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BR/Special Report]아이티에 ‘교육-의료 희망의 씨’ 뿌린 한국中企

  • 동아일보
  • 입력 2017년 1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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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SR 활동의 교과서 보여준 세아상역의 아이티 지원

세아상역은 2012년 아이티 북단 카라콜 지역에 의류 공장을 설립하고 현지 직원을 채용해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직원들의 
숙련도 부족으로 당장은 생산 효율성이 높지 않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공장을 증설해 더 많은 주민을 채용할 예정이다. 세아상역 제공
세아상역은 2012년 아이티 북단 카라콜 지역에 의류 공장을 설립하고 현지 직원을 채용해 의류를 생산하고 있다. 직원들의 숙련도 부족으로 당장은 생산 효율성이 높지 않지만 앞으로도 꾸준히 공장을 증설해 더 많은 주민을 채용할 예정이다. 세아상역 제공
 의류를 수출하는 한국의 중견기업이 아메리카 대륙 최빈국 아이티의 교육과 의료를 변화시키고 있다. 특별한 인연도 없는 지역에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어 주는 데 그치지 않고 학교를 짓고 의료 봉사단을 매년 파견하며 CSR(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기업의 사회적 책임)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의류 수출 업체 ‘세아상역’ 얘기다.

 세아상역은 규모 7.0의 강진이 아이티를 강타한 시기, 아이티에 진출하게 된다. 대지진 이후 힐러리 클린턴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 김웅기 세아상역 회장에게 직접 협력을 요청한 것이 계기가 됐다. 세아상역은 미국 및 아이티 정부와 함께 재건 사업에 참여했다. 2012년 아이티에 생산 시설을 최초로 설립했고 교육 기관인 ‘세아학교’도 지었다.

 김 회장은 “과거 우리나라가 가난할 때 선교사가 와서 학교를 짓고, 병원을 만든 것이 오늘날 배재학당, 세브란스병원 등의 효시”라며 “미국이 100여 년 전에 우리나라에 해 주었던 것을, 지금 우리가 아이티에 해 주는 것은 어쩌면 숙명이라고 생각했다”라고 말했다. DBR(동아비즈니스리뷰) 215호(2016년 12월 2호)에 실린 세아상역의 아이티 CSR 활동을 요약해 소개한다.

○ 아이티 재건 위해 봉제 공장 건립

 세아상역은 2011년부터 미 국무부, 아이티 정부, 미주개발은행(IDB) 등과 함께 대지진으로 폐허가 됐던 아이티에 의류공장을 짓고, 재건 사업에 동참해 왔다. 생산 공장을 지은 것은 일자리를 창출해 아이티의 자립을 돕기 위해서다. 미국 정부가 기본 골격을 짜고 아이티 정부가 땅을 제공했으며 IDB는 공장을 지었다. 이 공장을 활용해 직원을 채용하고 교육해 의류를 생산하는 역할을 세아상역이 맡았다.

 세아상역은 아이티에 공장을 지음으로써 주 수출국인 미국의 앞마당에 생산 공장을 보유할 수 있게 됐다. 또 2020년까지 아이티에서 생산한 봉제품을 미국에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게 됐다. 사실 현지 직원들의 숙련도가 떨어지는 탓에 최근까지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앞으로도 꾸준히 공장을 증설하고 직원을 늘릴 계획이다.

 김기명 글로벌세아 대표는 “교육 비용 등 때문에 사업 초기 적자는 면할 수 없는 상황이지만 추가로 공장이 증설되고 나면 이익 규모가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성장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 CSR의 완성 ‘세아학교’

 공장을 지어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도로 끝났다면 인건비가 싸고 관세가 없는 국가에 들어와 섬유 관련 비즈니스를 하고 있는 여느 회사 이야기에 불과할 것이다. 하지만 아이티를 바라보는 세아상역의 눈길은 기존의 다른 회사들과는 달랐다. 공장 오픈 행사를 하던 바로 그날, 아이티 산업단지 인근에 들어설 세아학교 착공식도 함께 열렸다. 카라콜 지역의 아이들에게 양질의 교육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아이티 정부, 한국국제협력단(KOICA)도 뜻을 같이했다. 세아는 2013년 가을학기 개강을 목표로 약 1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했다.

 아이티의 대학 진학률은 1% 남짓. 그런데 이 1%는 졸업 후 미국으로 간다. 두뇌 유출(brain drain)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초등학교 진학률도 50%밖에 안 된다. 아이티 국무총리는 아이티 초등학교 교사의 80%가 사실 교사 자격이 없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이들은 가르쳐야 하는데 교사가 부족하니 어쩔 수 없이 자격 없는 선생님들이 생기는 것이다. 결국 세아상역은 아이티에 가장 시급한 것이 교육 시설이라는 결론을 내렸고 카라콜에 학교를 세우기로 결정했다.

 세아학교는 지난해 8월, 첫 번째 졸업생을 배출했다. 아이티는 초등학교가 5년 과정인데 3학년에 배치됐던 학생이 첫 졸업을 맞은 것이다. 세아상역은 초등학교에 그치지 않고 종합학교로 성장할 계획을 발표했다. 이미 지난해 7월부터 중학 과정 수업을 진행할 새 건물을 준공했고 9월부터는 해당 과정 교육을 시작했다. 중학 과정을 이수한 시점에는 고교 과정 전용 건물 신축 계획도 마련돼 있다. 2020년에는 700명 이상 규모의 아이티 최고 수준의 종합 학교로 성장시킬 계획이다.

 왜 세아상역은 회사 수익에 직접적인 영향도 없는 교육 사업에 큰돈을 투자할까. 이 질문에 김 대표는 “과거 멕시코에 생산 공장을 지었다가 1년 만에 철수를 한 실패를 통해 현지 문화를 이해하고 커뮤니티에 공헌하는 것이 직원들의 신뢰를 얻는 방법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라고 설명했다.

○ 교육에 이어 의료까지

 세아상역은 교육 못지않게 의료 부문에도 관심이 컸다. 과거 콜레라 관련 의료 키트를 제작했던 때부터 주민들을 위한 의료 인프라가 절대적으로 부족함을 느꼈다. 이에 2012년 전남대와 함께 최초로 아이티에서 의료 봉사활동을 실시했다. 보통 한 번 의료봉사를 실시하면 3000명 정도의 환자를 진료한다. 첫 의료봉사를 진행할 때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병원에 와 본 사람이 상당수였다. 심지어 트라코마(전염성 결막염의 일종)로 인해 자신이 시력을 잃고 장님이 된 것으로 착각한 환자도 30여 명에 달했다. 이런 환자들은 세아상역의 의료봉사를 통해 시력을 회복했다.

 한 어린이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됐을 때부터 허벅지가 심하게 곪아 있었다. 이 때문에 걷는 것은 고사하고 서 있는 것 자체를 고통스러워했다. 마을 사람들은 이 어린이를 선천적 장애아로 여겼다. 하지만 의료진이 진찰해 보니 사실이 아니었다. 허벅지의 고름을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 끝에 걸을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는 이 어린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내딛는 걸음이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곳이 아이티다.

 매출액 1조 원대의 회사가 한 나라의 교육과 의료를 변화시킨다는 것은 사실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다. 물론 국가 전체가 아닌, 공장이 입주한 공단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하지만 이곳에서 시작된 변화는 다른 회사, 다른 단체들로 하여금 변화의 필요성을 느끼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무역 의존도는 2007년 이미 80%를 넘어섰다. 일본, 미국 등이 30%대인 것에 비하면 그만큼 해외 시장 의존도가 높다는 뜻이다. 다른 관점에서 보면 해외에서 사랑받는 기업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누구나 다 하는 봉사활동, 어쩌다 한번 생색내기 위한 대규모 사회공헌활동은 이제 감동을 주지 못한다. 마치 기업을 운영하는 것처럼 비전을 갖고 중장기 계획을 수립한 후, 그에 맞춰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가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장재웅 기자 jwoong04@donga.com
신현암 삼성경제연구소 자문역 gowmi123@gmail.com
#아이티#csr#세아상역#교육#의료#중소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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