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손보험료 내려라”… 또 칼 든 국정기획委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6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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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보-민간의보 연계법 추진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실손의료보험료를 내리기 위해 올 하반기(7∼12월)에 건강보험과 민간 의료보험을 연계하는 법안을 만들기로 했다. 3200만 명 이상이 가입해 ‘제2의 건강보험’으로 불리는 실손보험료를 낮춰줌으로써 서민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취지다. 하지만 정부가 2015년 10월 ‘보험 가격 자율화’ 조치를 내놓은 지 2년도 채 지나지 않은 시점에 가격 개입에 나선 것이어서 논란이 예상된다.

○ ‘공·사 보험 정책협의체’ 구성하기로

박광온 국정기획위 대변인은 “연내 ‘건강보험과 민간 의료보험 연계법’(가칭)을 마련해 제정할 계획”이라고 21일 밝혔다. 건강보험 보장을 확대하면서 이익을 얻는 민간 실손보험의 보험료를 내리겠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을 이행하기 위해서다. 내년에 폐지할 예정이던 실손보험의 보험료 조정폭 규제는 ±25%로 더 강화한다. 국정기획위는 보건복지부, 금융위원회 등 관련 부처와 연구기관 등이 참여하는 ‘공·사 보험 정책협의체’를 구성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로 했다.

하지만 정부가 또다시 가격 개입에 나선 것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2015년 금융위는 보험 가격 규제를 없애는 ‘보험산업 경쟁력 강화 로드맵’을 발표했다. 보험료 산정에 바탕이 되는 위험률 조정한도(±25%)를 폐지하는 게 골자다. 단, 실손보험은 2016년 ±30%, 2017년 ±35%로 단계별로 완화한 뒤 2018년 완전 폐지하기로 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2009년 실손보험 표준화 이후 금융당국의 눈치를 보느라 보험사들이 적자를 보면서도 보험료를 올리지 못하다가 2015년 자율화 조치 이후 겨우 인상에 나설 수 있었다”면서 “(이번 정부 방침은) 어렵게 합의한 원칙을 정권이 바뀌었다고 무너뜨린 셈”이라며 불만을 드러냈다.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2015년 현재 122.1%다. 보험사가 가입자로부터 100원을 받고 122원을 내주는 셈이다.

반사이익을 통해 보험료를 내릴 수 있다는 주장도 논란이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2015년)은 건강보험의 확대로 보험사들이 2013∼2017년 1조5000억 원의 반사이익을 얻을 것으로 추정했다. 하지만 건강보험 보장 확대로 실손보험 보장 항목이 줄어드는 대신 다른 비급여 항목 치료가 증가하는 ‘풍선 효과’가 존재한다고 업계는 반박한다.

○ “무턱대고 내리면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우려”

신용카드 가맹수수료 인하, 통신비 기본료 폐지 압박에 이어 국정기획위가 ‘실손보험료 인하’ 카드까지 꺼내들면서 서민 경제를 명분으로 시장을 왜곡한다는 비판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일각에선 가격에 개입했다가 실패한 지난 정권의 발자취를 따를 수 있다는 우려마저 제기한다. 2012년 이명박 정부에서 내놓은 ‘알뜰주유소’ 정책은 세금 인하 없이 이뤄진 탓에 2800여 개 주유소가 휴업하거나 폐업했다. 이날 국정기획위의 발표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가격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기조는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보험업계에선 이 같은 정부의 개입이 자칫 소비자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손해율이 상승해도 가격 조정이 어려우면 결국 보험사들이 실손보험 판매를 중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AIG손해보험은 올 4월 기본형 실손보험 판매가 시작되기 한 달 전 실손보험 신규 판매를 중단했다.

병원마다 제각각인 비급여 진료 코드 표준화 등 비급여 진료를 통제하지 못하면 실손보험료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잉진료를 부추기는 비급여 항목을 관리하지 못하면 실손보험의 손해율은 계속 악화될 수 있어서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보험료 인하는 결국 의료비 지출을 관리하는 데 달려 있다. 정책협의체가 가격 통제에만 치우치지 말고 비급여 항목 관리 등 근본적인 해결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주애진 jaj@donga.com·최혜령·강유현 기자
#실손보험료#건강보험#의료보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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