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도 날 멈출순 없어”… 포철 1고로 48년째 쇳물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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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1973년 첫 생산, 1993년 새로 고쳐
세계 최장 조업 기록 ‘민족 고로’… IMF사태 등 고비, 신기술로 넘겨
포스코, 최근 생산량 줄였지만 “위기극복 불꽃은 계속 타오를 것”

48년째 불꽃을 뿜어내고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고로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모습. 포스코 제공
48년째 불꽃을 뿜어내고 있는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고로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모습. 포스코 제공
이달 9일 찾은 경북 포항시 포스코 포항제철소 제1고로. 높이 84m의 고로는 이날도 바닥의 출선구(쇳물이 나오는 곳)로 시뻘건 쇳물을 뿜어내고 있었다. 내부 용적 1660m³, 긴 항아리 모양의 고로에 철광석과 유연탄 덩어리를 밀어 넣고 섭씨 1000도의 열풍을 불어넣으면 내부 온도가 1500도까지 올라가면서 철광석이 쇳물로 녹아 나온다.

이 고로는 꼭 47년 전인 1973년 6월 9일, 한국 최초의 쇳물을 뽑아낸 바로 그 고로다. 한국 철강업계가 2000년부터 이날을 ‘철의 날’로 지정해 기념할 만큼 포항의 제1고로는 한국 철강업계 역사 그 자체이기도 하다. 제1고로 현장 근로자들은 이 고로를 ‘민족 고로’로 부른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으로 수요산업이 위축돼 철강업도 유례없는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한국 산업의 최후방으로 꼽히는 고로에서는 이번 위기를 넘어서려는 싸움이 뜨거웠다.

1고로는 첫 화입 이후 반세기 동안 생명을 이어오고 있고, 1993년 2월 고로를 고쳐 짓는 개수 공사 시점을 기준으로도 현재 전 세계에서 최장 기간 조업 중인 고로다. 정철호 포스코 1제선공장 조업파트장(56)은 “국제통화기금(IMF) 사태 등도 겪었지만 철강업계는 지금이 가장 위기다. 하지만 묵묵히 반세기 동안 쇳물을 뿜어낸 1고로가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 온 일을 되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하루 3000t의 쇳물을 생산하던 1고로는 최근 코로나19 사태 탓에 10% 이상 생산량이 줄었다. 1고로의 연간 생산 능력은 150만 t 수준으로 550만 t 규모의 초대형 고로가 여럿인 포스코에서는 가장 작다. 클수록 효율적이라는 점, 1고로가 설계수명을 넘겼다는 점을 감안하면 언제 불을 꺼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다. 1, 2년 안에 ‘종풍(조업 종료)’을 맞을 것이란 말도 나온다.

하지만 현장에서 만난 근로자들은 최대한 ‘민족 고로’를 지키겠다는 각오로 뜨거운 열과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조남홍 제1제선공장 고로본체파트장(59)은 “제철소 전체 경쟁력을 감안해 종풍 시점을 판단할 것”이라면서도 “코로나19가 계기가 되어선 안 된다. 현재의 위기 극복에 최대한 힘을 보태고 3∼5년 이상 더 생산할 수 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1고로가 작다는 점이 오히려 ‘테스트 베드’ 역할을 하며 포스코의 경쟁력을 높여왔다고 입을 모았다. 2018년 다른 고로에서는 쓰지 않는 저품질 원료를 이용한 쇳물 생산에 성공하면서 포스코의 고로 9기 가운데 가장 높은 원가경쟁력을 기록한 바 있다. 설계수명인 15년을 훌쩍 넘기는 시간 동안 고온·고압을 견디느라 내부의 내화벽돌이 교체 시점 직전까지 얇아진 곳도 있다. 1고로는 이런 상황을 최대한 고로 중심에서 쇳물을 생산하는 기술과 쇠로 된 외피를 물로 직접 냉각시키는 신기술로 극복해 왔다.

포스코는 코로나19로 자동차, 전자제품 수출이 급감하자 이들 제품에 들어가는 강판을 생산하는 냉연·도금 공장의 일부 휴업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2, 3년 전에 수주한 선박을 만드는 조선업의 후판 수요가 큰힘이 되는 가운데 저가의 수입재가 늘어난 열연 분야를 최대한 공략하며 고로의 불꽃을 멈추지 않을 계획이다.

포항=김도형 기자 dodo@donga.com
#포스코#포항제철소#포항 제1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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