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김재영]집단대출 규제 유령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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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재영 경제부 기자
김재영 경제부 기자
‘맞은 사람은 있는데 때린 사람은 없다.’

최근 집단대출 규제를 둘러싼 금융 당국과 은행, 건설업계의 갈등이 딱 이런 모양새다. 건설사들은 “지난해 10월 집단대출 심사가 강화되면서 대출을 거부당하거나 금리가 올라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하소연한다.

집단대출은 은행이 개별 심사 없이 시공사 보증을 바탕으로 아파트 계약자들에게 해 주는 대출이다. 분양시장이 활황세였던 지난해 급증했던 집단대출은 공급 과잉, 미분양 우려가 제기되기 시작한 10월 이후 된서리를 맞았다. 한국주택협회는 “지난해 10월 이후 이달 10일 현재까지 금융권의 집단대출 거부나 대출 감액, 대출 금리 인상 등에 따른 피해 규모는 약 3만4000채, 금액으로는 5조 원에 이른다”고 주장한다. 대출이 무산되거나 금리가 오르면 피해는 고스란히 아파트를 분양받은 사람에게 돌아간다.

건설업계는 금융권이 갑자기 대출 조이기에 나선 데는 금융 당국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하고 있다고 의심한다. 이에 대해 금융 당국은 “집단대출 규제 자체가 없는데 무슨 소리냐”라고 맞선다. 은행은 “자체 리스크 관리 차원”이라며 “건설사들이 무조건 대출을 해 달라고 생떼를 쓴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실제 대출 거부 사례를 보면 은행들 스스로 사업성 검토를 통해 꼼꼼하게 옥석을 따지고 있는 것인지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든다. 지난해 11월에 영남권에서 아파트를 분양한 한 사업장은 은행으로부터 “사업성이 없다”며 중도금 집단대출을 해 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얼마 전 ‘사업성이 있다’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까지 해 준 그 은행이 갑자기 태도를 바꾼 것이다.

‘분양률이 낮아 집단대출이 어렵다’고 하지만 현장에서는 분양률이 90∼100%에 이르는데도 대출을 거부당하거나 당초 약속 금액의 절반밖에 받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주택도시보증공사의 중도금 대출 보증을 받았는데도 은행에서 거부당하는 일도 있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지난해 분양시장이 좋을 때 은행들이 경쟁적으로 최저 금리를 제시해 한 은행과 대출 협약을 체결했는데, 은행 측이 불과 몇 달 뒤 ‘대출을 해 줄 수 없다’며 말을 바꿨다”고 말했다.

건설사들이 분양률이 저조한 상태에서 대출을 해 달라고 떼를 쓰거나, 분양 계약자들에게 미리 확정 금리인 양 낮은 금리를 제시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하지만 문제없이 진행되던 사업이 갑작스러운 대출 규제로 흔들리는 사태는 시장에 혼란만 키울 뿐이다. 금융 당국의 태도도 시장에 모호한 신호를 준다. “직접 규제는 없다”던 금융 당국 관계자들이 “집단대출이 주택담보대출 증가의 절반을 차지한다”, “업계 스스로도 밀어내기 식 분양을 자제해야 한다”며 한쪽으로는 건설업계가 ‘맞을 만한 짓을 했다’는 뉘앙스를 풍긴다.

논란이 커지자 금융위원회와 국토교통부는 업계, 전문가와 함께 협의회를 구성해 정기적으로 시장을 점검하기로 했다. 건설업계가 맞을 만한 짓을 한 것인지, 때려서는 안 되는 것인지 면밀하게 판단해 시장에 명확한 시그널을 줘야 한다. ‘때리라고 한 적 없다’는 말만 되풀이해서는 시장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김재영 경제부 기자 redfoot@donga.com
#집단대출#분양률#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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