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P플랜 문턱서 찬성 선회… 대우조선 회생 길 열려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4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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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고비 넘은 대우조선


대우조선해양 회생의 열쇠를 쥔 국민연금공단이 정부가 내민 구조조정안에 ‘찬성’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커지면서 대우조선은 자율 회생에 나서기 위한 절반의 문턱을 넘었다.

정부가 지난달 23일 발표한 채무조정안에 대해 반대하는 생각을 갖고 있던 국민연금이 찬성 기류로 선회하면서, 국민연금 눈치를 살피던 다른 기관투자가(사채권자)들이 잇달아 찬성표를 던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를 통해 대우조선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의 일종인 ‘프리패키지드 플랜(P플랜·사전회생계획안제도)’으로 직행하는 길은 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러나 조선 시황이 장기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는 데다 국제유가 또한 바닥을 기고 있어 회생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 국민연금 “대우조선 살려야 한다” 취지 공감

국민연금으로선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생긴 ‘최순실 트라우마’가 채 걷히지 않은 상황에서 “손실을 분담하라”는 채권단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쉽지 않았다. “국민의 노후자금을 특정 기업을 살리는 데 쓸 수 없다”고 버틴 것도 이 때문이다.

국민연금이 생각을 바꾼 것은 채권단이 꺼낸 ‘상환 보장’ 카드 때문이다. KDB산업은행은 대우조선에서 별도의 에스크로 계좌를 만든 뒤 3년 후 회사채 만기가 도래했을 때 이 계좌에서 돈을 꺼내 갚아주겠다고 제안했다. 배를 만든 뒤 받은 돈만으로 부족하면 산은과 한국수출입은행이 지원하는 신규 자금(2조9000억 원)을 활용하겠다고 밝혔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국민연금에 이행확약서도 써 주기로 했다. 국민연금이 손실 책임을 회피할 수 있는 최대한의 장치를 만들어준 셈이다.

국민연금의 결정 배경에는 대우조선을 살려야 한다는 공감대도 영향을 미쳤다. 대우조선이 P플랜에 들어갔을 때 국내 경제에 미칠 충격과 “국민연금이 대우조선을 죽였다”고 나올 비판 여론을 의식했을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국민연금공단 이사장을 지낸 전광우 전 금융위원장은 “최순실 게이트의 여파가 남아있고 채무재조정에 동의해 발생할 손실이 P플랜에 들어갔을 때보다 적다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가입자의 이익을 최대로 확보하기 위해 노력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정상화 준비 박차…대마불사 논란 여전

시중은행과 서울보증보험 등 제1, 2금융권의 지원확약서와 대우조선 노조의 고통 분담 동의서를 확보한 상황에서 대우조선이 자율 구조조정안으로 돌입하기 위한 마지막 관문은 사채권자의 동의다. 대우조선과 채권단은 17, 18일 사채권자 집회를 열고 이와 별도로 기업어음(CP) 투자자들로부터 일일이 동의를 받을 계획이다. 이미 각각 400억 원, 200억 원어치의 회사채를 보유한 중소기업중앙회와 한국증권금융은 찬성 계획을 밝혔다. 우정사업본부와 사립학교교직원연금공단 등은 국민연금의 결정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마지막 관문을 통과하면 대우조선은 산은과 수출입은행으로부터 2조9000억 원의 신규 자금을 지원받고 정상화 작업에 본격적으로 나선다. 앙골라 소난골과 벌이고 있는 드릴십 인도 협상에도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대우조선이 정상화에 성공하면 부채비율이 지난해 말 2732%에서 2021년 말 257%로 줄어 ‘작고 단단한’ 회사가 된다. 내년부터는 정부가 대우조선 매각을 추진하면서 국내 조선업계가 ‘빅3’에서 ‘빅2’로 전환될 가능성이 열린다.

하지만 대우조선이 넘어야 할 산은 높다. 최근 영국 조선·해운전문 분석기관 클라크슨리서치는 2018∼2021년 선박 발주량 예상치를 6개월 만에 매년 10% 안팎씩 하향 조정했다. 삼정KPMG가 최근 실사에서 대우조선의 수주 예상치를 올해 20억 달러, 내년 54억 달러로 보수적으로 잡아 부족 예상자금을 계산했지만 수주가 예상보다 되지 않으면 이조차 모자라 또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

대우조선에 2015년 10월 이후 총 7조1000억 원의 나랏돈이 투입된 뒤 나오는 ‘대마불사 비판’도 극복할 과제다. 정부가 5만 개의 일자리, 1300개의 협력사 등에 미칠 영향을 우려해 ‘밑 빠진 독’에 또다시 물을 채웠다는 비판을 피하려면 자구 노력에 더욱 박차를 가해야 한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대주주인 산은은 제대로 관리 감독을 못 한 책임을 지고 대우조선은 정상화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유현 yhkang@donga.com·이건혁·박창규 기자
#대우조선#국민연금#p플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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