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 내고 학자금 갚고나면 남는 돈 없어… ‘캥거루족’ 유턴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2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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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리 휘는 20代 청년 가구주

서울 마포구에서 고시 공부를 하는 조모 씨(27)는 80만 원으로 한 달 생활비를 해결한다. 언뜻 보면 적지 않은 것 같지만 매달 50만 원씩 월세를 내고 나면 실제로 쓸 수 있는 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시간이 날 때마다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고시 공부와 병행하는 탓에 오래 일을 하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시험에 합격한다고 해도 조 씨는 앞으로 3000만 원의 학자금 대출을 갚아 나가야 한다. 조 씨는 “부모님과 함께 살면서 월세라도 줄이고 싶지만 가족은 먼 곳에 떨어져 사는 탓에 그나마도 어렵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30세 이하 가구주는 이처럼 열악한 여건 아래서 사는 경우가 많다. 과거에는 취업에 성공하거나 시험만 합격하면 금방 안정적인 생활을 꾸릴 수 있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오르는 주거비용에 졸업하고 취업하자마자 갚아야 하는 학자금 대출 등을 생각하면 ‘한 번 가난은 영원한 가난’으로 빠지기 쉽다. 정부가 각종 정책자금을 통해 저금리 대출을 선보이고 있지만 이들의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해주진 못한다. 당장은 어려워도 결국 민간 분야에서 양질의 일자리가 창출돼야만 풀릴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 주거비 부담에 허리 휜다

30세 미만 가구주에게 가장 큰 부담은 주거비용이다. 매달 수십만 원의 월세를 내고 나면 저축은커녕 제대로 된 식사도 하기 어렵다. 서울 마포구의 원룸에서 생활하는 임모 씨(27·여)는 “매달 아르바이트로 100만 원 남짓한 생활비를 벌지만 월세만 40만 원을 내야 한다”면서 “월세를 줄이려고 행복주택 등을 알아봤지만 출퇴근이 가능한 집은 경쟁률이 너무 높아 입주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담보대출과 신용대출이 모두 증가한 것도 주거비용과 무관치 않다. 30세 미만 가구주의 금융부채 가운데 주택담보대출 등 담보대출은 1384만 원으로 나타났다. 1년 전(1124만 원)보다 23.1% 증가했다. 이들이 담보대출을 받은 이유로는 거주할 주택 마련(52.9%)과 전·월세 보증금 마련(37.0%) 비중이 높았다.

대학 진학에 따른 학자금 대출은 20대의 살림살이를 팍팍하게 하는 또 다른 요인 중 하나다. 서울 종로구의 직장인 김모 씨(28·여)는 “월세 45만 원 외에도 학자금 대출금을 매달 35만 원씩 갚아야 한다”면서 “매달 80만 원씩 고정비용을 내고 나면 정작 쓸 수 있는 돈은 변변치 않다”고 말했다.

생활비를 줄이기 위해 부모의 보호 아래 사는 ‘캥거루족’으로 회귀하는 경우도 있다. 취업 후 2년 동안의 독립생활을 마무리하고 다시 부모와 함께 사는 이모 씨(29)는 “월세와 생활비를 줄이기 어려워 부모님 집으로 다시 돌아갔다. 저축 등을 하려면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말했다. 그나마 직장, 학교 등 때문에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하거나 부모의 경제적 여건이 어려워 도움을 받기 힘든 경우에는 이조차도 쉽지 않다.

○ 경기회복세 커야 청년고용 늘어

올해 경제성장률은 3%를 넘을 것이 확실시되지만 청년실업률은 계속 상승세다. 올 8월 청년실업률은 9.4%를 기록해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8월(10.7%)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9월에는 청년실업률이 전년보다 소폭 하락했지만 체감실업률은 상승했다. 11월에도 청년실업률은 9.2%를 기록해 11월 기준으로는 1999년 통계 작성 이래 가장 높았다. 체감실업률은 더 심각하다. 올 5, 6월 청년 체감실업률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0.9∼1.8%포인트 급상승해 20%를 훨씬 웃돌았다.

정부도 청년고용 문제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이달 18일 청와대 수석보좌관회의에서 “올해 성장률이 3% 이상으로 높아지고 고용률도 좋아지는 등 경제 거시지표가 좋아지고 있으나 청년고용 문제는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있다”면서 “내년 1월 중으로 청년고용 상황과 대책을 점검하는 청년고용 점검회의를 준비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결국 안정적이면서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이 보장되는 일자리가 창출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경기회복세가 두드러지지 않으면 기업은 청년보다는 생산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경력직 채용을 선호할 가능성이 높다”면서 “기업으로서는 임금 인상과 일자리 정규직화를 모두 부담해야 해서 청년고용에 악영향을 줄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세종=최혜령 herstory@donga.com·박희창 / 강성휘 기자
#캥거루족#청년가구#20대#주거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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