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바게뜨 ‘계약 생태계’ 당사자들의 하소연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9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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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파견 논란

《파리바게뜨에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라는 정부 명령의 파장이 크다. 고용노동부와 파리바게뜨는 각각 파견법과 가맹계약법을 근거로 물러서지 않고 있다. 하지만 제빵기사와 가맹점주, 협력업체 등 프랜차이즈 빵집 생태계의 밑에 있는 ‘을(乙)’들의 목소리는 정부와 대기업의 법리 논쟁에 밀려 묻혀 있는 상태다. 동아일보는 제빵기사 3명과 가맹점주 5명, 협력업체 관계자 3명을 심층 인터뷰해 이들이 처한 상황을 날것 그대로 전달한다.》

● 미래가 두려운 제빵기사 “열심히 하면 본사 정규직 되는줄 알아”

본사 직원들 부하 부리듯 반말… 점주 몰래 빵 추가주문 시키기도

파리바게뜨 제빵기사들은 26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처음부터 파리바게뜨에서 일한다고만 생각했지 협력업체 직원 신분일 줄은 몰랐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본사 직원들의 업무 지휘와 명령이 “직접적이고 일상적이었다”고 증언했다.

10년 차 제빵기사인 A 씨는 “본사 공채로 갓 입사한 영업사원들까지 찾아와 ‘매장에 왜 이렇게 빵이 없느냐’며 더 많은 빵을 만들라고 지시를 내리는가 하면, 퇴근 후에도 업무 전화를 자주 했다”며 “본사 직원들이 목표 실적을 맞추기 위해 가맹점주 몰래 ‘빵을 추가로 더 주문하라’고 강요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3년 차 제빵기사인 B 씨(여)는 본사와 제빵기사들의 관계를 ‘갑을 관계’라고 한마디로 규정했다. 그는 “본사 직원들은 처음 만날 때부터 부하직원 대하듯 반말을 했다”며 “열심히 하면 본사 정규직이 되는 줄 알았지만 그건 ‘희망고문’이었다”고 토로했다.

이들에게 가장 힘든 점은 어디에도 소속되지 못했다는 느낌이라고 했다. 파리바게뜨에서 10년째 빵을 만든 C 씨(여)는 “나를 지켜주고 챙겨주는 존재가 아무도 없다”며 “파리바게뜨 안에서 우리는 아르바이트생보다도 낮은 계급인 것 같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은 가맹점주가 직접 고용했기 때문에 점주와 얘기하면 되지만, ‘간접 고용’ 신분인 자신들은 아무도 신경을 쓰지 않아 기댈 곳이 없었다는 것이다. C 씨는 “내가 10년 뒤에도 이 일을 할 수 있을까 하는 두려움이 많다”며 “신입 기사가 들어오면 바로 ‘다른 일을 해보라’고 조언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 한숨 늘어나는 가맹점주 “추가 인건비 전가하고 간섭 심해질것”

본사 직접 고용한 제빵기사 파견땐 감시자 늘어 경영자율성 침해 우려



26일 서울 서대문구의 한 파리바게뜨 가맹점. 아르바이트생이 계산을 하고 있는 카운터 뒤편에서 제빵기사가 열심히 빵을 굽고 있었다. 한 손님이 “도넛이 없다”고 하자 점주는 “도넛 좀더 구워 주세요”라고 제빵기사에게 말했다. 여느 빵집과 다름없는 일상적인 풍경이지만 최근 ‘제빵기사 불법 파견’ 논란 때문인지 점주도 제빵기사도 표정이 밝지만은 않았다.

동아일보와 만난 가맹점주 5명은 “본사가 제빵기사들을 직접 고용하면 추가 인건비를 우리에게 전가할 게 뻔하고, 본사의 감시와 간섭이 심해질 것”이라고 걱정했다.

서울 성북구에서 매장을 운영하는 유모 씨(50)는 “본사의 인건비가 늘면 원가도 당연히 늘 텐데, 결국 가맹점 부담으로 돌아올 것”이라며 “특히 본사 소속인 제빵기사가 매장에 온다면 우리를 감시하는 사람이 한 명 더 늘어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가맹점이 본사의 ‘을’인 상황에서 경영 자율성을 더 침해당할 수 있다는 것이다.

경기 광명시의 한 점주는 정부 결정으로 비용 부담이 늘 것을 우려해 아르바이트생 고용 계획을 접었다고 밝혔다. 그는 “제빵 프랜차이즈 시스템에서 본사가 제빵기사를 직접 고용하는 형태로 본사와 점주가 상생하긴 힘들다”며 “정부가 본사와 점주를 이간질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구의 한 점주는 “점주 800여 명이 모여 있는 단체 채팅방에서는 정부가 가맹점 운영 실태를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고 전했다.

이번 사태가 파리바게뜨의 이미지 하락으로 이어지는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컸다. 한 점주는 “‘본사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니냐’고 물어보는 손님들이 많다”며 “소비자 불매운동으로 이어질까 봐 걱정이 태산”이라고 토로했다.

● 문닫을 위기 협력업체 대표 “제빵기사 교육 18년 노하우 넘기라니”

신제품 많아 본사 개입 많았을뿐 정부 상생하겠다더니 강압 조치

“18년간 제빵기사들을 채용하고 교육해왔는데 이들을 그냥 (본사로) 넘기라는 건 말도 안 된다.”

파리바게뜨 협력업체인 국제산업 정홍 대표는 “인수합병(M&A)을 한다면 몰라도 우리 회사 직원들을 본사가 마음대로 데려간다는 게 말이 되느냐”며 “본사가 우리 직원들을 직접 고용하고 말고 할 권한 자체가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제산업이 채용하고 관리 중인 제빵기사는 모두 660여 명이다. 채용공고부터 해직에 이르는 근로계약 과정은 물론이고 임금과 노무 관리까지 모두 국제산업이 직접 한다는 게 정 대표의 주장이다.

특히 협력업체 대표들은 신제품 비중이 높은 파리바게뜨의 특성을 정부가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반박한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파리바게뜨는 다른 업체에 비해 신제품이 많기 때문에 본사 직원들이 가맹점을 더 많이 방문할 수밖에 없다”며 “제빵기사도 많아 품질 관리를 본사가 직접 할 수밖에 없는 구조지만 인사·노무 관리는 전적으로 우리가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업계 특성상 본사 개입과 감독이 많긴 했지만 인사·노무 관리는 협력업체가 전권을 쥐고 했기 때문에 파견법상 불법 파견이 아니라는 논리다. 이들은 근무시간이나 출근일수도 협력업체가 자체적으로 체크해 왔다고 했다.

‘직접 고용’이라는 극단의 조치보다는 대안을 마련해 달라는 목소리도 적지 않았다. 한 협력업체 관계자는 “모두가 상생하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것이 새 정부의 기조 아니냐”며 “강압적인 조치를 내리기보다는 협동조합 같은 대안을 만들어 달라”고 호소했다.

유성열 ryu@donga.com·신규진 기자
#파리바게뜨#계약#불법파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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