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마’ 했던 한진해운 침몰… 대체 선수 현대상선엔 ‘글쎄’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12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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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업종별 구조조정 결산]<中> 해운업계 불안한 지각변동

 39년간 순항하던 ‘한진해운호’가 침몰하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모두가 ‘설마’ 했던 국내 1위, 세계 7위 국가대표 해운사의 몰락은 불과 몇 개월 만에 이뤄졌다. 그 자리를 현대상선이 대신하겠다며 각오를 다지고 있지만 회의적인 시선이 적지 않다.

○ 유리했던 한진해운, 채권단과 그룹 지원 못 받고 무너져

 해운업은 몇 년간 불황에 허덕이고 있었지만 본격적인 구조조정 논의는 지난해 말 금융권을 중심으로 한진해운과 현대상선 간 합병설이 퍼지면서 공론화됐다. 올해 들어 양대 국적해운사가 모두 유지되기는 어렵다는 관측이 힘을 얻었다. 결국 둘 중 누가 먼저 무너지느냐가 관건이 됐다. 국책은행 관계자는 “마치 곰이 쫓아와 두 친구가 도망갈 때 먼저 한쪽이 잡히면 나머지는 살 수 있는 상황 같았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한진해운이 더 유리했다. 규모나 실적, 영업이익률 등 모든 면에서 ‘한 수 위’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4월 현대그룹이 현대증권을 예상보다 비싼 가격에 매각하는 데 성공하며 ‘실탄’을 확보하자 상황이 달라졌다. 추가 자금 지원에 대해 채권단과 한진그룹 모두가 난색을 표하는 상황에서 현대상선이 세계 최대 해운동맹 ‘2M’ 가입 논의를 시작하자 무게추가 급격히 기울었다. 결국 한진해운은 8월 31일 법정관리를 신청했다. 현재는 청산 절차를 밟고 있다.

○ 세계 해운업계 재편 촉발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는 세계 해운업계에 큰 파장을 불렀다. 운임이 폭등하고 한진해운 선박이 세계 곳곳에서 압류되며 물류대란이 발생했다. 외국 해운사들이 하나둘씩 부산항에 노선을 개설하며 한진해운의 빈자리를 노렸다. 동시에 ‘우리도 잘못하면 저렇게 된다’는 경각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전 세계 해운사 간 합종연횡을 거쳐 해운동맹이 재편됐다.

 국내 해운업 위기가 한창이던 7월 말 독일 하파크로이트와 중동 UASC가 합병 계약을 맺었다. 이달 초 세계 1위 덴마크 머스크는 독일 함부르크쥐트를 인수한다고 발표했다. 일본은 3대 해운사(NYK·MOL·K라인)가 컨테이너부문을 합병하기로 했다. 에버그린과 양밍 등 자국 선사 간 합병을 고려하던 대만 정부는 지난달 저금리 대출 등을 포함한 약 2조2000억 원 규모 구제금융안을 마련했다.

 조봉기 한국선주협회 상무는 “외국 해운사들은 합병과 정부 지원으로 나날이 덩치가 커져가지만 한국은 현대상선 홀로 덩그러니 남겨진 상황”이라고 말했다.

○ “정책 실패” vs “지나친 비관”

 한진해운이 무너지자 정부는 “한진해운의 우량자산을 현대상선이 인수하도록 해 빈자리를 채우겠다”고 밝혔다. 현대상선을 한진해운 못지않은 대표선수로 키우겠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벌써부터 해운정책이 실패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한진해운 우량자산 중 미주 노선은 대한해운이 인수했다. 대표적 우량자산인 미국 롱비치터미널도 현대상선이 소수 지분만 갖는 형태로 인수가 추진되고 있다. 특히 2M 가입 협상에서 동등한 지위가 아니라 ‘낮은 수준의 협력’으로 결론 나면서 우려의 목소리는 더 커지고 있다.

 금융 당국과 현대상선은 이런 우려를 잠재우기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 유창근 현대상선 사장은 19일 기자간담회를 통해 “2M 회원국과 동등한 지위는 아니지만 2M 가입으로 얻고자 했던 서비스 향상과 원가 절감 등 효과는 충분히 얻었다”며 “롱비치터미널도 부채가 많기 때문에 소수 지분으로 들어가는 것이 부채를 덜 떠안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한진해운 사태 뒤 (현대상선 주력 노선인) 미주 서안에서 물동량이 61%, 점유율이 2.4%포인트 올라간 건 화주들의 신뢰가 충분하다는 증거”라며 “2021년 전 세계 점유율 5%(현재 2.2%)라는 목표는 불가능하지 않다”고 덧붙였다. 현대상선은 20일 하파크로이트, NYK, 이스라엘 ZIM 등 5개 세계 주요 선사와 함께 극동(부산)∼남미 동안 노선에서 컨소시엄을 구성하기로 하는 등 다른 해운사와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해운업계에서는 현대상선과 대한해운이 덩치가 커진 외국 해운사와 경쟁하기 위해서는 ‘차별화’가 중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외국 해운사들이 가지 않는 곳에 노선을 개설하거나 값싼 중고선으로 운임을 낮추는 등 색다른 전략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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