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2P대출, 덩치따라 부실도 커져… 투자자들 물린돈 700억 육박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5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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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P에 물린 돈, 700억원 추산… 작년 민원 30배 껑충
예-적금보다 높은 수익률로 인기… 도입 5년만에 누적 대출 3조 돌파
부실관리에 연체율 7.07%까지 상승… 감독 강화 ‘P2P법’은 국회서 낮잠


30대 장모 씨는 2년 전 여윳돈 3000만 원을 부동산 P2P(Peer To Peer·개인 간) 대출에 투자했다. 투자금을 부동산과 P2P 두 곳에 분산 투자하며 장 씨가 매월 거둬들인 투자수익금은 50만 원. 연 환산 수익률이 20%에 이르는 고수익 투자였다. 처음 하는 P2P 투자에 쏠쏠한 재미를 본 장 씨는 수익을 내면 이를 곧바로 다음 대출 상품에 투자하는 식으로 투자 액수를 불려 갔다.


그러던 중 2017년 말에 한 P2P업체를 통해 1000만 원을 투자한 것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알고 보니 그 업체가 담보도 없는 빌라 건축 사업에 대출을 실행했고 차주(借主)는 비슷한 방법으로 여러 곳에서 돈을 빌린 사기꾼이었다. 결국 이 P2P업체 대표와 차주는 횡령과 배임 혐의로 작년 검찰에 구속됐다. 불안해진 장 씨가 업체에 전화를 걸었지만 “P2P 투자는 원금 보장이 안 된다”는 답변만이 돌아왔다. 1000만 원을 다시 돌려받을 길이 막막해진 것이다. 장 씨는 “업체가 광고한 수익률에 현혹돼 손실이 생겼다”며 “다시는 P2P에 투자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저금리 시대에 높은 수익률을 낼 수 있어 인기를 끌던 P2P 대출 때문에 투자자들의 피해가 잇따르고 있다. P2P 대출은 불특정 다수가 개인 또는 법인에 대출해주는 새로운 개념의 대출 방식이다. P2P업체는 자사 홈페이지에 사업내용, 차주의 신용도, 투자 수익률 등을 공시하고 여러 대출자에게 투자금을 모집한 뒤 대출을 실행한다. 투자자는 대출 이자로 투자 수익을 얻고 P2P업체는 차주와 투자자로부터 대출 중개 수수료를 받는 구조다. 투자자들은 시중은행 예·적금보다 훨씬 높은 수익을 낼 수 있지만, 대출 연체가 발생해 이자를 제때 받지 못하거나 경우에 따라 원금을 떼일 수도 있다.


P2P 대출은 2015년 국내에 처음 도입돼 이후 그 규모가 가파르게 성장했다. 한국P2P금융협회에 따르면 P2P를 통한 누적 대출액은 올해 3월 말 현재 약 3조6300억 원, 대출 잔액은 1조900억 원에 이른다. 금융 당국도 P2P 대출을 핀테크의 대표적인 사례로 보고 육성 방안을 만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최근 P2P 시장은 덩치가 커진 만큼 부실 대출과 연체율도 높아지며 몸살을 앓고 있다. P2P협회 공시 자료에 따르면 2016년 12월 말 0.42%였던 연체율은 올해 3월 말 기준 7.07%까지 상승했다. 심지어 연체율이 100%로 투자자들이 투자금 전액을 돌려받지 못하는 업체도 있다. 업계에선 투자자들이 상환받지 못하고 있는 잔액이 약 700억 원에 이르고, 여기에 업체 폐업 등으로 떼인 돈까지 포함하면 2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사기나 횡령 등의 범죄 혐의로 대표가 구속되거나 회사 문을 닫는 곳도 속출하고 있다. 이런 업체 중에는 쇳덩이를 금색으로 칠하고 이를 금괴라며 투자자를 속인 곳도 있었다. 빌딩 짓는 것에 돈을 빌려줬다고 공시해 놓고 정작 돈 빌린 사람은 부지조차 매입하지 않은 곳도 나왔다. 지금까지 이런 부실회사 10곳 이상이 시장에서 퇴출됐다.

투자자들의 민원도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지난해 P2P 관련 소비자 민원 건수는 1867건이었다. 2017년(62건)의 30배에 이른다. 한 P2P업체 관계자는 “일부 업체에서 불법 행위와 부실이 생긴 탓에 전체 업계가 불신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투자자 피해는 늘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 수단은 마땅치 않다. P2P업체는 현행법상 금융회사가 아닌 통신판매업자라서 금융 당국이 이를 직접 제재할 권한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P2P업체들은 모회사 아래 대부업체를 자회사로 두고 대출 영업을 하고 있다. 사실상 금융업을 영위하면서도 감독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것이다.


국회와 금융 당국은 뒤늦게 P2P 대출을 제도권 금융의 틀 안에 넣고 감독을 강화하는 내용의 ‘P2P법’을 발의한 상태다. 민병두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이 각각 발의한 이들 법안은 P2P업을 정식 금융업으로 규정하고 업체의 최소 자본금을 기존 3억 원에서 10억 원으로 높이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지금 국회가 파행을 거듭하고 있어 당장 통과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양태영 한국P2P금융협회장은 “관련 법안이 통과되면 시장 안정화가 더 빨리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형민 기자 kalssam3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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