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7조원 풀렸다는데 中企는 돈가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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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대출 상환-추가담보 요구… 정부 정책금융 신청 줄줄이 퇴짜
“공장 지키겠다고 발버둥치는데 공장 팔아야 대출 해주겠다니…”

“공장을 팔아야 대출을 내준답니다. 어떻게든 공장을 지켜보려고 이 발버둥을 치는 건데….”

경기 안산시 시화공단에서 금속 부품을 제조하는 3차 하청업체 대표 한모 씨(52)는 요즘 속이 바짝 타들어 가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일감이 급감한 3월부터 한 대표는 돈을 구하기 위해 안 가본 곳이 없다. 은행은 물론이고 신용보증기금, 기술보증기금을 문턱이 닳도록 찾았지만 모두 퇴짜를 맞았다. 그나마 신보에선 신규 대출이나 보증이 가능하다고 했지만 조건을 듣곤 한숨이 나왔다. 공장을 팔고 기존 대출부터 갚으라는 것이었다. 그 대신 공장은 임대로 들어가면 되는 것 아니냐는 조언이었다.

정부가 ‘100조 원+α’ 규모의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프로그램을 내놓았지만 중소기업에선 ‘돈 가뭄’을 호소하는 아우성이 끊이지 않는다. 은행은 대출 부실을 우려해 지원에 소극적이고, 정부의 정책대출마저 대부분 추가 담보를 요구해 ‘그림의 떡’이 되고 있다.

8일 금융당국에 따르면 지난달 29일까지 금융권 전체의 코로나19 관련 대출·보증 지원 실적은 142만9000건, 117조3000억 원이다. 작지 않은 규모다. 하지만 현장에선 정부 발표를 체감하기 어렵다는 분위기다. 신규 대출은 117조 원 중 49조 원에 그치고 그마저도 신용등급이 높은 기업에 집중돼 있다. 민생·금융안정 패키지 중 중소기업 정책 대출·보증 소진율은 48%에 그쳐 소상공인 대상 금융지원 소진율(76.2%)보다 더디다.

한 대표는 12년 동안 회사를 운영하며 한 번도 대출 이자가 밀린 적이 없다. 하지만 주거래 은행에선 추가 대출을 거절한 것은 물론이고 코로나19 피해 기업은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가 가능하다는 안내조차 하지 않았다.

은행들은 코로나19 극복 관련 금융지원 때문에 실적과 건전성 악화가 우려되는 마당에 최소한의 ‘리스크 관리’는 불가피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무턱대고 대출을 해줬다가 나중에 부실채권으로 돌아오면 누가 책임지느냐는 것이다. 1분기(1∼3월) 은행 총자본비율은 14.72%로 작년 말보다 0.54%포인트 떨어지는 등 건전성 우려가 이미 고개를 든 상황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정부 정책 체감도가 낮다는 의견을 여러 차례 국회와 정부에 전달했지만 잘 개선되지 않고 있다”고 했다.

김형민 kalssam35@donga.com·장윤정 기자
#코로나19#경제 위기#은행 대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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