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은 7점-정부는 6점… 4차 산업혁명 못따라가는 한국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5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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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보, 400개 기업 대응 수준 설문


금호산업은 지난해 12월 ‘프로젝트 i4’라는 태스크포스(TF)팀을 만들었다. TF팀은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드론 기술 등을 건설 현장에 접목하고 빅데이터를 통해 의사결정 과정을 효율화하는 등의 과제들을 떠맡고 있다. 올해 3월 초 건설업계 최초로 ‘모바일 하자관리 시스템’을 만든 것은 그 첫 결과물이다. 금호산업 프로젝트 i4는 지난해 11월 금호아시아나그룹이 설치한 4차 산업혁명 대비 TF팀의 계열사 버전이다.

반면 국내 중견 철강업체 A사는 이제야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하기 위한 중장기 계획을 세우는 단계다. 핵심은 생산현장을 효율화하는 ‘스마트 팩토리’로의 전환이다. 그러나 방침만 정해졌을 뿐 구체화된 로드맵은 없다. 충남에 공장을 두고 있는 석유화학업체 B사는 이런 방침조차 만들 여력이 없다. B사 관계자는 “글로벌 변수가 너무 많아 이에 대응하기도 버거운데 구름 속 얘기 같은 4차 산업혁명을 준비하긴 어렵다”고 했다.

4차 산업혁명 바람이 글로벌 시장 전체에 휘몰아치고 있는 가운데 국내 기업들은 10곳 중 7곳이 금호산업보다 A사나 B사와 비슷한 처지인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중소기업일수록 대책이 없는 경우가 많아 4차 산업혁명 확산에 따른 기업 간 격차가 더 벌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분석은 본보와 현대경제연구원, 중소기업중앙회가 최근 공동 진행한 ‘4차 산업혁명에 대한 기업 인식도’ 설문조사 결과다. 설문에는 400개 기업이 참여했다.

○ 영향은 큰데… 준비는 못해

3일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 기업들이 평가한 국내 기업들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수준은 글로벌 기업을 10점으로 봤을 때 평균 7.1점에 불과했다. 1∼5점이 48.2%, 6∼10점이 41.3%였다. 글로벌 기업들보다 국내 기업들의 대응 수준이 높다(11∼15점 9.2%, 16∼20점 1.3%)는 응답은 10.5%에 그쳤다.

응답 기업 5곳 중 4곳은 자신들이 속한 산업군이 4차 산업혁명에 의해 ‘큰 영향을 받는다’ 또는 ‘영향을 받는다’고 봤다. 그럼에도 ‘철저히 준비하고 있다’(2.2%), ‘준비하고 있다’(26.7%)는 답변은 10곳 중 3곳뿐이었다.

대기업은 그나마 주요 그룹의 정보기술(IT) 계열사들을 중심으로 준비에 속도를 내는 편이다. 삼성전자는 영상디스플레이(VD) 사업부 내의 선행개발그룹에 인공지능(AI)랩, 빅데이터랩, 인터랙션랩 등을 신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LG전자는 지난해 말 ‘H&A스마트솔루션BD(비즈니스 디비전)’ 조직을 만들어 AI와 IoT 기술 개발을 맡겼다. SK텔레콤은 박정호 최고경영자(CEO) 직속 AI 사업단을 꾸려 자회사인 SK플래닛과 함께 AI 비서와 자율주행차 연구에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중소기업이다. 급변하는 글로벌 시장 환경에 대응하고 내수 침체를 극복하는 데 역량을 집중하느라 미래를 위한 투자는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 이번 설문에서 ‘준비하고 있다’는 답변 비율은 중소기업(28.9%)이 대기업(36.6%)보다 훨씬 낮았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거대한 태풍에 휩쓸리면 중소기업 생태계 전체가 침몰 위기에 몰릴 수 있다는 얘기다.

○ 정부 대응은 더 뒤처져

정부 대응 수준에 대한 기업들의 평가는 더 부정적이었다.

선진국을 10으로 놓고 평가했을 때 한국 정부의 4차 산업혁명 대응 수준이 1∼5점 사이라는 답변이 57.0%로 압도적이었다. 6∼10점이 36.6%였다. 선진국보다 한국의 대응 수준이 낫다는 답변은 고작 6.4%뿐이었다. 평균 6.3점은 기업들이 스스로 매긴 7.1점보다 0.8점이나 낮은 수치다.

정부와 기업들의 대응 수준이 떨어지는 이유(2개 복수응답)에 대해서는 ‘과도한 규제 및 법적 인프라 부족’이 22.3%로 가장 많이 꼽혔다. ‘전문 인력 및 인재 부족’이 18.6%로 뒤를 이었다. ‘4차 산업혁명에 대한 이해 부족’(18.4%)과 ‘시대에 뒤떨어진 교육시스템’(13.8%)도 4차 산업혁명으로 가는 길에서 발목을 잡는 요소로 지적됐다.

정민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글로벌 시장 전체가 4차 산업혁명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데 자칫 한눈을 팔다가는 낭떠러지로 떨어질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번 설문조사를 통해서는 일반 기업들이 인식하고 있는 4차 산업혁명의 단면들도 엿볼 수 있었다.

기업들은 4차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 중 ‘AI’를 가장 먼저 떠올렸다. 제시된 12개 기술 중 2개를 고르라는 질문에 32.5%가 AI를 선택했다. IoT가 14.9%, 빅데이터가 13.4%, 로봇이 12.8%로 뒤를 이었다.

4차 산업혁명의 영향에 대해서는 ‘새로운 일자리 창출’(10.3%)보다 ‘노동시장 붕괴’(13.6%)라는 답변이 더 많은 것도 눈에 띄었다. 4차 산업혁명이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고 생산성을 높인다는 기대가 크지만 일자리 문제에서만큼은 기대보다 우려가 크다는 뜻이다.

김창덕 drake007@donga.com·서동일 기자
#4차 산업혁명#금호산업#프로젝트 i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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