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금 연체 가능” 대출 규제 우회로 찾아나선 건설사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13일 17시 2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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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중도금 연체 지원으로 화제를 모은 서울 서초구 ‘방배 그랑자이’ 아파트의 본보기집. GS건설 제공
최근 중도금 연체 지원으로 화제를 모은 서울 서초구 ‘방배 그랑자이’ 아파트의 본보기집. GS건설 제공
“대출이 안 나와도 중도금을 연체하면 된다는 데 정말인가요?”

이달 7일 서울 서초구 방배동 ‘방배 그랑자이’ 아파트의 청약을 앞두고 온라인 부동산 커뮤니티에선 ‘중도금 연체 지원’이 관심사로 떠올랐다. 이 단지는 모든 주택이 분양가 9억 원을 넘어 중도금대출이 아예 받을 수 없다. 중도금을 처음 세 번만 납부하면 나머지 금액을 계약 해지 없이 연체할 수 있다는 소식에 예비청약자들은 반신반의했다. 이들은 중도금을 연체해도 신용등급에 불이익은 없는지, 법적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지 궁금해 했다.

시공사인 GS건설이 내놓은 전략은 이랬다. 처음 세 번만 잘 내면 나머지는 연체해도 계약을 유지하고 연체 이자도 연 5%로 낮춰주는 것. 기존 중도금대출의 이자율이 4%대 초반임을 감안하면 사실상 중도금대출을 받는 것과 다를 게 없다. 심지어 대출보다 편하다. 주택담보대출비율(LTV) 등 각종 대출 규제를 감안하면 더 많은 자금을 동원할 수 있다. 분양주체와 당첨자 간 사적 계약이라 신용상의 불이익도 없다.


중도금 연체 지원이 이번에 처음 나온 건 아니다. 2017년 분양한 강남구 ‘래미안 강남 포레스트’는 중도금을 처음 두 번만 내면 계약을 유지한다는 특약을 제공했다. 일각에선 이 같은 지원에 대해 9억 원 초과 고가 아파트에 대한 대출을 막는 규제를 우회하는 꼼수라고 비판한다. 국토교통부도 분양 관계자에 관련 내용을 문의하는 등 예의주시했다는 후문이다.

하지만 오죽하면 건설사가 나서서 중도금을 연체하라고 광고하는 상황이 벌어졌는지는 한 번 생각해볼 문제다. 지금 강남권의 새 아파트 분양가(3.3㎡ 기준)는 4500만 원을 넘어섰다. 강남에서 분양가 9억 원 이하인 아파트가 자취를 감췄고 마포 동대문구 등 강북권 입지 좋은 단지도 9억 원이 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어렵게 청약에 당첨되고도 계약을 포기하는 사람들이 급증한 데는 대출 문턱이 높아진 영향이 크다. GS건설의 전략 역시 강남에 진입하고 싶은 30, 40대 고소득층이 대출 때문에 주저한다는 점에 착안했다.

국토부가 9일 원천 차단하고 나선 ‘줍줍’(줍고 또 줍는다는 뜻) 현상도 마찬가지다. 청약통장이 필요 없는 무순위 청약의 인기에는 현금부자들의 아파트 쇼핑에 더해 까다로워진 청약 조건 때문에 당첨을 기대하기 힘든 이들의 수요도 섞여있다. 어떤 규제든 숨쉴 틈도 없이 지나치게 옭아매면 부작용이 따르기 마련이다. 그 부작용 탓에 도입 당시의 좋은 취지마저 빛이 바랜다면 정부와 국민 모두에 손해다.

지난해 무섭게 치솟았던 서울 집값은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 이제 달려온 길을 돌아볼 때다. 분양가 9억 원이라는 중도금대출 기준을 현실에 맞게 조정하거나 실수요자에 한해 대출 숨통을 터주는 등 보완책이 필요하다.

주애진 기자 ja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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