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시대, 너무 다른 韓-獨 노조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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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의없이 첨단엔진 투자 말라” vs “미래유망 車배터리 투자하라”

“전기차 시대가 오는데 회사들이 배터리에 투자하지 않으면 일자리를 아시아에 뺏길 것이다.”(독일 자동차 3사 노동조합)

“계열사라도 노조와 상의 없이 투자를 진행하는 것은 부당하다.”(현대자동차 노동조합)

디젤(경유)엔진 자동차의 비중이 커지고 전기차 시대가 다가오면서 기존 내연기관 부품제조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가솔린(휘발유)엔진의 생산량이 줄어들 것으로 보이는 데다 전기차의 경우 아예 엔진과 변속기가 필요 없어 관련된 일자리가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에 대응하는 노조의 태도는 한국과 독일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현대자동차그룹 공작기계 및 엔진 제조업체인 현대위아는 지난달 19일 충남 서산 오토밸리에 2651억 원을 투자해 디젤엔진 공장을 증설한다고 발표했다. “디젤엔진의 중장기 수요 변동(증가)에 대응하기 위한 투자”라는 것이 현대위아 측 설명이다. 소식이 전해지자마자 현대위아 주가는 7% 넘게 급등했다. 미래에셋증권은 “영업이익이 8% 증가하는 효과가 있을 것”이라고 분석하는 등 재계 반응도 긍정적이었다.

하지만 완성차뿐만 아니라 디젤엔진도 생산하는 현대자동차의 노조는 민감하게 반응하며 회사 측에 불만을 나타내고 있다. 노조와 논의 없이 진행됐다는 것이 주된 이유다. 현대차 노조 관계자는 “고용에 영향을 미치는 사안은 노사협의회에서 의논하게 돼 있는데, 이번 투자 건은 언론 보도를 보고서야 알게 돼 회사 측에 항의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디젤엔진 수요가 늘고 있는데, 노조로서는 디젤엔진 일감을 점차 현대위아에 몰아주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대차 노조의 반응에는 자동차 구동기관의 패러다임이 바뀌는 데 따른 위기감이 묻어나 있다. 바로 디젤엔진과 전기차의 도약이다. 특히 전기차는 엔진과 변속기 등 내연기관 자동차의 핵심 부품 상당수가 필요 없다. 본격적인 전기차 시대가 되면 현재 부품업체 중 15% 정도는 사라진다는 전망도 자동차 업계에서는 나오고 있다. 노조는 향후 회사가 내연기관과 관련된 일자리를 없애는 결정을 내릴 때 노조를 거치지 않는 상황을 우려하는 것이다. 계열사의 디젤엔진 투자도 이와 비슷한 결정의 하나로 보는 셈이다. 하지만 현대차 노조가 같은 그룹 내 계열사가 진행하는 투자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데 대해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반면 독일의 자동차 노조는 오히려 새로운 산업에 대한 투자를 회사 측에 적극 주문하는 등 상반된 태도를 보이고 있다. 독일 슈투트가르트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다임러 BMW 폴크스바겐 등 독일 자동차 3사 노조는 공동으로 지난해 10월 “전기차 시대가 오고 있는데 독일 자동차 회사들은 이에 대한 투자가 뒤처져 있다”며 회사를 상대로 전기차 배터리 셀에 대한 투자를 촉구했다. 다임러 노사협의회장인 미하엘 브레히트 씨는 “세계적인 배터리 셀 회사들은 아시아에 있고, 독일 회사들이 배터리 셀에 투자하지 않으면 산업과 일자리가 아시아로 넘어가게 된다”고 우려했다. 노조가 선제적으로 회사에 새로운 산업에 대한 투자를 요청한 것이다. 독일 자동차 업계는 이들 3사가 배터리 셀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회사당 10억 유로(약 1조3319억 원) 정도 투자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남성일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독일 노조의 사례는 산업의 앞날을 걱정하는 성숙한 선진국 노조 활동의 전형적인 모습”이라며 “한국에서는 미래 먹거리에 대해서도 노사가 협력하는 모습을 보이지 못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김성규 기자 sunggyu@donga.com
#전기차#독일노조#한국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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