 인터넷 홈페이지 정책자료 메뉴에 올려놓았다.

업무요령에 따르면 공시가격의 산식은 ‘기초가격X총격차율’이다. 기초가격은 단지 내 면적별로 특별한 보정요인이 필요 없는 표준적인 주택을 선정해 구한다. 이 가격에 현실화율(시세 대비 공시가 비율) 등이 반영된다.

총격차율은 층, 향, 조망권, 소음, 기타 등 세부 항목별로 각각 구해진다.

층별 가격은 기준값에다 층 높이에 따른 배율을 정해 구해진다. 만약 9층 이상이라면 A~F까지 6등급으로 나눠 최대 10% 차이가 나도록 돼 있다. A는 100%를, F는 90%만 적용하는 식이다. 20층 아파트라면 △A는 11~18층 △B는 10층과 19층 △C는 7~9층과 20층 △D는 4~6층 △E는 2,3층 △F는 1층으로 분류된다. 11~18층 아파트보다 1층 아파트의 공시가격이 크게 낮게 책정된다는 뜻이다.

향은 아파트의 경우 거실 창을 기준으로 동서남북 4방향과 북동·남동·북서·남서향 4방향을 더한 8방위로 세분화해 가격 격차를 둔다. 남향 > 남동향과 남서향> 북동향과 북서향 >서향과 동향 > 북향의 순으로 해서 최대 5% 차이를 두도록 했다. 남향을 선호하고, 실거래가격이 그만큼 높게 책정된다는 점을 고려한 배율로 보인다.

조망권은 공원 산 바다 강 골프장 등 양호한 조망을 가졌거나 조망을 저해하는 요소를 반영해 차등을 두도록 한 것이다. 동일 규모, 동일 층에서 보통인 아파트를 기준으로 불량은 최대 95%, 양호는 110% 범위에서 배율을 적용하게 된다.

소음은 도로 철도 등으로 인한 소음의 유무에 따라 보통을 기준으로 불량한 아파트는 5% 정도 낮게 책정하게 돼 있다. 도로 및 지하철역, 상권, 교육시설과의 접근성도 보통을 기준으로 불량과 양호가 90~110% 범위에서 차이를 두게 된다.

이밖에 프라이버시, 1층 전용 정원, 최상층 다락방(펜트하우스) 등 향·조망·소음 이외에 아파트 가치에 영향을 주는 요소들도 각 10% 범위에서 격차를 반영하게 돼 있다. 여기에 전매제한이나 대지권 등재 여부, 발코니 확장 여부 등도 고려 대상이다.

국토부는 이런 요소들을 조합한 예시도 제시했다. 기초가격 10억 원 아파트(15층, 남향, 소음 없음)가 있는 단지에 있는 4층, 동향, 소음이 들리는 아파트(조망과 기타 요인은 동일)의 가격은 8억 7500만 원이라는 것이다. [10억(기초가격) X 0.95(층) X 0.97(향) X 1.0(조망) X 0.95(소음) X 1.0(기타)]라는 계산식이 적용된 결과다.

● 여전한 부실 산정 우려
촘촘해 보이는 공시가격 산정 방식에도 허점은 있다. 무엇보다 제대로 된 현장조사가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에 대한 우려다. 제주도가 제기하고 있는 단독주택가격 부실 산정 의혹은 이런 우려를 부채질하고 있다.

제주도에 따르면 한국부동산원은 올해 제주 표준주택으로 선정한 주택이 폐가라는 사실을 뒤늦게 확인하고 대체주택을 골랐는데, 그 역시도 지은 지 40년이 넘은 폐가였다. 또 대체주택의 공시가격을 인근에 지은 지 4년 된 신축주택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 결과 제주 표준주택 전체의 평균 공시가격은 전년 대비 1.55% 하락했지만 대체 폐가주택은 13.2%나 올랐다. 현장조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음을 시사한다.

제주도는 표준주택 공시가 산정에 투입된 조사원 1명 당 책임져야 할 주택수가 635채 정도였다. 그런데 아파트는 1인당 무려 2만 6956채(2020년 기준)에 달한다. 조사기간은 2019년 8월 26일부터 2020년 1월 15일까지 144일로 책정됐지만 휴일과 추석 등을 제외한 실제 조사 가능기간은 97일 정도다. 한 사람당 하루에 274채를 조사하고 가격을 결정해야 한다는 뜻이다.

새로 추가된 주택에 대한 현장조사만 진행하고, 나머지 기존 주택은 환경 변화 여부를 확인해 그에 맞게 수치를 일부 조정한다고 치더라도 빠듯한 일정이다. 지난해 조사대상이 전년보다 44만 채 증가해 1인당 846채 늘어났기 때문이다.

황재성 기자 jsonh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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