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 경영의 지혜]지배구조 취약한 기업은 사내 유보금이 毒될수도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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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재벌그룹의 사내 유보금 비중이 빠르게 높아지고 있다. 이에 일부 사회단체와 정치인들은 기업이 투자에 나서는 대신 과도한 현금을 내부에 축적함으로써 국가 경제성장과 일자리 창출을 저해하고 있다는 비판을 쏟아낸다. 이 같은 주장이 과연 타당한 것일까.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연구팀은 미국 증시에 상장된 기업들을 대상으로 종단적 연구를 수행했다. 연구자들은 컴퓨스타트 등 글로벌 기업 정보 데이터베이스에서 1993년부터 2012년까지 9298개 기업의 재무 데이터를 수집했다. 종속변수인 기업 성과는 기업의 장부가치 대비 실제 시장가치의 비율로 측정했다.

 연구 결과 기업의 현금 보유가 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기업이 직면한 환경적 요인과 기업 요인에 따라 다른 것으로 나타났다. 우선 기업이 속한 산업의 경쟁 강도, 연구개발 집중도, 그리고 성장률이 높은 경우 기업의 현금 보유는 기업 성과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현금은 경쟁자의 신규 시장 진입, 가격 인하, 생산능력 확대 등의 공격적 행보를 견딜 수 있는 여유를 제공했다. 또한 기술 변화가 빠르고 복합적으로 나타날 때, 현금은 다양한 전략적 대안을 확보할 수 있는 여유 자원을 제공했다.

 그러나 기업 지배구조가 취약하고, 기업 내부 정보에 대한 투명성이 낮으며 기업이 다각화된 사업구조를 가진 경우에는 현금 보유 효과가 반감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기본적으로 기업의 현금 보유량이 많을수록 경영자는 자신의 급여를 올리는 등 기회주의적으로 사익(私益)을 추구하려는 동기가 커진다. 또 현금이 외부환경 변화의 충격을 흡수하기에 경영자는 최적의 전략적 대안을 탐색하는 데 큰 노력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이때 주주의 감시 기능이 중요한데 기업 지배구조가 취약한 경우에는 이같이 기만적인 경영자의 행동을 제지하지 못했다. 사업구조가 다각화되고 기업 투명성이 낮은 경우에도 경영자와 주주 간의 기업 경영 활동에 대한 정보 비대칭성이 커지므로 경영자의 사익 추구 활동이 외부 감시를 받기 어려워진다. 따라서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가 심각할 때, 기업의 현금 보유는 오히려 기업 성과를 저해하는 요인이 된다.

강신형 KAIST 경영공학 박사 davidkang@kaist.business.edu
#지배구조#기업#사내 유보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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