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행에 흔들리지 않는 꾸준함이 ‘줄서는 빵집’ 만들어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0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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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한남동 ‘오월의 종’ 인기 비결

‘오월의 종’ 정웅 대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 두 곳, 영등포구 한 곳 등 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오월의 종’ 정웅 대표.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인근에 두 곳, 영등포구 한 곳 등 3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최훈석 기자 oneday@donga.com
서울 용산구 한남동에 자리 잡은 빵집 ‘오월의 종(May Bell)’은 매일 오전 11시에 문을 연다. 한 시간 전부터 사람들이 줄을 서기 시작한다. 문이 열리면 작은 빵집은 금세 사람들로 가득 찬다.

오월의 종이 한남동에 들어선 것은 2007년. 초창기 몇 년은 영업 마감 후 주변 상인들에게 나눠줬을 정도로 빵이 남았다. 하지만 이제는 이른 오후 시간에 가게 문을 닫아도 될 정도로 일찌감치 다 팔리는 날이 이어지고 있다. 오월의 종이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는 빵집으로 거듭날 수 있었던 이유를 DBR 257호에서 분석했다.

정웅 대표가 한남동에 오월의 종 1호점을 열었을 당시, 빵집들은 케이크 등 제과 쪽 판매 비중을 70%, 제빵 쪽 비중을 30% 정도로 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빵보다 비싼 케이크가 매장 수익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월의 종에는 케이크가 없다. 정 대표가 좋아하는 것은 담백하고 심심해 일반적으로 ‘식사빵’이라고 불리는 빵들이었다.

그는 특히 호밀과 통밀 등 당시 한국에서는 잘 사용되지 않았던 재료에 관심이 컸다. 단팥빵이나 크림치즈빵처럼 단맛을 가진 빵도 일부 만들기는 했지만 대부분은 담백한 종류였다. 다른 빵집처럼 케이크도 내놓고 디저트류도 만들어 보라는 조언을 많이 들었지만 그는 흔들리지 않았다. 만드는 사람 본인이 좋아하지 않는 메뉴는 오래갈 수 없다고 믿었다.

빵을 만들 때 그가 준수하는 원칙이 하나 더 있다. ‘무엇을 넣었다’고 표기했다면 반드시 그 맛이 나야 한다는 것이다. 오월의 종에 진열된 빵들은 모두 재료를 이름으로 하고 있다. 건과일통밀빵은 통밀을 기초원료로 해서 건과일이 들어간 빵이고 무화과호밀빵은 호밀을 기초원료로 해서 무화과가 들어간 빵이다. 손님들이 이름만 보고도 어떤 빵인지, 무슨 맛이 날지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게 하기 위함이다. 그만큼 재료를 아끼지 않고 넉넉히 쓴다. 건과일을 이름으로 달고 있으면서 건과일 맛이 나지 않고 통밀을 이름으로 달고 있으면서 통밀 맛이 나지 않는 빵을, 그는 ‘사기’라고 했다.

현재 오월의 종은 3개 매장이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부근에 두 곳, 서울 영등포구 타임스퀘어에 한 곳이다. 직원은 20여 명. 이들은 모두 빵을 만들 수 있다. 직접 오븐 앞에 서는 직원은 물론이고 계산을 해주는 직원, 매장을 정리하는 직원, 빵을 썰어주는 직원도 마찬가지다. 계산대에서 일하다가도 빵 굽는 일손이 부족하면 오븐 앞으로 달려가 돕는다. 주로 하는 업무는 정해져 있지만, 주 업무에 상관없이 모든 직원으로 하여금 빵 만드는 법을 배우고 직접 만들어 보도록 하는 것이 정 대표의 원칙이다. 직접 만들어 봐야 자부심을 가질 수 있다는 생각에서다. 또 직접 만들어 보면 재료와 부재료에 대한 이해도가 높아져 손님들에게 정확하고 자세히 설명해줄 수 있다.

오월의 종이 창업 초기 고전했던 것은 기존 빵집들의 관행에서 벗어났기 때문이었다. 매출 증가에 도움이 되는 케이크와 디저트류, 단맛 나는 빵이 아니라 호밀과 통밀 등을 사용해 지극히 담백한 맛을 내는 빵들을 집중적으로 시도했다.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지금은 많은 곳에서 활용하고 있는 ‘건강빵’ 개념을 일찍부터 가졌던 셈이다. 이런 노력은 오월의 종을 건강빵 분야의 선두주자로 소비자들에게 인식시키는 역할을 했고 현재의 인기 비결이 됐다. 물론 사회 전반적인 ‘웰빙’ 트렌드의 덕을 보기도 했지만 제품 품질에 대한 원칙과 기준을 높게 세우고 오랫동안 지켜간 것이 주효한 것이다.

또 요즘의 트렌디한 빵집들이 프랑스산 밀가루를 수입해 쓴다고 자랑하지만 오월의 종은 국산 밀가루 사용을 고집해 왔다. 매주 세 곳의 매장에서 20kg짜리 밀가루 50∼60포를 쓰는데, 쉽게 대량으로 구할 수 있고 품질이 일정한 밀가루를 써야만 빵 맛의 편차를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오월의 종은 쉽게 바뀌고 변하는 트렌드를 따르기보다는 스스로 설정한 가치를 꾸준하고 묵직하게 지켜내면서 오랫동안 성공의 바닥을 다졌다. “정성 들여 만들었다면 묵묵히 기다려야 한다. 다만 애정을 기울여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해라.” 정 대표가 제빵 후배들에게 주는 조언이다.

최한나 기자 han@donga.com
#줄서는 빵집#오월의 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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