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법정관리 가는 한진해운… ‘大馬不死없다’ 원칙은 세웠다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31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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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DB산업은행 등 채권단이 어제 한진해운의 자금지원 요청을 수용하지 않기로 만장일치로 결정했다. 한진그룹이 제시한 5000억 원 규모의 자구안으로는 최대 1조3000억 원으로 추정되는 부족 금액을 메우기에 역부족이라고 본 것이다. 산은은 “그간 대내외적으로 견지해온 구조조정 원칙, 정상화에 대한 한진 측의 의지, 한진해운 경영 상황과 정상화 가능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결정을 내렸다”고 밝혔다. 다음 달 4일 채권단 공동관리(자율협약)가 끝나면 국내 1위, 세계 7대 선사인 한진해운은 절차를 거쳐 법정관리(기업회생절차)를 신청할 것으로 보인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해운동맹에서 퇴출될 뿐 아니라 채권자들이 선박을 압류하고 화물운송 계약을 해지할 것으로 보여 결국은 청산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1997년 외환위기 시기를 제외하고는 대마불사(大馬不死) 신화가 깨진 첫 사례다. 소유주가 있는 부실기업은 자구책을 마련하지 못하면 퇴출된다는 구조조정의 원칙을 채권단과 정부가 입증한 것이 그나마 소득인 셈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구조조정을 강조하면서도 만만한 중소기업만 손봤을 뿐 대기업에는 혈세를 대면서 부실을 키웠다. 대우조선해양이 그 예다. 이번 결정을 계기로 나라 경제를 볼모로 잡고 자금지원을 요구하는 대기업의 도박이 더는 통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조선, 철강, 석유화학 등 다른 업종으로 확대해야 할 것이다.

한진해운이 침몰에 이른 데는 무능에 모럴 해저드까지 보인 최은영 전 회장 등 대주주들의 책임이 가장 무겁다. 최 전 회장은 4월 한진해운의 자율협약 신청 사실이 공개되기 직전 보유 주식을 매각한 혐의로 검찰 조사까지 받고 있다. 그러나 늑장 대응으로 사태를 키운 정부 책임도 가볍지 않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적으로 해운 불황이 닥치자 덴마크, 프랑스, 중국은 정부 주도로 발 빠른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반면 우리 정부와 채권단은 2009년 이후 자산관리공사가 자금난을 겪는 해운사로부터 배를 사들여 다시 빌려주는 식으로 언 발에 오줌 누는 지원만 연발해 골든타임을 놓쳤다.

국내 산업계는 당분간 한진해운의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부산항 물동량 감소와 운임 폭등의 연쇄 파장으로 물적 피해만 수십조 원에 이를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지만 대가를 치르지 않는 구조조정이란 없다. 정부는 실업사태에 대비하는 한편 현대상선을 중심으로 국적 선사의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는 장단기 대책을 마련해 피해를 최소화하기 바란다.
#한진해운#채권단#구조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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