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조정’ 단어가 금기였던 勞 “이러다 공멸… 필요성 인정”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4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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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 대개조 이제는 실행이다]

조선 등 부실 업종에 대한 구조조정이 임박한 가운데 노동계에도 전운(戰雲)이 감돌고 있다. 1998년 외환위기 당시 총파업이나 2009년 쌍용자동차 파업 같은 극심한 노사 갈등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최근 노동계에서는 구조조정의 필요성은 인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폭넓게 감지되고 있다. 과거처럼 ‘닥치고 투쟁’을 주장하기보다는 건설적 대안을 제시해 보자는 주장도 고개를 든다. 전문가들은 변화의 움직임이 일고 있는 노동계를 이참에 충분히 설득하면, 미래지향적인 구조조정이 가능하다고 입을 모은다.

○ 달라진 노동계, “구조조정 필요성은 인정”

노동계는 최근 구조조정 국면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을 삼가고 있다. 한국노동조합총연맹은 25일 성명을 통해 “우리 사회가 지속 가능한 발전을 할 수 있는 구조적 토양을 다지는 구조조정이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고,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은 22일 “경영 실패의 책임을 노동자에게 일방적으로 떠넘기는 구조조정을 중단하라”는 성명을 냈지만 단골처럼 써 먹었던 총파업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오히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한 법제도 개선을 위해 모든 시민사회와 함께 힘과 지혜를 모으겠다”며 대안을 제시할 뜻도 밝혔다.

이는 조선과 해운 등 천문학적인 손실을 입고 있는 일부 업종을 구조조정하지 않으면 기업의 존립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노동계 역시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특히 야당이 먼저 구조조정 이슈를 선제적으로 들고나온 것도 과거와는 달라진 분위기를 만든 배경으로 꼽힌다.

변화의 조짐은 이미 현장에서 시작됐다. 삼성중공업 노동자협의회는 사측과 함께 수주 영업활동에 나섰고, 민노총 소속인 대우조선해양 노조는 임금 동결에 동의했다. 특히 두 노조는 7일 조선업을 특별고용지원업종으로 지정해 줄 것을 정부에 공식 요구했다. 노동계에서 강성으로 꼽히는 조선업계 노조가 사실상 구조조정에 이미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물론 현대중공업 노조가 “일방적인 구조조정에 반대한다”는 성명을 내는 등 강경 투쟁을 외치고 있지만 이들도 아직까지 파업을 거론하지는 않고 있다.

다만 정리해고 등 노동계가 격렬히 반대하는 정책이 구체적으로 실행되면 노사 갈등이 폭발할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 조준모 성균관대 교수(경제학과)는 “노동계에 일방적 희생을 강요하지 말고 ‘담보’를 제공해야 한다”며 “임원의 고액 연봉을 깎거나 낙하산 인사를 철회하는 등 사용자와 정부도 욕심을 버려야 노조도 명분이 생겨 동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 일자리 나누기 등 대안도 제시


노동계는 과거와 달리 대안도 적극적으로 제시하고 있다. 쌍용차 사태 때와 같은 무분별한 대규모 정리해고는 지역 경제를 황폐화시키는 만큼 정규직 근로자들의 임금을 대폭 줄이는 대신, 해고를 최소화하는 방식으로 ‘고용 대란’을 막아 보자는 취지다. 여기에 오너의 사재 출연과 사내유보금을 활용하면 하청업체 근로자들도 생존할 수 있다는 게 노동계 생각이다.

오너의 사재 출연과 사내유보금 활용은 정부 방침과 다르지만, 정규직의 임금 양보는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개혁과도 맞닿아 있다. 노동계의 한 핵심 관계자는 “경영진이 부실 경영의 책임을 철저하게 진다면 우리가 양보를 못 할 이유도 전혀 없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참에 노동계를 구조조정 협상 테이블로 끌어낼 수 있는 방법을 적극 강구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배규식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조선 3사 노사와 정부, 전문가까지 참여하는 ‘구조조정 기구’를 만들어야 한다”며 “이런 기구에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낸다면, ‘쌍용차 트라우마’를 극복하고 지속 가능한 구조조정이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유성열 ryu@donga.com / 울산=정재락 기자
#구조조정#노동계#협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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