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간TF에 ‘GM 수술’ 전권… 죽어가던 車의 도시 되살아나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5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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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대개조/해외 구조조정 현장]<3·끝> 활기 되찾은 美 디트로이트

미국 디트로이트 인근에 있는 GM의 한 생산 공장. 한때 구조조정 여파로 잠정 폐쇄되기도 했던 이곳은 GM이 부활한 덕분에 요즘은 주차장에 임직원 차량이 가득 찰 정도로 활기에 넘쳐 있다. 디트로이트=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미국 자동차 회사 제너럴모터스(GM) 임직원들은 ‘노란 봉투’를 싫어한다. 2009년 치욕적인 파산보호(기업회생) 신청을 한 뒤 연방정부로부터 495억 달러(약 58조 원)의 공적자금을 지원받기로 하고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착수했을 때의 뼈아픈 기억 때문이다.

GM 본사가 있는 미시간 주 디트로이트 시에서 13일 만난 25년차 직원 A 씨의 회고다.

“당시 부서장으로부터 ‘이틀 뒤 오전 10시까지 전원 강당에 모이라’는 e메일을 받았다. ‘올 것이 왔구나’라고 직감했다. 피가 마르는 것 같고 잠도 오지 않았다. 마침내 그날 부서장은 ‘여러분 중 일부는 오늘 부로 회사를 떠나야 한다. 책상 위에 노란 봉투가 있는 사람이 그 대상자’라고 했다. 강당에서 사무실 책상으로 돌아가는 동안 마치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가 된 기분이었다.”

노란 봉투 안엔 퇴사안내문과 관련 자료가 들어 있었다. 그렇게 하룻밤 새 부서 내 책상 10∼30%가 사라졌다. 익명을 요구한 그는 “해고 통보 회의는 한두 달 간격으로 거의 1년간 계속됐다. 해고를 통보하던 임원이 다음 회의 전 해고되는 경우도 많았다”고 전했다.

그땐 억울하게 떠나는 자도, 운 좋게 살아남은 자도 모두 ‘이제 GM의 시대는 끝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렇게 기울어가던 GM이 지금은 부활했다. GM 본사가 있는 디트로이트도 살아나고 있다. 부동산중개회사 서드코스트의 윌리엄 보걸 사장(40)은 “당시 GM이 무너지자 디트로이트는 붕괴했다. 도심 사무실 공실률이 50%에 달했다. 내전을 겪은 제3세계 국가 같았다. 그러나 요즘 디트로이트는 부동산 값이 하루가 다르게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 죽어가는 GM을 살려낸 전광석화 구조조정

A 씨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직전까지 GM의 자동차 판매 실적은 나쁘지 않았다. 대부분의 직원은 회사 위기를 체감하지 못했다”며 “그 실적이 무리한 세일과 금융 지원 프로그램으로 억지로 만든 수치란 걸 뒤늦게 알았다”고 말했다. GM의 한 전직 임원도 현지 언론 인터뷰에서 “자동차 브랜드 수가 너무 많아 비경제적임을 알고 있었지만 강성노조, 판매점과의 계약 문제 때문에 개혁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좋은 게 좋다’는 식의 문화가 만연해 GM의 G는 ‘Gentle(점잖은)’이나 ‘Generous(관대한)’란 농담이 회자됐다.

회사가 사실상 망하자 “Generous한 GM이 결국 Government(정부)의 GM으로 전락했다”는 말이 나왔다. 정부로부터 막대한 구제금융을 받는 대신 경영 실패를 자인하는 반성문을 신문 전면광고로 싣는 수모도 감수해야 했다.

GM에 대한 구조조정은 강하고 빠르고 새로웠다. 버락 오바마 정부는 월가 출신 재무전문가 스티브 래트너, 기간산업 구조조정 전문가 론 블룸 등을 중심으로 노무 투자 등 각 분야의 실력자로 태스크포스(TF)를 꾸렸다. 당시 구조조정 실무 작업에 참여했던 한 인사는 “재무부가 구조조정 방향이나 전략에 대해 TF에 전권을 줬다”고 회고했다. 정부의 역할은 구조조정이 법과 규정에 맞게 이뤄지는지를 관리 감독하는 데 집중됐다. TF는 GM의 주요 자산을 ‘좋은 GM’과 ‘나쁜 GM’으로 나눈 뒤 나쁜 GM은 매각 또는 폐쇄하고 좋은 GM으로만 ‘새로운 GM’을 출범시켰다. GM은 채무가 17억 달러에 불과한 건실한 기업으로 부활했지만 공장 10여 개가 폐쇄되고 2만 명이 넘는 직원이 회사를 떠나야 했다.

신속하고 과감한 구조조정 덕분에 GM은 39일 만에 공식적으로 파산 보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리고 2010년부터 순익을 내기 시작했다.

○ 확 달라진 GM, 살아나는 디트로이트

강력한 구조조정의 영향은 GM의 느슨했던 조직문화까지 바꿔 놓았다. 경력 30년 차의 한 연구원은 “예전엔 회의 때 대부분 의자에 등을 기대고 비스듬히 앉았는데 요즘은 전부 테이블에 바짝 다가앉아 집중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회의 시작 전 ‘왜 이 순간, 이 자리에 우리가 모여 있는지’에 대한 이유부터 명료하게 하는 시간을 갖는데 완전히 새로운 풍경”이라고 전했다. 강성 노조도 달라졌다. 일부 분야의 임시직 채용 수용과 일본 자동차회사 등 경쟁사 수준으로 시간당 평균임금 삭감 같은 기업경쟁력을 높이는 방안을 수용했다. 디트로이트 자동차 업계에서 30년 넘게 근무해온 톰 제노바 씨(67)는 “회사도 노조도 일자리를 지키는 일이 얼마나 소중한지 절감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GM의 부활로 ‘도시 몰락’ 현상을 겪던 디트로이트는 활기를 되찾고 있다. 요즘 도로 확장 공사가 한창이다. 2011년 값싼 임차료 혜택을 보려고 디트로이트로 왔다는 한 벤처사업가는 “당시만 해도 ‘자동차의 도시’ 디트로이트의 거리에 차가 별로 없을 정도로 한적했다. 요즘은 출퇴근 시간에 교통 체증이 심하다”고 전했다.

디트로이트 도심 아파트에 사는 회사원 제이슨 벌랜드 씨(36)는 “디트로이트에 젊은 창업가와 예술인이 몰려들기 시작하면서 도시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치안도 덩달아 좋아져 요즘 가까운 곳에 나갈 땐 문을 안 잠그고 다닌다”고 말했다.

GM의 부활과 중심 도시 디트로이트의 부흥은 미시간 주 전체 경제에도 긍정적 변화를 가져왔다. 2009년 13.8%까지 치솟았던 실업률이 지난해엔 5.4%까지 떨어졌다. 보걸 사장은 “해고당하거나 일자리가 없어서 동부나 남부, 심지어 서부로까지 떠났던 사람들이 ‘이젠 디트로이트로 돌아가도 될 것 같다. 적당한 집을 소개해 달라’는 전화를 매일 걸어온다”고 전했다.

디트로이트=부형권 특파원 bookum90@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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